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절실한 소망이 일을 빨리 하게 만든다

하루만에 책을 쓸 수 있다고?

by 한들

이 책을 쓰겠다고 생각한 것은 우연하게 알게 된 책 때문이었다. <하루만 일하며 삽니다(박하루, 더블유미디어)>라는 책이었다. 발상이 획기적이어서 금세 끌려 들어갔다. 특히 책을 하루 만에 쓴다는 발상이 충격적이었다. 이것은 ‘충격’ 일 수밖에 없었다. 책을 쓰겠다고 결심한 지가 언젠가. 서른 살이 되면 책을 내겠다고 했는데, 이제 마흔이 거의 다 되어 간다. 십 년이라는 세월을 그냥 보내 버린 것이다.


바로 책을 쓸 수는 없으니, 자료조사도 철저히 할 겸 논문을 먼저 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나니, 아이 때문에 책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책을 쓰자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논문을 쓰는 와중이라고 해도,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해도 하루라는 시간을 내지 못할 정도까진 아니었다.


심지어 몇 년 전에는 출판사 대표와 만나서 앞으로 쓸 원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쓰고 싶은 원고에 대한 콘셉트를 가지고 있었고, 여기에 대해 편집자도 긍정적으로 여겼기 때문에 하루빨리 쓰면 되었다. 그것을 뭉개고 여태껏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중에, 더 많이 공부해서, 더 많이 자료를 찾아서 쓰겠다는 결심을 안고서 지금까지 온 것이다.


차라리 그 미팅이 있었던 그날부터 원고를 시작했더라면, 그날 첫 줄을 써 놓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은 그 책을 시중에서 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 ‘하루 만에 책을 쓴다’는 아주 극단적인 발상을 접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차려졌다.


예전의 나는 벼락치기의 고수였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일이 있다. 석사 2기 때 난생처음 논문이라는 것을 써서 학회에 발표를 해야 했었다. 주어진 시간은 단 2주. 놀랍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해서 지도 교수님께 못한다고 말씀드렸지만, 아주 쿨하게 '해보라'라고 말씀하셨다. 고민을 할 새가 없었다. 그때부터 논문 아이디어 떠올리고, 주제 정하고, 문헌 정리까지 다 마쳐야 했다.


머리 감고 말리면서, 다른 수업의 발제를 준비하면서, 잡지책을 읽으면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온통 논문에 뭘 쓸까를 고민했다. 그랬더니 의외의 곳에서 아이디어가 솟아났다. 평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잡지책의 내용을 설핏 봤는데, 이게 논문으로 연결되었다. 이 생각을 뒷받침하는 이론도 웬일인지 눈에 쏙쏙 들어왔다. 이론 책 한 장 읽으려면 시간이 꽤 필요했었는데 말이다. 급하니까 쓸 내용만 얼른 추려서 집필을 재빨리 하게 되었다.


학회가 열리기 전 날까지 완성이 다 되지 않자 밤을 새웠다. 자취방 창가 앞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정신없이 원고를 써 내려갔다. 분명 시작할 때는 밤이었는데, 고개를 드니 창에서는 환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지금 떠올려봐도 그때 의식이 한 동안 끊겼던 것 같다. 술 취해서 필름이 끊기는 것처럼, 논문을 쓰는 내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그렇게 몰입했었다.


결국 어떻게든 완성이 되었고, 발표를 했다. 다듬지 못하고 내보낸 원고여서 오탈자는 엄청 많았다. 그런데 석사가 이렇게 발표를 할 정도로 논문을 썼다는 이유와 논문 소재가 참신하다는 이유로 칭찬을 엄청 받았다. 특히 지도 교수님께서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그날은 기억에 남을 정도로 정말 기뻐서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 이후에도 논문이나 제안서를 쓸 때, 하루 이틀 정도 밤을 새우면서 글을 완성한 적이 많다. 그때는 외부에서 제시된 데드라인이 있었기에 그렇게 밤을 새우는 것이 가능했다. 프로젝트가 없어지고 오로지 나 스스로 글을 쓸 수 있는 순간이 다가오니, 선뜻 움직여지지 않았다. 프로젝트를 할 때에는 ‘이런 글은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다’, ‘내가 원하는 글을 마음대로 쓰고 싶다’고 툴툴 댔었는데, 막상 자유의 시간이 주어지니까 시작할 수가 없었다. 휑하니 아무것도 없는 황야에 홀로 놓인 것처럼 갈 길을 잃었고, 도달해야 할 목적지도 데드라인도 없으니 천천히 걸어도 되겠다고 생각하며 여기저기를 서성였다. 이것저것에 기웃기웃하며 관심 갖다가 결국 아무것도 마무리 짓지 못했다. 차라리 온전한 자유보다 한계가 주어지는 것이 결과물을 내는데 더 나았다. 그래서 도전을 해 보았다. 하루 만에 책 쓰기!


머릿속으로는 하루 만에 책이 만들어졌지만, 현실은… 지금 이 원고를 쓰는데도 며칠이 걸리고 있다. 야심 차게 시작은 했는데, 어느 정도 쓰다 보면 졸리고 힘들어서 계속할 수가 없다. 체력적으로 힘들다. 게다가 아이들 재우고 밤을 새우면서 글을 쓰다 보니 지구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 하루라는 시간을 쪼개서 며칠로 나누어 배분하기로 했다. 집중도는 떨어지지만 현실적 한계를 감안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 그 대신 손에서 글 쓰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속도가 엄청 빠르다.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면서 외부 일을 할 수 없으니 글을 더 많이 쓰게 된다.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니 위기의식이 더욱 고조되어, 더 글을 읽고 쓰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다.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더 절실하게 소망을 가질 때,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저력이 생기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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