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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경 Apr 29. 2024

익숙해지기

등산화와의 동행

새로 산 등산화를 꺼내 신었다. 올겨울 남미 여행을 가기 위해 산 등산화이다. 가볍고 착화감이 좋아 이름값만큼이나 비싼 등산화를 남미 여행에 대한 기대가 높은 만큼의 가격을 지불하고 샀다. 언제 신어볼까 이리저리 살펴만 보았다. 남미 여행을 위해 하루 만 보 걷기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어제 운동화를 신고 걸었지만 별 불편함은 없었다. 하지만 9,400보에서 그쳤다. 신발 때문에 만 보를 못 걸은 것은 아니겠지만 오늘은 꼭 10,000보를 걸으리라 다짐하며 새로 산 등산화를 발에 익힐 겸 만 보 걷기의 신호탄으로 신어보기로 했다. 등산화를 신는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끝까지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또한 같이 여행하는 동행들과 편안한 관계를 갖는 일이기도 하다.


  남미로 가기로 한 직후부터 나의 걱정은 한가지였다. 나의 체력이 그 여행길을 이겨낼 수 있을까? 저질 체력으로 유명한 나는 이 여행을 하기 위해 체력을 키워야 한다. 나의 체력적인 문제가 팀에 피해를 주고 그것으로 서로의 관계가 불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 헬스를 등록하고 지금까지 하고 있던 필라테스도 유지하며 많이 걷는 여행에 적합한 만 보 걷기도 충실히 하려고 한다. 


  가볍다. 발에도 착 붙는다. ‘어머, 생각보다 편하네. 그리고 가볍잖아’ 감동하며 걷기 시작했다. 발바닥 면이 넓어 발가락들이 신발 안에서 자꾸 부딪힌다. 그리고 신발 안에서 노는 발이 익숙지 않아 자꾸만 꼼지락거리게 된다. 처음 신어서 그런가 보다. 집을 벗어나고 도로를 걷고 산을 오르는 데도 자꾸 신경이 쓰인다. 발목을 간지럽히는 무언가가 있어 살피고 살펴도 잘 모르겠다. 산 중턱 어디쯤에서는 할 수 없이 신발을 벗었다. 발목을 찌르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다.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고 바지를 올리며 찾아본다. 반쯤 부러진 마른 소나무 이파리 하나가 손에 잡힌다. 언제 신발 사이에 들어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등산화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며 다시 길을 걸었다. 다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고관절이 뻐근해졌지만 만 보를 채울 때까지는 앉을 수 없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산길 곳곳에는 왜 그리 의자는 많은지 자꾸 앉으라고 나를 유혹하는 듯했다. ‘앉아~ 앉아도 돼~~, 잠시만 앉았다 다시 걸으면 되지~~~’ 나는 보라는 듯이 의자가 놓인 휴식 공간에 들어갔다가 흥하며 돌아 나왔다. ‘너희가 유혹해도 난 유혹에 빠지지 않을거야’라며 혼잣말을 했다.


  등산화와의 두 번째 만남이다. 경춘선 숲길을 걸었다. 월계역 입구에서 시작하여 노원기차마을을 지나 삼육대학교 꼭대기에 있는 ‘제명호’라는 호수까지 올랐다. 걸으면서 새로 산 등산화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며 자랑도 했다. 잘 샀는지, 등산에 합당한 것인지 물어보며 신발과 친해지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신발은 나에게 쉽게 자기 옆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한참 가다 보니 발가락과 발바닥 연결부위가 아프기 시작했고, 새끼발가락이 눌리면서 아팠다. 때마침 우리의 걷기가 끝나 다행이었다. 


  제명호에서의 휴식은 봄을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바람도 살랑 불고, 햇살도 따스하고 그즈음 산 너머로 기우는 해. 길바닥에 떨어진 긴 나무막대에 줄을 매달아 만든 낚싯대로 잉어와 놀이를 하는 아이들. 의자에 앉아 다리를 쭉 내밀며 잔잔하고 예쁜 세상을 보여 주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너와 함께 공유하게 될 것인지 짐작은 하지만 다 알 수는 없다. 벤치에 앉아 허리를 뒤로 제치고 하늘을 보며 바람을 느끼는 그 순간의 행복을 매 순간 함께 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그날 밤, 새끼발가락의 물집을 보며 새 신발이 나에게 준 훈장이라 생각하며 작은 바늘로 터트리고 약을 바르면서 서로에게 스며들 시간을 기대해 보았다. 


  하루 만 보를 매일 걷다 보면 등산화는 어느 날 문득 나에게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나에게 필요불가결한 존재가 되는 순간이 있다. 나의 친구가 되는 순간이다. 등산화가 물집을 만든 것처럼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하다가도 예기치 못한 순간에 문득 내 안에 쑥 들어온다. 그 순간이 되면 따뜻하고 푸근한 힘이 되기도 한다. 또한 그 사람이 사라지면 허전하여 찾게 된다. 그렇게 다가온 사람이 나의 힘이자 든든한 친구가 된 것처럼 등산화도 내 여행의 친구가 되어 든든하고 부드럽게 힘이 되어 줄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오늘도 물집이 잡힐지 모르지만 신고 나가기로 한다. 반짝이는 우유니도, 파타고니아의 깊은 숨소리도 같이 듣고 함께 볼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남미 여행이 성공적인 여행으로 추억하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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