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함 꺼내 놓기

긍정변화 프로젝트 #2.

by 한들


이름 붙이기는 모든 변화의 시작이다


그러면 눈앞에 닥친 혼란을 어떻게 직시할 수 있는 것일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그 상황이 무엇인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무엇 때문에 그리 혼란스러운 것인지, 이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알 수 없는 막연함이 사람을 힘들게 한다. 그 막연함을 우선 해소해야 한다.

정리정돈을 하려면 눈앞에 보여야 한다


막연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서만 뱅글뱅글 돌고 있는 생각과 감정의 뭉치를 바깥으로 꺼내 놓아야 한다. 이 뭉치는 분명히 질서도 없고 형체도 묘연하여 손에 잡히지 않는다. 괴상한 젤리 형태일 수도 있고, 먼지 덩이일 수도 있고, 엉켜버린 실타래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려워서 아무것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이상한 것이 내 안에서 나왔다는 것을 바라보면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될 테니.​


요즘 집안 정리를 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집안 정리를 하려면 우선 집안의 모든 물건을 바깥으로 끄집어낸다. 집주인은 끝도 없이 나오는 물건을 보면서 놀란다. 기억에도 없는 다양한 물건들이 다 자기 집안에 있었다는 것을 눈앞에서 확인하고는 충격에 휩싸이곤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정리 정돈을 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을 꺼내 놓고 눈앞에서 확인을 해야 한다. 현재의 상태를 말이다.

집안의 물건이야 손에 잡히니까 손을 갖다 대면 바깥으로 끄집어낼 수 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생각이나 마음은 어떻게 바깥으로 꺼낼 수 있을까. 이건 언어를 통하는 수밖에 없다. 말과 글이 아니면 눈앞에 두고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텔레파시 같은 것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육감이나 염력이 없는 이상 말하거나 쓸 수밖에 없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것이 서툰 사람에겐, 말과 글로 생각과 마음을 내놓는 것이 꺼려질 수 있다. 반가운 소식은 평소 말을 잘하거나 글을 잘 쓰던 사람도, 자신의 위기 상황 속에서는 다 '어버버'한다는 것이다. 결국 스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멋지고 아름답고 완벽하게 표현할 필요가 없다. 알지 못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아는 만큼 할 수 있는 만큼을 자신의 언어로 꺼내 놓으면,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더욱 쉬워질 것이다. ​


질문, 혼란 속으로 들어가는 열쇠

밖으로 꺼내 놓는 것을 더욱 쉽게 하기 위해서 '질문'을 하면 좋다. 사람은 질문을 하면 답을 찾으려고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그걸 해소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 아닌가. 질문을 계속 던지면 그와 관련된 답을 자꾸 찾게 되므로, 내가 처한 문제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때 질문을 잘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속으로 결론을 다 내려버리고 하는 질문도 있기 때문이다. '답정너(답은 정해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식의 질문은 하나마나하다. 괜히 부정적인 생각만 더 강하게 만든다.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한 것일까?"

=> 나는 불행하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든 상황에 빠진 것일까?"

=> 나는 힘든 상황에 빠져 있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 나는 무언가 잘못했다.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은 하나마나이다.​ 이런 질문은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한다. 이미 뻔히 보이는 답을 찾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없다. 대신 열린 질문을 해보면 좋겠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어떠한가?

나의 상태는 어떠한가?

나의 몸과 마음을 붙들고 있는 무엇일까?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쉽게 답을 내리긴 어렵지만, 답이 예측되지 않는 질문을 던져보라.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순간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답하면서 혼란 속에 휩싸여 있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가늠해 본다.


이런 질문을 던져줄 수 있는 누군가가 가까이 있다면 무엇보다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찾기 힘들다. 웬만큼 훈련되지 않고 일상 속에서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한 사람이 없다면 종이에 자신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 목록을 쭉 적어 놓고, 잠시 시간을 가진 뒤 하나씩 답을 해보면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간접적으로 마음을 들여다보는 수도 있다


이렇게 직접적인 문답의 방식도 좋지만, 간접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방법도 좋다. 혼란스러울 때는 자기 자신을 직접 들여다보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몸도 좋지 않을 것이고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을 경우가 많기에,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다 보면 나쁜 면에만 갇히기 쉽다. 아마도 사람이 힘들 때,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이유가 이것이 아닌가 싶다.

이럴 때는 오히려 자신에게서 관심을 거두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다. 이렇게 하기 위해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과 대화를 해 볼 수 있다. 주변 지인도 어쩌면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을 수 있다. 계속 그 어려움 속에 처해 있다면 공감을 받을 수 있고, 그런 상황에서 빠져나왔다면 이후 행로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친한 사람 중에 비슷한 상황을 구할 수 없다면,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을 찾아간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블로그 같은 곳의 글을 읽어 볼 수도 있고, 모임에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여의치 않는다면, 책이나 영화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강력 추천한다. 책이나 영화에는 각종 인생의 모습이 담겨 있다.

자신과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이 비슷하진 않더라도, 작품은 보편적인 인간성을 담고 있기에 어느 정도 통하는 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문제에 직면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작품을 통해 감정을 우회적으로 느껴보는 것이 나에겐 더 좋았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문제를 느낄 때 회피하거나 마비시키는 버릇이 있는 나로서는 직면이 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울고 웃으면서 감정을 느껴보고, 등장인물이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나의 모습과 연결시켜 마음도 풀고 힘도 얻고 방향성도 찾을 수 있었다.


혼란의 시기는 자신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


혼란의 시기는 자신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상황에 맞춰 살아갈 수 있었지만, 어느 날 그 방식이 자신과 어긋나 더 이상 맞지 않게 될 때 삶의 걸음을 어쩔 수 없이 멈추게 된다. 이때 자신이 걸어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더 큰 위기에 처하게 된다. ​


이땐 반드시 멈춰 서서 질문을 던지고, 누군가와 대화하고, 다른 인생의 모습을 탐색하면서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이전에 쓰던 낡은 틀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삶으로 한 걸음 씩 나아가야 또 한 동안 삶을 살아나갈 수 있다.

이렇게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이 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면, 본격적인 변화 프로젝트를 가동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변화를 시행하는 방법은 수만 가지가 될 것이다. 앞으로는 긍정과 미래의 관점으로 어떻게 변화를 효과적으로 추동해 나갈 수 있을지 소개해 보려고 한다. 특히 나에게 적용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내놓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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