궐문을 나서며

by 서론

책이라는 것은 개인 혹은 다수의 생각이 담긴 물건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건물 또한 책만큼 생각을 머금는다. 사람의 사는데 있어 의식주가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라고들 한다. 여기에 주가 집인 만큼 사람은 사는 건물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바닥으로 하고, 바람을 벽으로 삼는 것이 아닌 이상.


최근 서울에 다녀왔었다. 살면서 고향을 떠나본 것이 손에 꼽는지라 큰 다짐이 필요했던 일었다. 하지만 익숙함보다 호기심이 더 강했던 것 같다. 굴에 틀어박힌 곰 마냥 지내던 이를 끌어낸 것이 무엇인지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궁궐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때문이었다. 경복궁 건물들의 처마가 뒤 북악산의 줄기와 자연스레 연결되어있다는 말에 참을 수가 없었다. 색동의 단청과 검푸른 기와가 갈매빛 산등성이와 이어진 모습이란, 상상만 해도 어찌나 신기하던지!


경복궁에 들어서자 반기는 것은 근정문이었다. 그러나 문은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왼편 처마 너머로 보이는 북악산에 마치 끼워 맞춘 것처럼 이어진 모습은 그저 문이 아니었다. 또 하나의 산봉우리 그 자체였다. 각 건물들의 처마는 북악산의 줄기를 잇고 이어서 그들이 곧 산맥인양 어우러진 모습은 감탄을 자아냈다. 작은 처마 봉우리들 사이로 우뚝하니 솟아 오른 북악과 인왕의 봉우리들 사이로 마치 세 번째 산 인양 당당히 버티고 선 근정전의 지붕은 말로 이룰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경복궁은 자연물의 웅장함을 뽐내지 않는다. 줄기줄기 이어진 산맥에 둘러 쌓인 방문객은 그 안에 함푹 안겨든다. 그리고 포근함 속에서 마치 신들린 모냥으로 궁내를 쏘아 다니는 것이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경복궁을 나왔다. 다음 목적지로 생각해 둔 것은 종묘였다. 경복궁에 한껏 취한채로 걸어 도착해본 종묘는 같은 시대의 건물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거친 돌들로 이어진 신로(神路)따라 이리저리 걷다보면 중앙의 정전에 도착하게 된다. 정전을 첫 눈길로 본 순간 위압감이 느껴졌다. 거친 박석으로 이뤄진 월대에 올라앉은 지붕은 무정한 직선과 묵직한 기왓장으로 바라보는 이의 숨을 턱턱 막는다. 동시에 박석들은 산의 너덜을 연상하여 사람의 힘이 자연을 짓누르는 형세를 보여준다. 자연스럽게 방문객을 끌어안는 경복궁과는 정반대로 숭고함에 가까운 위압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한참을 정전 앞에 서서 바라봤음에도 쉬이 눈길을 돌릴 수 없었다.


두 건물들이 같은 왕조에서 지어졌음에도 너무나도 다른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거대함은 몇 배나 차이나지만 자연에 안기고 사람을 안아 부드러움을 자아내는 경복궁과, 자연을 짓누르며 자신을 웅장하게 내세우는 종묘의 한 쌍은 비익조를 생각나게 했다. 날개가 하나밖에 없어 둘이 하나가 되어야만 날 수 있다는 새말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어찌나 두 궁궐이 눈에 선한지 아마 한 곳만 갔었더라면 쉬이 잊혀 졌을 것이다. 참 그립고 그리울 여행길에서 나는 궐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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