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6호선 2번째 칸

by 김은우

동성애 35년 차다. 경력으로 치면 꽤 노련한 달인이라고 불려야 될 거 같지만 여전히 어렵다. 사랑은 물론이거니와 게이로서 중년은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동성혼이 합법화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떤 형태의 가족을 이뤄야 하는가. 성소수자가 살기 편한 사회가 되려면 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가족에게 커밍아웃은 해야 하는가. 같은 무거운 고민들이 내 몸을 미라의 붕대처럼 감싸고 있다.

초등학교 때 엄마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은우야. 네가 남자를 좋아할까 봐 무서워. 사랑이 뭔지는 몰랐지만 눈치는 또래 아이들보다 빨랐던 나는 웃으며 여자가 좋다고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8살의 나는 그렇게 말해야 할 거 같았다. 게다가 웃음에 당황을 숨기고 별 거 아니란 듯한 태도를 보이는 입체적인 연출까지 곁들이며 말이다. 꽤 훌륭한 연출을 이용해 엄마에게 한 거짓말. 나는 이 짓을 서른 넘어서까지 하게 될 줄 몰랐다. 남자를 좋아하냐는 질문은 서른이 넘어서도 나를 따라다녔다. 선생님, 친구, 선배, 후배, 직장동료. 나와 가깝던 가깝지 않던 상관없었다. 나와의 친밀도는 그 무례한 질문을 하는데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가끔 네. 맞아요. 왜요?라고 답해 그들을 당황시키고 싶었지만 공부도 해야 하고 학교생활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니까 꾹 참았다. 어쨌든 나는 예나 지금이나 거짓말을 참 잘한다.


고등학교 때 내 정체성을 정확히 알게 되면서 나는 매일 같이 모든 신에게 기도했다. 제가 게이라면 차라리 아무도 사랑하지 않게 해 주세요. 평범한 존재가 될 수 없다면 평생 외롭게 살아도 좋다는 어린 소년의 기도.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참으로 안쓰럽다.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지금 네가 하는 기도는 전혀 먹히지 않을 거라고 얘기해주고 싶다.(게다가 너는 무교잖아.) 넌 앞으로 마음껏 사랑할 거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스스로를 부정하고 있는 너는 결국 마음껏 사랑하고 이별하고 아프지만 다시 마음껏 사랑하게 될 거라고. 그리고 어쩌면 너는 먼 미래에 마음껏 사랑하는 그 사람과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아빠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세상은 어쩌면 사랑이 전부라고. 그러니 절대 그걸 포기해선 안 된다고. 언제나 사랑은 이긴다고.

사람들은 자주 다른 걸 무서워한다. 멍청이들. 우리가 틀린 것도 아닌데. 우리가 괴물도 아닌데. 그저 열심히 사랑하려는 것뿐인데 사람들은 혐오하고 조롱한다. 2023년 나는 처음으로 퀴어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열심히 노래하며 종각역 주변을 걸었다. 행복했다. 이들과 함께 연대한다면 성소수자라는 말이 금방 사라질 거 같은 생각도 들었다. 아스팔트 도로가 공원의 푹신한 잔디길이 된 듯한 착각을 느끼던 순간 어떤 남성 두 명과 여성 한 명이 소리 질렀다. 더럽다고 항문으로 섹스한다고 역겹다고. 쪽팔리지도 않냐고. 나는 그 무리 중에 있던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너무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비아냥대는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조롱했다. 악마는 뿔이 있거나 얼굴이 빨갛거나 하지 않았다.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연인의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가는 길. 6호선 지하철 2번째 칸. 나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다. 제목은 ‘혼인평등소송 시작 기자회견’이다. 11쌍의 동성 부부가 혼인평등을 위해 소송을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원고들과 대리인, 원고의 부모님도 나와 발언을 한다. 낯섦이 우리 딸의 사랑을 반대할 이유가 될 수 없었고요. 제 딸은 가족과 친구들의.. 지하철 소음이 크다. 그들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마치 소수의 말을 죽여버리는 우리 사회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다행히 라이브 방송은 자막이 함께 송출되었다. 자막으로 내용을 알 수 있는 것이 소수자의 말을 죽이려는 사회에 우리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함께 스친다. 언제나 희망은 있긴 하다. 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이긴다. 우리는 사랑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