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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들 Mar 18. 2024

다 좋아서 갈등, 다 싫어서 갈등

마음속이 시끄러우면 모든 게 갈등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심각하게 고민했었던 것이 있었다. ‘시골에서 살까? 도시로 돌아갈까?’ 사실 약 삼 년 전에 시골로 이사를 했었다. 경북 영주 경계에 있는 산촌 마을에 들어가 살았던 것이다. 맨 처음엔 코로나19를 비롯한 여러 가지 개인사로 인해 심신이 지쳐 있었던 터라, 도피하는 심정으로 훌쩍 떠났었다. 아이 둘까지 데리고. 


맨 처음엔 1년살이를 할 요량으로 세를 얻어 들어갔었다. 살다 보니 마을에서 여러 관계가 형성되었고 마을에서 사는 것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서 ‘계속 살아볼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또 걸리는 것이 도시에 남겨두고 온 집과 남편(?)이 있었다. 남편은 직장을 다녔기에 도시에 남았고 주말에만 왔다 갔다 했다. 이동 거리가 꽤 되어서 미안했다.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한동안 주춤주춤 거렸다. 그래서 1년 뒤에 도시로 돌아갔는데, 다시 시골에 가고 싶어졌다. ‘아예 귀촌해야지.’라는 생각으로 다시 내려갔지만 결국에는 마을을 떠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갈등을 겪게 되었는데, 여기에서는 나의 내면 갈등을 중심으로 그 과정을 적어 보려고 한다. 


내면 갈등에도 종류가 있다


내면 갈등은 사람의 생각과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말한다. 사실 어디까지가 내면이고 어디서부터가 외부 갈등인지 구분이 모호하기는 하다. 일단 다른 사람이나 외부 상황에 크게 관련되지 않으면서, 한 사람 내부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내면 갈등이라고 하겠다. 


베르켈의 갈등 트레이닝*에서는 내면 갈등의 종류를 이렇게 나누고 있다. 접근-접근 갈등, 회피-회피 갈등, 접근-회피 갈등이다. 접근-접근 갈등은 둘 다 하고 싶어서 심적 갈등을 겪는 경우이다. 짜장면도 먹고 싶은데, 짬뽕도 먹고 싶은 경우이다. 자유롭게 혼자 살고 싶지만, 안정적으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가정도 꾸리고 싶은 경우, 일도 하고 싶은데 아이랑 시간도 많이 보내고 싶은 경우.


살다 보면 좋은 선택지를 두고서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나의 경우에도 시골에서 살 수도 있고, 도시에서도 살 수 있는 아주 좋은(?)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내적 갈등을 겪게 되었단 말씀. 


생각해 보면 아무나 귀촌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의 경우에는 나보다 먼저 귀촌한 지인이 있었고, 마을 사람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어서 가능했다. 동시에 도시에 집을 두고 시골에 따로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보면 정말 행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행운 덕분에 마음이 시끄럽게 된 것이었다. 


행복하지만 괴로운 고민도 있다


‘짜장면 먹을까, 짬뽕 먹을까’하는 고민도 정말 행복한 고민이다. 우선 먹을 수 있고, 음식값을 지불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으니까 이런 갈등을 하게 된다. 아프거나 시간이 너무 없어서 먹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면, 외식을 할 수 있는 돈이 없다면 아예 할 필요가 없는 고민이다. 그런데 선택을 할 때는 꽤나 괴롭다! 좋은 걸 버려야 하니까 말이다. 좋은 걸 얻는 기쁨에 비해, 포기해야 하는 슬픔은 얼마나 강력한가. 


이렇게 되면 접근-접근 갈등이 조금 더 해결하기 어려운 접근-회피 갈등으로 바뀌어 버린다. 둘 다 선택하고 싶고(접근) 하나를 포기하기는 싫은(회피) 상황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아무거나’를 외치게 된다. 그런데 ‘아무거나’를 선택해도 결국에는 무언가를 골라야 한다. 선택하는데 시간만 더 걸리게 된다. 끝까지 선택을 미룬다면, 다른 사람이 골라주는 것을 먹어야 된다. 이런 고민을 반영하여 짬짜면이 나왔다. 선택하기 힘드니 둘 다 취하는 것인데, 다들 알겠지만 짬짜면은 왠지 아쉽다. 가격을 맞추려고 각각의 음식의 질을 낮추기 때문에, 둘 다 맛이 조금씩은 덜하다. 어쨌든 하기 싫어도 선택은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둘 다 선택하고 싶지 않은데, 해야 돼서 갈등


두 번째 내면 갈등은 회피-회피 갈등이다. 이 유형은 두 가지 선택지 모두 피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 할 때 발생한다. 시골에 정착하기로 결심하고 난 후에는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바로 집을 마련해야 했다. 단기로 살겠다고 생각할 때와는 달리,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했다. 


잠시 빌린 집은 좁고 구조가 적당하지 않아서 아이들이 클 때까지 장기간 생활을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집을 고려해 보았다. 집은 넓어서 좋았는데 문제는 이미 세입자가 오랜 기간 거주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결국 마을에 살기 위해서는 불편한 집을 감수하고 구매하든지, 마음의 불편함을 안고 마을 이웃을 살던 집에서 내보내야 했다. 아… 둘 다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피치 못할 상황이 단순하면 이걸 ‘딜레마’, 보다 심각할 경우에는 ‘비극’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회복이 불가능한 피해나 상처를 입었다면 비극적 상황이 연출되었을 수도 있겠다. 다행히 내 경우에는 딜레마에 빠졌다가, 둘 다 회피를 함으로써 그 딜레마 상황에서도 벗어났다. 


