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
요즘 같은 풀 HD 컬러영화 세상에 흑백영화, 거기에 끌리지 않는 제목 탓에 몇 년 전에 앞부분만 보다가 말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개봉한 한국영화 <배심원들>을 보기 전에 잘 만든 법정영화로 자주 언급되어 온 이 영화가 생각이 나서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일단 왜 이제까지 안 봤는지 억울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시나리오도 캐릭터도 다 좋았다.
여태껏 살면서 본 법정물 중 단연 탑이다.
감정이 풍부한 편이라 감정을 앞세우는 한국형 법정물도 괜찮게 보는 편인데, 이 영화는 감정 호소 없이 시나리오만으로 완벽하게 흐름을 이끌어간다.
논리도 인물 설정도 대단하고 다양한 생각할 거리들도 많이 남겨준다. 보다 보면 소름까지 돋는다. cg도 비싼 제작비도 없이, 심지어 장소이동과 컬러조차 없이 이 정도의 영화를 만들다니. 집에서 혼자 웃고 감탄하며 봤다. 여러 번 봐도 좋을 정말 잘 만든 영화다.
영화 인물들 간 대화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민주주의의 원리나 법의 기초 정신, 편견과 선입견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명작은 이래서 명작이다. 역시는 역시다.
보면서 법정영화는 아니지만 전에 봤던 <맨 프롬 어스>가 떠올랐다. <맨 프롬 어스>는 선사시대부터 살아온 인간에 대한 영화다. 고등학생 때 맨 프롬 어스를 보고 그때부터 영화라는 장르 자체에 푹 빠져 명작이라는 옛날 영화들을 엄청 찾아봤었다.
<12인의 성난 사람들>과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맨 프롬 어스> 또한 연극과 같이 한정된 공간 안에서 두 시간 동안 엄청난 몰입감을 주는 영화다. 한국영화 중에서는 <완벽한 타인>이 조금 비슷한 것 같다.
때로는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몇 년간 배운 지식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 영화는 나에게 그런 영화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