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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들 Mar 11. 2024

갈등이 생기면 화를 내는 이유

갈등이 일어났을 때 나는 왜 화가 나는 걸까?

내 뜻대로 무언가가 진행되지 않으면 왈칵 화가 올라온다. ‘화가 난다’고 명확하게 표현할 순 없을지라도 짜증과 신경질이 올라오거나, ‘헉’하며 숨이 막히거나 머리 한쪽이 쨍하게 깨지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화는 나의 몸의 상태나 대상, 상황에 따라 강하게 혹은 약하게 올라온다. 몸 상태가 좋으면 화가 덜 나고, 기존에 몸 상태나 기분이 안 좋으면 같은 일에도 화를 더 낸다. 화를 내도 될만한 만만한(?) 상대에게는 더 심하게 화를 내고, 찍소리도 할 수 없는 상대에게는 화를 거의 내지 않는다.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중요하게 여기는 일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다. 


이렇게 보면 화는 단순한 기계적 신호만은 아닌 듯하다. 주변 조건을 심하게 의식한다고 해야 할까? 화가 아니라, 즐거움이나 슬픔 같은 감정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감정들은 나나 상대를 고려하긴 하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고 드러난다. 


웃음이나 눈물은 주변 상황에 따라 나거나 거둬지진 않는 편이며, 오히려 주변에서도 이런 반응을 자연스럽게 받아준다. 게다가 이런 감정 표현은 관계에 악영향을 주진 않는다. 오히려 더 끈끈하게 만들 때도 있다. 


화는 조금 다르다. 화를 내고 나면 관계가 어그러지고 갈등이 심화되는 경우가 많다. 갈등을 일으킨 원인은 그대로인 채, 화를 (심하게) 냈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갈등 사유가 되어 기존의 갈등을 가중시켜 버린다. 그래서 웬만하면 화를 억누르고 참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몸이 상한다. 


앞에서는 화를 직접적으로 내지 않지만, 나중에 은근한 방식으로 되갚아 주는 경우도 있다. 은근슬쩍 화가 나는 대상을 불리하게-최소한 도움을 주지 않는 식-만든다거나 말속에 뼈를 담아 비꼬아 기분을 나쁘게 만들기도 한다. 화를 우회적으로 내는 방식이다. 앞에서 화를 폭발시키는 것도 뒤에서 은근히 화를 내는 것도 갈등을 심화시키고 관계를 나쁘게 만든다. 앞에서 내든 참다가 뒤에서 내든 화는 상대를 공격하는 형태로 나타나기에 갈등을 심하게 만든다. 


그런데 왜 갈등이 생기면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일까? 화는 기본적으로 ‘~해야 한다’는 당위적 사고 때문에 생겨난다고 한다. 내 생각에 ‘이러이러’ 해야 하는데 되지 않을 때 화를 내게 된다. 더 구체적으로 나눠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갈등은 서로 다른 것끼리 마주칠 때 생기는데, 이때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화가 난다. ‘사람은 모두가 다르다’는 건 아주 당연해 보이고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머리로는 알고 있는 이 당연한 사실이 내 눈앞에 펼쳐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함께 생활하는 가족끼리 서로 다른 성격과 생활 방식 때문에 부딪히고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시아버님의 무뚝뚝하고 직선적인 말투 때문에 화가 나고, 자신의 기분에(만) 충실한 초등학생 아이를 보며 화가 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했을 때 그 자리에 우뚝 서서 꼼짝도 하지 않는 여섯 살짜리 아이를 보며 화가 난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특성들이 불편할 순 있지만 화가 날 일은 아니다. 경상도에서 태어난 칠십 대 남자 어른의 말투는 사근사근하지 않다. 사춘기 초입에 들어간 아이는 자기 기분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게 맞고, 자아정체감을 쌓아가는 유아기에 자신의 의지를 조금은 미숙한 방식으로 관철하려고 하는 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뜻이다. 


그들의 눈에 80년대생 사십 대 아줌마의 행동이야말로 이상하게 비칠 것이다. 그것 때문에 화가 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일단 내 입장에서 화가 불거지면 다른 사람의 입장은 거의 돌아볼 수가 없다. 단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신경이 거슬려지고 ‘욱’하고 화가 올라온다. 만약 정말로 그들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마음 깊이 이해한다면 그 모든 일을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그런데 단순히 차이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화가 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유지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깨졌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부드럽고 나긋나긋하며 직선적이지 않은 말투를 듣길 원한다. 그것이 편안하고 좋은 말하기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이 상태에서 ‘툭’하고 던져지는 강한 말투를 들었을 때, 내가 듣고 싶었던 말투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좌절하고 화를 내게 된다. 


조용한 오후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아이들 때문에 소란스럽게 지내야 한다거나, 집안을 정리하고 싶었던 내 뜻과는 다르게 다른 가족 구성원은 더욱 빨리 집안을 어지른다거나, 빨리빨리 걸어서 목적지에 도달하고 싶은데 아이 때문에 자꾸 멈칫멈칫하게 되고 심지어 길거리에 멈춰 서서 울어버린다면 화가 난다. 