좋은 데 나빠


마지막 내면 갈등은 접근-회피 갈등(아까 접근-접근 갈등에서도 등장했던)이다. 가치 있는 결과도 가져오지만 폐해도 가져오는 갈등 유형이다. 두 가지 대안이 모두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가지고 있는 경우이다. 사실 현실에서는 이런 이중적인 상황이 더욱 흔하다. 


나의 경우, 시골 마을에 계속 살려면 공동체 생활을 지속해야 했다. 공동체 생활은 좋기도 싫기도 했다. 좋았던 점은 역시 사람들과의 연결감이었다. 시골에서는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일이 많다. 마을 관리는 절대로 혼자서 할 수 없기에 공동의 문제를 다루려면 수시로 만나고 이야기를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마을 사람끼리의 끈끈한 동지애(?) 같은 것이 생겼다. 


동시에 이런 끊임없는 연결은 부담이 되기도 했다. 어떨 때는 몸이 피곤하거나 힘들 때도 마을 일에 참가해야 하기도 했다(물론 자발적 참여의식을 가지지만). 어떤 일을 할 때 주변을 신경 써야 하기도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신중하게 해나가야 한다.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이게 스트레스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러면 도시 아파트에서 홀로 편하게 살면 좋을 것이다. 물론 도시 생활은 편하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필요한 물건은 집 앞 마트에서 해결하고, 단지 내에 보수할 일은 이미 관리팀에서 해결하고 있다. 쓰레기 수거, 정원 손질, 도로 보수, 놀이터 안전 등 시골에서는 사는 사람이 직접 해결해야 하지만, 도시에선 나도 모르게 누군가가 알아서 해준다. 


동시에 이런 편리함은 단절과 소외를 가져오기도 한다. 필요한 것을 모두 조달하면서도 아는 사람과 만날 일이 없다. 한 곳에 많은 사람이 밀집해 살기에 ‘금지’ 해야 하는 것도 많다. 놀이터 공놀이 금지, 화단 출입 금지, 흡연 금지, 야영 금지, 흙놀이 금지……. 수많은 사람들 속에 놓여있으면서도 끝도 없이 동떨어져 있는 듯한 외로움을 느끼는 건 현대 도시인이 겪는 공통 감정이다. 


이웃 간의 끈끈한 연결에는 접근하고 싶지만, 관계에 쏟는 에너지와 스트레스는 피하고 싶다. 도시의 편리한 시스템엔 접근하고 싶지만, 인간적 정을 느낄 수 없는 단절과 소외감에서는 벗어나고 싶다. 


이런 이중적인 감정은 갈등의 본질에 해당한다. 사랑하기도 하지만 밉기도 하고, 끌리지만 밀어내고 싶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지만 지질해 보이기도 하고, 하고 싶지만 하고 싶지 않은 그런 감정이 내면 갈등의 생생한 모습이다. 


결정 뒤엔 늘 아쉬움이 남지


이렇게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이중적인 내면의 드라마를 그대로 바라보면서, 결국엔 결정을 내려야 한다. 모든 것을 동시에 움켜쥘 수는 없는 노릇이다(여기에서의 포인트는 동시에!). 좋아하는 것 하나를 포기하거나, 그나마 덜 싫어하는 것을 취하거나, 좋기도 싫기도 한 것 양면을 모두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결정하는 과정 뒤에는 늘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마주하지 않으려고 결정을 끝없이 미루는 경우도 있다. 결정 후에 일어날 손해나 피해를 입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한다. 시간이 저절로 갈등을 해결해 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경우 결국엔 선택의 날이 오고야 만다. 가끔은 그 선택을 미루고 앉아 있어서 갈등이 더욱 커지기도 한다. 


갈등을 잘 겪어낸다는 것은 뒤섞인 여러 갈래의 마음속에서 가야 할 길을 결정하고, 그에 따르는 아쉬운 감정이나 입게 될 실질적 피해까지도 받아들이고 잘 처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또한 갈등을 통해 얻게 된 것에 기뻐하고, 최악을 면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나에겐 힘든 일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을 말할 것이다.


결국 나는 마을에서 빠져나와 도시에 살기로 결정했다. 남편과 함께 살게 되어서 좋고, 가족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갖게 되어서 기쁘다. 대신 마을 사람들을 만나서 일상을 나눌 기회가 줄어들었고, 정원에 꽃을 심을 수 없게 되어서 아쉽다. 하지만 어떤 것을 선택하면, 또 어떤 것은 놓아야 한다. 그래서 괴롭긴 하지만, 괴로울 일만은 아니다. 


위에서 ‘모든 것을 동시에 움켜쥘 수는 없다’고 했는데, 지금 이 순간 동시에 원하는 것을 취할 수는 없지만 시간의 순서에 따라서 순차적으로 이뤄나갈 수는 있다. ‘지금 당장!’이라는 조급함만 내려놓으면 가능하다. 또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두 가지의 길 이외에, 원하는 것을 모두 취할 수 있는 제3의 안이 의외로 많이 존재한다. 


단절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마을 사람들과 계속 연락을 취하고 때에 따라 행사에 참여하고 필요한 것을 지원하면서 연결의 끈을 이어나갈 수 있다. 새로운 장소에서 다른 공동체에 참여하거나,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직접 공동체를 만들 수도 있는 일이다. 베란다 정원에 꽃을 심고 가꾸는 일도 가능하고 주변의 주말 농장이나 땅을 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범위를 조금 넓혀서 갈등을 바라본다면 더욱 많은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내면 갈등은 기존의 생각틀을 깨고 더 많은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기회라고 할 수 있겠다.



주석 

* 문용갑, 이남옥 (2019). 갈등 이해 분석과 대처를 위한 갈등 트레이닝. 학지사. Berkel. K. (2014). Konflikttaning: Konflikte verstehen, analysieren, bewaeltigen. I. H. Sauer-Verl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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