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지혜롭고 조금 더 담대했더라면
방송작가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문상을 갔다. 시내 종합병원의 한편에 위치한 식장은 전에 보지 못했던 커다란 규모로 새롭게 단장되어 있었다. 신생아 수가 줄어들며 유치원이 사라지는 것처럼 노인이 증가하면서 사망자가 늘어나니 수요가 있는 곳에 투자도 따라가는 모양새다. 장례식장은 병원과 이웃해 있으면서 조금 전의 환자를 새로운 고객으로 모셨다.
국화 한 송이를 영전에 바치며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해맑게 웃고 계신 영정 사진의 모습은
비록 고인이 병마와 싸우며 삶의 마지막 시간을 고통스러워했을지라도 생을 마치는 순간에는 평안했노라고 강변하는 것 같았다. 부모님을 먼저 보내고 유족이 되었던 경험치로 상주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담담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그들은 지금 부모님을 보내는 입장으로 망연자실하지만 그 상실감을 보듬어주는 벗들이 있어 지탱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옛 직장 동료들을 만났다. 나를 비롯한 둘은 20여 년 전의 어느 시점에서 방송사를 나왔고 한 사람은 여전히 그곳에 남았다. 이제 방송사에서 정년을 바라보는 나이의 최고참이 된 촬영감독과 우리는 탕국에 밥을 말아먹으며 묵은 대화를 풀어냈다. 간간이 통화도 하고 제작 일로 회사에서 마주치기도 했지만 근래엔 도통 만날 일이 없었다. 이쪽저쪽을 넘나들며 일하는 작가와의 연결점마저 없었다면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이 오랜만에 대면했으니 할 말이 많은 것도 당연했다. 저녁 무렵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자리를 옮겨 2차 장소를 찾아 나섰다. 밥상 앞에서도 꽤나 긴 시간을 이야기했는데 헤어짐이 아쉬워 발걸음을 옮긴다. 선술집이나 호프집으로 이동하는 게 자연스러울 시간인데 5~6십대 네 명은 스스럼없이 설빙에 자리를 잡았다. 저녁 무렵이라 커피는 부담스러웠고 날이 더워 시원한 게 당겼다. 기독교 방송사에 몸 담았던 터라 술보다는 대화에 적합한 장소를 원했던 것이다. 팥빙수와 커피를 시켜 놓고 근황을 이야기했다. 이런저런 사는 얘기와 자녀 이야기를 나누다 과거의 어느 한 시점을 언급하게 되었다.
“우리가 만약 그때 그냥 깔끔하게 방송사를 나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조금 힘들고 껄끄럽더라도 잘 견뎌내서 사주와 맞섰다면 어땠을까?”
“노조원이 힘과 지혜를 모아 회사를 건강한 기조 위에 세우고 건실한 경영자를 세웠다면 어땠을까?”
노조 집행부의 주축이었던 피디들은 교단 연합으로 만들어진 방송사의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고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자 미련 없는 이별을 택했다.
예수는 기도하는 성전이 훼손되는 것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물건을 거래하고 장사하며 협잡이 판치는
장사치들을 내치고 가판을 뒤엎었다. 올바름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소동과 채찍을 통한 돌아봄과 회심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때의 우리에겐 혁명적인 지도력과 혜안이 부족했다. 고용한 자들은 오래 버틸 수 있는 자원이 있었지만 고용된 자는 정의감만으로 삶을 영위해갈 수 없었다. 떠날 자는 떠났고 남을 자는 남았지만 공의가 세워지지 못했다. 작금엔 지상파의 영향력도 쇠하는 판에 종교방송은 더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그때 그곳에 정결함과 투명성을 이뤄냈다면, 적어도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은은한 향기를 전하는 툴로 인정받을 텐데......
조직을 나온 사람들의 삶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의연한 결단에 책임을 지려 열심히 일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남은 자 역시 그 자리를 지키며 애썼을 것이다.
'나 역시 그냥 딱 눈감고 조직에 남아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영위했다면 어땠을까?' 속으로 가정해 보는데
끝까지 남아 있는 촬영감독이 애잔한 마음으로 한마디를 내뱉는다.
"외로웠어요, 마음을 둘 곳이 없었어요. 동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니 마음이 편치 않고 어쩔 줄
모르겠더라고요."
울먹한 그의 음성엔 오랜 세월을 앓아온 서글픔이 배어 있었다.
노조가 사라지니 누구 한마디 정당한 목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거렸을 것이다. 노조는 사람을 향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며 조직의 건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견제와 균형의 역할이 있다. 타인을 향한 사랑이 넘치고 정의롭기를 원했던 사람들이 떠나니 남은 자들은 숨 막혔고 더 많이 참아냈을 것이다. 너무도 점잖은 퇴사가 음흉한 자들의 활보에 길을 터준 격이 된 것은 아니었는지……
더 지혜롭고, 더 정의로우며, 더 큰 용기로 버텨냈으면 어땠을까?
그때 헤어졌던 기자와 피디 아나운서 엔지니어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돌아보면 역사의 큰 물결은 도도히 흘러 발전하고 성숙해 나갔지만 우리는 우리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와 정치인과 사회문화를 만들어 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성숙함과 배려가 더 깊을 거라는 기대.
회사의 운영이 더 민주적이고 투명할 거라는 기대.
헤어지면서 다시 볼 날을 기약했다. 떠난 자보다 남겨진 자의 어깨가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그 외롭고 쓸쓸한 시절을 버텨내며 견뎌 낸 가장의 무게감 같은 것이 전이되었다.
그때 노조를 잘 이끌 수 있는 예수와 같은 리더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물음이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머릿속을 휘감았다.
표지 : 성전을 정화하는 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