그들과 내가 다르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바가 막혀버리면 여지없이 화가 나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며느리 입장에서는 침묵하거나 피하고, 엄마 입장에서는 짜증을 내며 잔소리를 하거나 아이를 야단을 치게 된다. 


이럴 때는 상대의 행동이 아니라 내가 원래 하고자 했던 의도를 점검해 봐야 한다. 나긋나긋하고 부드럽고 간접적인 말투가 과연 좋은 것인가? 꼭 그런 말투로 이야기해야만 되는 것인가? 가만히 들여다보면, 꼭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강한 말투가 나를 공격하는 것도 아니고, 만일 상대가 공격하려는 목적을 가졌더라도 내가 꼭 그렇게 들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 내가 갖고자 했던 공간과 시간은 꼭 그러한 방식으로 지켜져야만 하는 것일까?


이 방식은 다른 상황에도 적용된다. 직장에서 상사가 나를 배려하지 않고 업무를 진행할 때, 후배 직원이 속 터지고 미련하게 일을 처리할 때 화가 난다. 상대가 절대적으로 잘못한 것일까? 내가 하고자 하는 어떤 상태가 있었는데 그것이 좌절되어서 화가 나는 것인가? 


더 나아가 내 존재가 무시되었다고 느끼게 된다면 더욱 화가 많이 난다. ‘상대방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나를 무시하는 거야.’하는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화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모든 싸움이 처음엔 작게 시작된다. 처음에는 서로의 의사를 알리고 조심해 달라는 정도로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반복이 될 때 ‘상대방이 나의 말을 무시하고 듣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흐르게 된다. 다른 이유나 상황에 대해서 돌아보기 전에 ‘나를 완전히 무시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나의 힘을 과시해 보여주고 싶은 충동이 불쑥 솟아난다. 상대를 굴복시켜서 나의 존재감을 되찾고 싶어 진다. 자존심 싸움을 하는 것이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유치하기 때문에 더욱 원색적이고 강하게 그 모습이 드러난다. 


사춘기 자녀와 갈등이 심해지곤 하는데, 청소년에 접어든 아이가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이 큰 이유다. 아무리 청소년의 기분이 들쑥날쑥하더라도 어른이 그것을 받아치지 않으면 큰 마찰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가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부모의 권위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 것 같아 화가 난다. 아이를 압박하기 위해 화를 내면 둘 간의 기싸움은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다.


조금 더 파고 들어가 보면, 화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할 때 나온다.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을 때, 자신의 정체성이 무시되었다고 느낄 때 왜 화가 나는가. 그 상황에 대한 불확실설이 급격히 올라가기 때문이다. 


잔잔한 물살을 타고 앞으로 서서히 나아갈 것이라고 예측했던 배가, 갑자기 알지 못했던 다른 배가 나타나서 충돌되었을 때 자신의 예측은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웬만하면 자신이 알고 있고 익숙하게 여겼던 방식대로 움직이려고 애쓸 것이다. 하지만 상대도 똑같이 그러하기에 둘은 서로의 익숙한 세계를 깨뜨려야만 할 것이다.  이때 빨리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다면 괜찮겠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순간 방향을 상실했을 때 화를 터뜨리게 될 것이다. 


화는 자기 자신의 중요한 부분이 침해되었거나 빼앗겼다고 생각되었을 때 치솟아 오르기도 한다. 중요성이 더할수록 화는 더욱 거세진다. 어린아이는 손안에 쥔 먹을거리를 빼앗기면 거세게 화를 낸다. 아이에게는 먹을 것, 그리고 ‘눈앞에 있는 내 것을 지키는 게’ 정말로 중요하다. ‘다음’을 기약한다는 개념이 없으므로. 


커 가면서 중요한 것의 종류와 범위는 달라진다. 돈이나 부동산 같은 소유물일 수도 있고, 가족이나 친구 등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가치나 이념, 명예나 성취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각자 다르긴 해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면 화가 난다. 


이렇게 본다면, 화는 자신이 원하는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어서,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어서, 불확실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고 싶어서 낸다고 볼 수 있겠다. ‘서로 다르다’는 표면적인 이유로 화를 낸다고 생각했지만, 그 내면에 여러 이유가 깔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화가 나는 이유를 안다고 해도 갈등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화가 올라오는 건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화가 나는 상황에서 자신의 화를 돌아볼 기회는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화가 나는 반응 자체가 갈등 상황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그 화를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따라 이후의 양상이 달라질 뿐이다. 


화를 내지 않거나, 참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조금 더 들어가 ‘내가 화를 내어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떠올려 보면 화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화가 나는 순간은 내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갈등 상황이 잘 극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화가 난다면, 그건 ‘갈등을 잘 해결해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고 싶은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보면 좋겠다. 그리고 이때 화는 끝까지 갈등을 극복하는 에너지원으로 사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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