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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들 Mar 04. 2024

싸우거나 피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갈등에 대처하는 5가지 유형

무언가 나의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벌어지면, 일단 짜증과 화가 치밀어 올라 뒷골이 땅긴다. 가능한 상황이라면 바깥으로 표출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화를 꾹꾹 눌러 참곤 한다. 속으로는 불이 나는데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다 보면, 속에선 울화병이 생긴다. 그런데 이렇게 터뜨리거나 참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일까? 



갈등에 대처하는 5가지 방법


케네스 토마스(Kenneth W. Thomas)와 랠프 킬만(Ralph H. Kilmann)은 사람들이 갈등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반응을 5가지로 정리했다. 우선 회피(avoidance)이다. 이건 참는 쪽에 해당한다. 갈등이 있지만 대면하지 않고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대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경쟁(competence)인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상대를 압도하는 방식으로 갈등에 접근한다. 화를 내거나 압박을 가해서 상대를 이기려고 한다. 세 번째는 양보(accommodation)로 내가 원하는 것을 내어주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방식이다. 네 번째 타협(compromise)은 줄 건 주고받을 건 받는 방식이다. 마지막은 협력(collaboration)인데,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보면, 갈등이 발생했을 때 단순히 화를 내거나(경쟁) 참는(회피) 방식뿐 아니라, 수용하거나 흥정하기도 하고, 모두가 원하는 것을 충족하기 위해 노력하는 식의 방식 또한 택해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건, 이 다섯 가지 유형이 모두 적절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경쟁이나 회피는 나쁜 것이고, 협력이 최고라고 말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각 유형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대처 방법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갈등의 소지는 있지만 그리 시급하지 않거나 관계를 맺어 가는데 크게 영향력을 미치는 사안이 아니라면 회피도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또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고 시간이라는 약이 필요한 일이라면 어느 정도 회피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경쟁은 빠른 시간 내에 갈등을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급하게 무언가 결정해야 하거나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경쟁 방식이 요긴하다. 협력은 가장 이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든다는 단점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협력을 해야겠지만, 현실에 맞게 양보나 타협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다만 양보는 한쪽 측에서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타협은 쌍방이 적당한 만족과 실망을 동시에 떠안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대처 방식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고, 자신이 어떤 때에 어떤 대처를 하는지 알고 있는 것이다. 


갈등 대처 유형의 종류에 대해서 배우고 나서 몇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우선 갈등 자체가 아니라 나의 갈등 대처 방식 때문에 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각자에게는 갈등에 대처하는 일정한 유형이나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내가 어떻게 갈등 상황에 반응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상황에 부적절한 방식으로 대처하는 행동 습관 때문에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스트레스만 커져간다는 것을 몰랐다. 회피해야 할 일이 아닌데 뭉개고 있다가 일을 더 키우기도 하고, 적절히 수용해야만 하는 순간에 욱하고, 맞붙어야 할 때 정면대결을 하지 못하는 등의 미숙한 대처 방식이 나의 괴로움을 더했다. 


지금도 모든 갈등에 능수능란하게 적절히 대처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는지는 알아채려고 하고 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방식이 갖는 한계를 어느 정도 감안하고 있으면, 막연하게 화만 내고 있지는 않게 된다. 



갈등 상대도 갈등 대처 방법을 잘 모를 수 있다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갈등 상대 또한 어떤 대처 방식에 고착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도 모르는 사이에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대처하는 방식이 나와는 정말로 다를 수 있다. 사람의 기본적인 성격이나 환경, 습관 등이 영향을 미쳐서 각자 다르게 반응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서로 다른 대처 방식이 서로 부딪혀서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기도 한다. 


이때는 정말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시작해야 한다. 사람들은 정말로 갈등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는 바가 다르고, 그에 따라 반응하는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우선 서로가 ‘다르다’는 것만 염두에 두고 시작하면 정신을 잃지 않고 괜찮은 방향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물론 막상 갈등이 벌어졌을 때 본능적으로 열이 받거나 당황되고 얼어버리는 건 여전하다. 질러버리고 싶거나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은 충동은 여전, 여전하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 급작스럽고 불명확한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이 머릿속으로 진행된다. 이미 진행한 일에 대해서도 대처 방식 유형을 기준으로 회고해 보곤 한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부끄러워서 숨고 싶을 때도 있지만, 이해가 되면 어느 정도 감정이 수습되고 앞으로 갈 길이 보인다. 지금은 상황상 주로 순응하는 식으로 대처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가정을 돌보고 양육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참고 인내하는 경우가 많음), 이 방식만을 고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결국에는 싸우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고, 용기 있고 대담하게 갈등 상황을 바라보고 접근해 가고 싶다. 협력은 어려운 과제이지만, 배우고 습득해 나가다 보면 익숙해질 것이다. 우선 갈등이란 게 무엇이고 특정한 대처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꽤 괜찮게 발걸음을 뗄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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