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던지는 질문이 그렇게 중요하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두려움은 우리가 무력하다는데 대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심원한 두려움의 대상은 우리가 측정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겁내는 것은 어둠이 아니라 빛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이기에 이렇게 총명하고, 매력적이고, 재능 있고, 멋진가? 여러분이 되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이 작은 그릇에서 노는 것은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움츠러들어서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 주변에서 불안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전혀 현명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증명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우리 중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자신을 빛나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그와 같이 하도록 허락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 우리의 존재는 다른 사람들을 해방시킵니다.
이 글은 다이애나 휘트니와 아만다 트로스텐 블룸, 케이 레이더가 지은 책 <A리더십> 중에서 발췌한 내용이다(이들도 어디선가 인용했는데 출처가 명확치 않다).
A리더십 중 A는 Appreciative의 앞글자이다. ‘고마워하는’, ‘감탄하는’, ‘감상을 하는’ 등의 뜻을 가진 영어 단어다. 이 리더십의 특징은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해 나갈 때, 어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 가진 강점을 발견하고 인정하고 밝혀주며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글에는 이런 질문이 나온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이기에 이렇게 총명하고, 매력적이고, 재능 있고, 멋진가?
이 질문을 나에게 던졌을 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반발심이 일어났다.
‘내가 무슨 총명해? 제대로 책을 읽어본 적도 없고, 공부를 진중하게 해 본 적도 없는데… 어떤 이론에 도통한 것도 없고, 걸작을 써낸 것도 아닌 데 말이야. 뭐가 총명해?’
‘내가 무슨 매력이 있어? 애 둘 낳은 배불뚝이 엄만데. 뱃살 좀 봐… 얼굴은 왜 이렇게 둥글고 퉁퉁한지. 아침엔 머리도 안 감고 다니는데. 옷도 그냥 어디서 얻은 거 걸치고 다니는데… 패션도 모르고, 화장법도 이상한데 무슨 매력이야?’
‘재능은 무슨 재능이야? 무언가 제대로 잘 해내는 것도 없는데 말이야. 그럴듯한 성취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특출 난 것도 없는 데 말이지.’
‘내가 멋지긴 뭐가 멋져? 내가 하고 다는 건 다 남루하고 초라한데. 잘 치우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고 말이야. 감각이 없어서 좋은 것도 허름하게 만든단 말이지.’
이런 말이 쉼 없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하고, 못생기고, 서툴고, 멋지지 않은가?’라고 물어보는 것에 익숙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로 놀랍다.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여 살아왔다는 사실이 말이다.
질문을 어떻게 하는가가 정말 중요하다. 그것에 따라 답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난 왜 이렇게 멍청하지?’라는 질문을 하면, ‘그래. 지금은 멍청하니까 더 많이 배워야 해. 지금의 상태로는 누군가를 가르칠 수가 없어. 지금의 상태로는 무언가를 써서 내놓을 수가 없어. 더 연습하고, 책 읽고, 정리해야 해.’라는 대답이 나온다.
‘난 왜 이렇게 못생겼지?’라고 질문하면 ‘그래. 나는 못생겼으니까 다른 사람 앞에 설 수 없어. 살을 빼야 해. 예쁜 옷은 살 빼고 사야지.’라고 대답한다. ‘난 왜 이렇게 서툴지?’라고 질문하면, ‘더 연습해야 해. 내가 하는 건 다른 사람 앞에 내놓을 수가 없어.’라고 대답한다. ‘왜 이렇게 멋있지가 않지?’라고 질문을 하면 ‘네가 가진 것이 없으니까 그렇지. 무언가 부족해서 그런 거지. 내면에서 풍겨 나오는 멋이 없어서 그런 거지.’라고 대답한다.
이렇게 질문하고 대답하면, 나는 그저 그런 변변치 못한 사람이 된다. 여기에서 궁금한 건, 이 질문과 대답이 왜 이렇게 자동적으로 떠오르고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글로 써 놓고 보니, 위에 적은 질문과 답이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이 자신감 없는 질문과 답은 무언가 지향해야 할 지점으로 도달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실인지 모른다.
‘아는 게 부족하니까 매력이 없으니까 제대로 하는 게 없으니까 멋지지 못하니까, 나는 아직 무언가를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지금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다.’ 나도 모르게 이런 신념을 가지고 살아온 것이 아닌가.
결국에는 무언가 제대로 하는 것을 피하려고 이렇게 버티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것은 대단한 게으름의 징표이다. 이미 배운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지금이 가장 젊고 예쁘다. 재능은 너무 많아서 문제다. 내가 살고 있는 삶, 만나는 사람, 아름다운 가족, 하고 있는 일은 얼마나 멋진가. 누군가가 갖지 못 할 라이프로 살아가고 있는 중인데, 무엇이 부족한가.
이것을 인정하고 나니, ‘그 다음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잇따른다. ‘이미 가진 것, 충분히 있는 것을 어떻게 나눌까.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해 볼 수 있을까?’하는 질문이 던져진다. 해답을 찾기 위해 첫 걸음을 떼는 것을 막는 것은 또 다시 두려움이다. 하지만 이미 가진 것이 많고 충분하다는 것을 인정한 이상 두려움이 여전하다 해도 한걸음 더 나아갈 용기를 낼 수 있다.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