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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구의 삶 Oct 27. 2022

인생이 오답 천지로 보일 때

언제부터였을까. C는 인생이 다 틀려먹은 것만 같았다.

안 맞는 업무, 상사와의 잦은 언쟁, 이 모든 게 지긋지긋했지만 당장의 돈과 계획이 없었기에 하루하루 연명하듯 회사를 다녔다. 먹구름을 끌고 다닌 채 출근 버스를 타는 C는 요즘 들어 자꾸 그날이 후회됐다. 이직을 결정한 그날.


"나랑 같이 해봅시다."

"네 해볼게요!"


당시 C는 이직 제안을 받고서는 많이 고민했다. 지금껏 해온 업무와 비슷한 카테고리긴 했지만 전문적으로 해보지 않았기에 확신 또한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기회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성실함과 끈기라는 무기를 앞세워 도전해보기로 했던 거다.


물론 성실함은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았다.

빠른 업무처리와 동시에 전체를 관망하는 통찰이 필요한 스타트업 회사에서 성실함이라는 무기는 변변찮았다. 회사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시간들이 점점 쌓여가자 C는 대표의 눈빛이 신경 쓰였고, 묘하게 기분 나쁜 그 눈빛...은 C가 원래 잘하던 것조차 못하게 만드는 위엄을 발휘했다.


기획 하나만은 뒤지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그것마저 못하게 되자 구렁텅이에 빠진 느낌이 들었다. 그 깊은 구렁 속에서는 '너 못해'라는 소리가 멈추지 않는 메아리 같았다. 도대체가 벗어날 수가 없는 나날들.


그래서 필사적으로 찾아야 했다. 잘하는 것들을 말이다.


Photo by airfocus on unsplash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었다. 다음 분기 플랜을 발표하고, '못 했다'는 피드백을 받고 퇴근한 날.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명확해서 변명거리를 찾고 싶지도 않은 날이었다. 그저 답답한 마음에 멍하니 있는데, 이전 회사 상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 브랜드 론칭 중인데 브랜딩 방향 좀 잡아줄 수 있어요? C님, 그거 잘하잖아요."


C를 좋게 봤던 상사는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C가 제일 먼저 생각났다고 했다. 퇴사 후 1년이 지나도록 교류가 없었기에 뜬금없었지만, 다소 높은 금액을 제시한 그의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금액보다 C를 멈칫하게 만들었던 건 '잘한다'는 말이었다. '못한다'는 말을 듣고 깊은 구렁에 또다시 빠지려던 찰나 '잘한다'는 말이 C를 끄집어내 준 거였다.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땐 못하는구나 싶었는데, 잘한다는 말을 들으니 '그래 나 잘했지?'라는 마음이 들었다. C는 자신이 이렇게 말 한마디에 쉽게 뒤집히는 사람이었나 새삼 놀라면서도, 꼭 잘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전 상사의 의뢰 건에 집중을 했다. 잘하는 것을 하니 재밌었고, 그 시간들이 C를 설레게 했다.


"C님, 예전에도 잘했는데, 이번엔 더 잘했네요?


몇 주 후 결과물을 건네고 받은 피드백이었다. 내가 왜 이걸 못할까?라는 생각에 괴로워했던 C는 '나는 이것보다 저걸 더 잘하는 사람'이라는 태도로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못한다는 사실에만 그대로 매몰됐다면 그 속에 묻혀버려 답답하다고 소리만 쳐대지 않았을까.


해도 해도 계속 안 되는 것이 있다면, 본인이 잘하는 것에 더 집중하면 된다. 그러니 스스로를 좀 더 열어놓을 필요가 있다. 과거의 나는 어땠는지 시간을 되돌려 보기도 하고, 지금의 나는 이 사람에게 어떤 평가를 받는지,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 들춰보면 된다.


C는 못하는 것은 인정함과 동시에 잘하는 것들도 인정을 하면서, 그렇게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가고 있었다.


가끔 타인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릴 때가 있다. 내가 잘하는 것,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이 있는데 그게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땐 내가 중히 여기는 가치를, 그 가치의 높음을 지켜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내 기준이 맞춰지지 않도록 좀 더 선명히 바라봐야 한다. 그러면 다 틀려먹은 것 같은 내 인생에도 조금씩 동그라미가 보이기 시작할 거다.

- 팀원 없는 팀장 C의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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