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변화에 이름 붙이기

긍정변화 프로젝트 #3.

by 한들
이름 붙이기는 의미를 만드는 첫걸음이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는 참으로 유명해서 식상하게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이 만한 시를 또 찾을 수 있을까 싶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 중에서 일부


혼란을 잠재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실체 없는 것에 이름을 붙여 주는 것이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그'는 이름으로 불리어 '꽃'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이 된다. 그제사 나는 이제 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만지고 가꿀 수 있다.


혼란의 시기에 무언가 바꾸고 싶고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무언가 해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 방황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방황하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변화의 에너지가 올라와서 움직여야 할 때조차 방황만 하고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아가기 힘들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의 이름이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보다 명확해진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내가 정해 놓은 길의 이름을 떠올리면, 내가 지금 어느 곳을 향해 가고 있는지 금세 떠올릴 수 있다. 원하는 것에 더 빠르게 다가갈 수 있기도 하다. 그 이름을 떠올리면서 이것을 이루는 방법을 다양하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름을 지을 때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한 번 이름을 짓게 되면 바꾸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이름 안에는 앞으로 진행될 변화의 방향성이 담겨 있기 때문에 함부로 지을 수가 없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은 가볍게 여길 게 아니다. 이름은 앞으로 일어날 일의 청사진이다. 어떤 말을 붙이는지에 따라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변화의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분별과 선택이 필요하다. 분별한다는 것은 변화가 필요한 현재 삶의 부분을 알고 구분 짓는 것을 말한다.


변화를 느낄 때는 모든 게 다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가만히 보면 아마 인생 모든 부분이 다 문제는 아닐 것이다. 내가 지금 혼란스러운 것은 관계, 그중에서도 어떤 누구와의 관계 때문일 수 있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떤 부분이 잘 안 되기 때문일 수 있다. 나의 성격이나 능력 중 한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총체적인 난국이라고 여겨지더라도, 여러 부분으로 쪼개서 불편한 부분을 바라볼 수 있다. 만약 변화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면, 각각의 변화 거리에 이름을 붙여 주면 된다.


이렇게 하면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게 된다. 각각의 이름을 보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변화의 영역을 한 개에서 세 개 정도 추려보면 좋겠다. 너무 많으면 아마도 실천하는데 버거울 것이다.


이름을 붙일 때는 방향성이나 느낌을 주는 언어를 사용하는 게 좋다. 재미있는 애칭을 지으면 부르기도 좋고 정감도 가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름만 보아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단박에 느껴지는 단어를 쓰면 변화의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질 것이다.


나는 신년 계획을 세우면서 세 개의 변화 영역을 설정했다.


01. 가벼운 몸


재작년부터 건강이 중요해졌다. 몸이 축 처지고 움직이기 힘들었다. 육아를 비롯해 모든 일을 하는데 몸이 걸림돌이 되었다. 눈밑은 엄청 떨리고 기운이 떨어져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체중을 좀 줄일 필요가 있었다. 근력을 키우고 몸에 활력을 주는 것이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데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이어트’라고 하면 먹(지 말)고 살 빼는 것에 치중이 된다. 하지만 내가 정작 원하는 건 다이어트하는 게 아니고 몸이 조금 가벼워져서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어지는 것이다.


02. 정신 차리는 가계부


올해부터 가계부를 써 보기로 했다. 결혼한 지 십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가계부를 쓰지 않고 있다는 게 놀랍지만, 나의 부끄러움을 인정하기로 했다.


카드를 사용하고 은행이체를 하면 자동으로 내역이 저장되기 때문에 따로 가계부를 쓸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자동’이라는 편리함이 독이다. 그것이 나를 거쳐 지나가지 않기 때문에 의미를 발견하기는 어렵게 한다.


소비는 나의 많은 것을 말해 준다. 무엇을 먹는지, 어떤 생활을 하는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어디에 가는지…


한동안 육아에 집중하느라 자리에 앉아 생활을 정리해 보지 못했다. 당장 눈앞에 놓인 일에만 급급하다 보니 균형을 잃고 말았다.


나의 가계부는 돈을 아끼고 재테크를 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정신 차리고 생활을 하기 위해서 쓴다.


03. 즐거운 글쓰기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은 해 왔지만, 막상 글을 즐겁게 쓰지는 못했다. 먹고살려고 글을 과제나 일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글만 쓰고 싶었지만 그것이 두려워서 다른 일도 벌였다. 그러다 보면 막상 일에 집중하느라 글 쓰는 것은 뒷전이 되고 말았다.


이번 해에는 여러 잡다한 일을 벌이지 않고 나를 위한 글을 쓰며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글 쓰는 시간 동안 마감 때문에 조바심 내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은 내용으로 쓰고 싶은 만큼만 써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이 세 개의 변화 이름을 아우르는 하나의 이름을 정해도 좋겠다 싶다.


그것은 ‘군더더기 없는 삶’이다. 미니멀 라이프일 수도 있고, 비우는 삶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미니멀 라이프’는 집안 정리정돈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고, ‘비우는 삶’은 스님들의 명상이나 수행이 떠오른다. 이러한 느낌은 나의 주관적인 것이면서도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하면 된다.


보다 설명을 덧붙이면, ‘적당히 있으면서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버려서 단출한 생활양식을 유지하는 것’이 나의 변화의 제목이다. 그 밑에 ‘가벼운 몸’, ‘정신 차리는 가계부’, ‘즐거운 글쓰기’라는 구체적인 소제목이 있다.


이렇게 이름을 붙이고 나니까 조금은 우울하고 찌그러졌던 마음에 활력이 돌고 앞이 훤해진다. 이렇게만 된다면 조금은 괜찮은 한 해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스며든다.


이름을 붙이는 일은 긴장되고 설레는 일이다. 아이의 이름 지어서 출생신고에 올리기 전까지 엄청 고민했던 적이 있다. 그전까지 무명이었던 존재가 세상에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에 느껴지는 짜릿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에 대한 책임감도 무시할 수 없고 말이다.


이름을 붙인다는 건 알 수 없는 미래를 현실화시키는 일이고, 미래를 탄생시키는 일이다. 이름은 모든 변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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