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 중얼 중얼

by 김은우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가? 아니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살 자신이 있는가? 아니오. 보수적인 사람들과 어울릴 자신이 있는가? 아니오. 불안정하길 원하는가? 아니오. 돈 없이 꿈만 가지고 살 수 있는가? 아니오. 대충 여기 나열한 것들이 내가 연기를 그만둔 이유다. 그 외에 몇 가지 더 대라고 하면 충분히 가능하지만 이 정도로만 정리해보겠다.

정확히 영화 <후회하지 않아>를 보고 연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에 퀴어 영화라는 장르가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할 때 개봉한 이 영화는 탄탄한 매니아 층의 사랑을 기반으로 유명세를 탔다. 주인공들은 여러 잡지 인터뷰를 하고 이런저런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인디 영화 게다가 퀴어 영화로는 흔치 않은 성공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 영화에 대단히 열광적이진 않았지만 거기서 내 꿈은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배우 김동욱을 보고 말이다! 김동욱이 극 중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고백하는 씬. 나는 그 씬을 적어도 스무 번 이상은 돌려 봤다. 강아지 같이 동그란 눈은 촉촉하고 잘 빗어 놓은 도자기 같은 얼굴형, 파르르 떨리면서 말하는 입술까지. 그렇게 잘생긴 강아지가 옥탑방에 사는 형한테 옥탑 사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그 장면은 날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물론 김동욱의 잘생긴 외모도 한몫했고 잘생긴 김동욱이 남자를 좋아한다는 설정도 한몫한 거, 인정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너무 진짜 같은 그의 연기가 내 마음을 잠버릇 나쁜 이의 이불 같이 마구 구기고 뒤집어 놓았다. 그 후부터 나는 그처럼 연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예술은 자주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천대받는다. 우리 부모님 역시 그랬다. 연기 학원은 비싸서 보내 줄 수 없어, 야자를 빼주긴 어려워, 그건 돈을 벌기 어렵잖아, 라는 말로 반대하면 상처가 덜 했겠지만 네가 무슨 연기냐, 네가 무슨 연예인이냐, 네가 어떻게 배우가 된다고 그러냐. 부모님과 선생님은 나 자신을 무시하는 말들로 반대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왜 그랬냐며 눈을 흘기면 괜찮아지겠지만 사춘기 소년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 말들이 큰 상처로 다가왔다. 난 아마 그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말을 부끄러워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런 따가운 말들은 마음에 박혀 피가 나고 곪았다. 상처들은 정신과 약들로 치유받을 수 있었지만 내 꿈 그 자체는 병이 아니었기에 나는 언젠가는 배우가 되겠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중얼거림은 몇 년 동안 이어졌다. 점수에 맞춰 간 대학교를 무기한 휴학했을 때도, 공익근무를 했을 때도, 아르바이트로 용돈 벌이를 할 때도. 한 7년 정도 중얼거렸을까. 나 스스로 결정을 내릴 때가 왔다. 작작 중얼거리고 이제 진짜 해야지.


운이었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약 반년 동안 열심히 입시 준비를 한 결과였다. 나는 서울에 있는, 연기학과로는 꽤 알아주는 학교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합격 소식을 부모님께 전했을 땐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라는 차가운 말을 들었고 이 말 역시 내 마음에 피가 나게 했지만 뭐 어쩌겠냐. 장하다, 나 자신. 비록 더 좋은 학교를 꿈꿔 휴학 후 입시 시험을 세 번이나 더 봤지만 결과적으로는 졸업까지 안전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안전이다, 안전. 안전만 했지 마냥 즐겁진 않았다. 4년 동안 연기를 하며 계속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내가 버거워한다는 걸 느꼈고 예술하는 사람들 중 여럿이 꽤나 보수적인 면모가 많다는 걸, 그러면서 겉으로는 열려있는 척하는 이중적인 사람도 적지 않다는 것 또한 느꼈다. 불안정성은 어떤가. 연기를 즐겁게 하려면(버티려면) 집안에 돈이 많아야 한다는 뼈 있는 우스개 소리도 학과생들끼리 하곤 했다. 여러 가지 힘든 점이 있었지만 졸업 즈음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든 건 나를 숨겨야 하는 것이었다. 186센티미터의 거구의 청년에게는 여성스러움 또는 섬세함이 장점이 되진 않았다. 터프하고 남자다워야 했다.(대체 남자다운 게 뭔데?) 게이라는 정체성은 또 어떠한가. 한국에 성소수자로 성공한 배우가 있는가? 아니오. 한국 매체에서 게이 배우가 할 수 있는 건 여성스러운 게이, 남성스럽고 깔끔해 여주인공이 반하고 말았는데 알고 보니 게이 뭐 그 정도 일 것이다. 관계자들 혹은 대중은 스테레오 타입 안에서 변주를 주길 원했지 스테레오 타입 밖의 사람들은 꺼려했다. 나는 입시 때부터 남자다워야 한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되어 귀의 일부분이 될 정도로 들었다. 나는 9년, 이 정도면 오래 숨겼다 싶었다. 이제는 도저히 나를 숨기며 연기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나는 졸업 후 과감히 연기를 그만두었다.

혹자는 포기가 버티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는데 동의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을 나를 위해 그만두었지만 여전히 아련한 첫사랑처럼(참고로 실제 내 첫사랑은 아련하지 않지만) 마음 한켠에 남아있다. 연기라는 건 감정을 이용하는 노동이기도 한데 그게 나에게 참 이로운 과정이기도 했다. 화 내고 눈물을 흘리고 웃고 웃기고 때리고 맞고 소리를 지르고 독백을 외는 그 일들이 나에게 큰 해소작용이었다. 지금, 연기를 그만둔 지금 나는 글쓰기라는 새로운 해소 방법을 찾았지만 이걸로는 완벽히 채워지진 않는다. 아, 꿈이란 무엇인가. 꿈은 이뤘을 때 빛을 발하는가 아니면 이루지 못했을 때 빛을 발하는가. 셰익스피어는 왜 성소수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멋진 희곡 한 편 완성하지 않았는가.

연기를 그만 둔지 2년. 연기 생각만 하면 여전히 머리가 지끈하다. 뭐가 날 위한 길인지 모르겠다. 연기를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포기할 정도로만 연기를 사랑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아닐지도 모르겠다. 너무 사랑해서 일지도 모른다.


난 아직도 예전처럼 중얼거린다. 뭐 연기 관련된 거 그 근처에서 뭐라도 언젠간 하겠지. 중얼. 중얼. 중얼. 조금 더 돈을 모으면 시도해 볼 수도 있겠지. 중얼. 60대가 되면 성소수자 배우에게도 많은 기회가 오겠지. 중얼. 중얼 중얼 중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