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차 전용 구역에 파킹한 차량
차를 몰고 출근을 하려는데 자가용 한 대가 앞을 가로막고 세워져 있었다.
주차공간보다 차가 넘쳐나는 아파트 단지이고 보니 이중주차는 예사다. 조금만 옮기면 나갈 공간이 생기겠거니 하고 세단의 후미를 힘껏 밀었다. 육중한 차량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당연히 기어를 중립에 놓았겠거니 생각하고 운전석을 들여다보았는데, 브레이크가 걸린 상태다. 배기량이 크면서 고가를 상징하는 마크를 떡하니 달아 놓은 차량은 감히 내 몸엔 손을 데지 말라는 듯 무례한 파킹 모드가 채워 있었다.
순간 열이 올랐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공간에서 기본적인 매너를 지키지 않는 독불장군을 만난 듯해서 기분이 상했다. 전화를 걸어서 차를 옮겨달랄까 고민하다가 시간이 급하니 아슬아슬한 틈바구니를 요령껏 헤쳐 나가 보기로 했다. 핸들을 좌우 앞뒤로 서너 번을 꺾고 움직여서 겨우 주차장에서 나올 수 있었다.
운전을 하며 시내를 주행하는 동안 불쾌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이중주차한 차량은 중립으로 세워져 있어야 했고 최소한 노란색 소방공간을 침입하지는 말아야 했는데 이 두 가지를 다 무시한 것이었다.
때때로 주차공간이 부족해서 밤 사이에 그렇게 세울 수도 있다지만 아침 출근시간이면 일찍 옮겨두는 것이 예의 아닐까 싶다. 그러다 정말 소방차라도 출동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때는 무슨 낭패란 말인가?
가끔 외국에서 소방차나 긴급구호 차량을 방해하는 불법차량에 대해 신속하고 가차 없이 대응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소화전 옆에 세워진 차는 과감히 창문을 부수고 소방호수를 연결하는가 하면 브레이크가 걸린 차량엔 사정없이 소방차로 밀어붙여서 길을 만들어 냈다. 물건이 사람의 생명에 비할 수 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철학인 것이다. 차량의 고가 여부와는 상관없이 인간존중에 기반해서 과감히 공공의 선을 취하는 행위다.
우리 사회에서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 사례가 느는 건, 도로와 이면 도로 등에 불법 주차된 차량으로 소방차의 진입이 늦어지기 때문이다. 골든타임 안에 도착하지 못해서 신속 대응이 늦고 이내 불이 확산되어 재산과 인명 피해가 커진 것이다.
나 하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로 나아가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무가치하게 만든다. 이웃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아파트 문화라는 것 자체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강조하며 서로 간섭하거나 간섭받지 않기를 원하는 구조겠지만 말이다.
바벨탑을 쌓지 않고 이 집 저 집을 넘나들며 살았던 때의 정서가 때론 그립다.
가난했지만 이웃 공동체로 엮여 인정미가 넘쳤던 예전의 모습.
이젠 우리도 소방법에 의거해서 불법 주정차된 차량을 좀 더 과감하게 조치한다는데 꼭 그런 강제요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식과 양심에 준하는 공동체 의식의 발로라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하늘을 나는 새에게 당부하고 싶다.
'이왕 찌끄릴 똥이라면 이런 차들 위에나 퍼질러주렴
위반 딱지처럼 창을 더럽혀줘야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겠지'
표지 :국토교통부발간 주차매너 가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