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변화 프로젝트 #1
변화를 시작해야 할 타이밍을 피해버리지 말자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혼란스러워진다. 정신을 잘 차릴 수 있다면 이런 상황도 어느 정도 헤쳐나갈 수 있다. 그런데 멘털이 붕괴되면 괜찮은 상황도 어려워지게 마련이다. 그동안 믿어왔던 것이 믿을 수 없게 되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던 것이 무의미해지고, 지금까지 해 왔던 습관이 모두 부질없게 여겨진다. 관성으로 이어져왔던 삶에 금이 가고 균형이 허물어지면서, 혼돈에 빠지고 만다. 길을 잃고 마는 것이다. 이것을 위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갈 길을 알지 못하는 위기에 봉착하게 되면 그 자리를 피해버리고 싶다. 놀라고 화나고 슬픈 것을 오롯이 느끼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결코 편안하지 않고, 매우 고통스럽다. 고통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아픈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고통을 억지로 벗겨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어떤 사람은 고통을 잊게 해주는 것을 찾아다닌다. 술도 마시고, 게임도 하고, 성을 탐닉하기도 한다. 고통보다 더 자극적인 수단을 찾아서 정신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서 고개를 돌려버리는 경우도 있다. 가야 할 곳에 가지 않거나 잠을 하루 종일 자거나 혼자서 방에 틀어 박혀 있는 것이다. 외부의 자극 일체를 끊어버려 고통을 떨쳐내고자 한다. 혹은 일부러 일을 만들어서 하기도 한다. 일에 집중하면서 에너지의 방향을 바깥으로 내보려고 하는 것이다.
허무하게도, 이러한 시도 모두가 존재하는 고통을 없애진 못한다. 있는 것을 갑자기 없는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이 모든 것은 고통을 견디기 위한 부차적인 방법이다. 가장 좋은 것은 고통이 다가왔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고통을 바라보는 것이다. 엄두가 나진 않지만 그 길을 통과하지 않으면 잠시 잊고 있던 문제가 언젠가는 되풀이된다.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같은 문제이고, 외면하면 할수록 강도는 더욱 커지고, 현실은 더욱 꼬인다.
차라리 이 모든 시도가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버티는 것이 더 나은 일일 수 있다. 자신의 불안정하고 혼돈스러운 상태를 느끼면서 그대로 표류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혼돈을 부정하고 피하려고 애쓰면 오히려 두려움이 커진다. 혼돈 속에 가만히 자신을 내맡기면 생각보다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어느 정도는 아무 결정도 하지 않은 채 사태를 파악하고 마음을 정리하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힘든 상황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여기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소극적 수용력(negative capacity)’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어 반가웠다*. 소극적 수용력은 문제를 방치하지는 않지만 눈에 띄는 특정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기다려 보는 능력이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재빨리 정리해 버리려고 하지 않고 모호함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오히려 상황을 개선하는데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고 현실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소극적 수용력은 견디기 힘든 것일지 모른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고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는 일에 계속 신경을 쓰며 매달리는 것이 생각보다 쉽진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떤 일은 당장 내가 손 쓰는 것보다 시간과 상황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되어가는 것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기도 하다.
나에게 진짜 변화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라면, 더 이상 예전처럼 살아가다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어렴풋하게 들어온다면, 단기적인 대응책으로 맞서기보다 혼란 속에 머물며 얼마간 방황을 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런 결과 없이 떠도는 시간이 헛되고 한심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러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맞닥뜨려야 하는 문제를 계속 생각해 본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전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지속해 나가지만, 내면에선 고요히 삶을 바꾸는 혁명을 준비하는 것이다.
변화를 하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가 든다. 이 혼돈과 방황의 시간이 변화의 동력을 마련하는 시간이 되어 줄 것이다.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견디는 힘>, 하하키기 호세이, 클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