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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Jul 16. 2022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돈 되는 일

고충을 솔직하게 말할 용기

혼자 일하는 프리워커의 자유와 치열함, 게으름을 독자분들께 보고합니다.


직장을 계속 다녔다면 지금쯤 대리를 달았으려나. 제 능력이 출중해서 고속 승진했을 수도 있습니다. 


1인 디자인 스튜디오의 대표이자 직원인 저는 상사가 없어 평가받지 않고 동료가 없어 경쟁하지 않습니다. 직업으로서,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잘 성장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보고서는 스스로의 성장을 확인하기 위한 기록물입니다. 이번 한 주도 좋다가 슬프고, 화내다 이내 기뻐하며 살았네요. 


한 주간 안녕하셨나요?


주간 이슈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돈 되는 일

이번 주의 목표는 작업하는 서체 파일 열어보기였습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파일을 열고 이내 비어있던 숫자 0부터 9까지를 만들었습니다. 대문자, 소문자, 숫자까지 기본 알파벳은 채웠지만 완성은 아닙니다. 한 치 두 치 사이의 치열함 다듬기가 이제 시작입니다. 다정한 철학자이자 소설가를 상상한 이 서체는 아직 전체적으로 아리송합니다. 카뮈가 이 글씨의 뮤즈라고 생각했는데 작업하다 보니 그는 아니더군요. 헤세도 아니고, 상상 속 소설가가 아직 뒷모습만 보이네요. 서체의 영혼에 숨을 불어 넣어 육신으로 살아 움직일 때가 완성입니다. 

단 한 번의 파일 열기를 끝으로 이번 주 내내 다시 파일을 열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의지박약이나, 시간 부족이라는 핑계면 좋겠습니다. 외부 약속을 잡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잠도 줄여가며 일하는 판이니 서체가 낄 시간이 없습니다. 서체를 만들던 그 잠깐의 시간이 진실로 행복해서, 찰나밖에 가지지 못한 그 시간이 너무도 아쉬워서 많이 슬펐습니다.


제게 서체는 완전한 자유입니다. 서체를 구상하고 완성하기까지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제가 만들었지만 솔직히 많이 예쁩니다. 완전한 자유, 좋아하는 일이자 잘 할 수 있는 일, 온라인 판매로 돈이 되는 일. 이런 일을 살면서 만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대게 좋아하면 돈이 안 되는 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제겐 공예가 그런 영역입니다. 공예를 전공했고 한때 섬유 공예를 업으로 삼고자 했었습니다. 하지만 공예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수익이 어렵습니다. 자체 브랜드 <게렌하푸>로 공예 작업을 하고, 작업실에서 코바늘뜨기 클래스를 열고 있지만 더 적극적인 전개를 하지 못하는 건 돈이 안돼서가 사실입니다. 공예 하는 시간에 서체를 만들고, 외주 작업을 하나라도 더 하는 게 훨씬 효율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을 놓치지 않고 기회가 될 때마다 마켓과 클래스에 참여하는 이유는 오로지 좋아서입니다. 공예가 좋아서, 실과 바늘이 좋아서 그 세계에 계속 발 담그고 싶어서요. 이렇게 얕지만 꾸준히 지속하다 보면 먼 훗날 특별한 결실이 맺힐 걸 믿기에 더욱 공예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서체도 만들어야 하고, 뜨개질도 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글도 써야 하는데 이번 주도 계속된 ‘디자이너님 최대한 빨리 부탁드려요’를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일이 많다는 건 자영업자에게 분명 좋은 일이지만 급한 일들에 밀린 나의 꿈과 자유를 멀찍이서 바라보면서 슬펐습니다. 거절하면 잃을 것들 또한 중요하기에 안고 가기로 합니다. 자유로운 공간인 작업실과 통장 잔고의 여유에서 오는 마음의 느긋함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주말을 앞두고 봇물 치듯 밀려온 급한 요청에 ‘에잇 대체 이게 뭡니까!! 저 안 합니다!!’라는 말이 턱 끝까지 올라왔어요. 커피를 들이 켜며 대처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이럴 때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수나 동료가 없다는 게 참 외롭습니다. 회사 생활할 때 동료들과 시시콜콜 나누는 대화에 힘을 많이 받았거든요. 혼자 일하는 프리워커의 고충은 외로움이라, 프리워커 친구 보령에게 카톡으로 또 한풀이를….


좋게 생각해 보자, 좋게 해결해 보자 마음을 다독이고 해당 회사 대표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대표님 너무 힘들어요! ~ 허허 이렇게 끌고 가다가 나중에 터져서 안 좋게 끝날까봐요ㅠㅠ 뭔가 좋은 방법 없을까요~?” 이에 대표님은 “먼저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라고 하셨습니다. 


어렵고 예민한 시기를 참고 참다가 결국 자포자기해 손절하는 관계를 많이 봅니다. 저 또한 그런 불편한 관계를 만드는 철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었어요. 이 사람과 이런 방식이면 같이 일 못하지. 말이 안 통하네. 말을 안해보고 말을 안 통한다고 단정 지었어요. 예 아니면 아니오, 그것 아니면 이것, 좋은 아니면 싫음. 모 아니면 도로 단정 짓는 면이 우리 사회에 있는 것 같아요. 이분법적 관점을 ‘함께’로 옮기면 새로운 국면이 펼쳐집니다. 

다움이가 원하는 방법으로 룰을 정하면 좋을 거 같아. 불편한 거 있으면 얘기해 줘. 이렇게 먼저 말해줘서 정말 고맙다.


힘듦을 터놓고 서로가 함께 나아지길 같이 고민하면 우리 사이는 깨지지 않습니다. 그저 고충을 솔직하게 말할 용기만 있으면 됩니다.


이런 대화는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이 거래처와 저는 특이한 관계입니다. 코로나 시기에 퇴사한 회사와 이제 세금계산서 발행하는 거래처가 되었는데, 외주 업체이지만 객원 멤버인 듯, 동료이자 후배인 듯 상생하고 있습니다. 대표님이 SNS를 안하셔서 이 글을 읽을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양재에서 콩나물국밥 한 뚝배기 하시져-!


우연인 척 기다리고 있는 발견

서점에 가는 길에 그날따라 매일 가던 경로가 아닌 처음 본 골목으로 가봤습니다. 그리고 그 골목에 이 교회가 있었습니다. 또 감사 교회.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손석구가 해방 교회를 우연히 보고 반가움과 설렘, 벅참 등 오만가지 감정이 섞인 표정을 지은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냥 감사도 아니고 ‘또’ 감사라.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마음을 언제 마지막으로 품어봤었나. 


엄마, 아빠는 출근하는 딸에게 감사하며 일하라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감사하며 산다. 그러니 감사해.’ 내가 잊고 있던 삶의 진리, 감사가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요. 모든 기적은 우연인 척 운명으로 찾아옵니다. 드라마 속 한 장면과 같은 내 일상, 정말 멋진데? 드라마에도 나올 만큼 의미 있는 하루 살고 있네요. 이런 멋진 장면을 그리신 박해영 작가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보뱅은 삶의 기적 같은 순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 순간은 금세 지나가고 지속되지 않는다. 어느새 말은 다시 말이 되고 꽃은 다시 꽃이 된다. 금빛 눈은 광채를 잃거나 수영하는 사람의 머리에서 물안경이 벗겨지듯이 떨어져 나간다. 우리는 다시 원래의 눈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과연 평범할까? 

환희의 인간 - 크리스티앙 보뱅

저 또한 다시 원래의 눈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겁니다. 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평범으로요. 하필 이 구절을 이번 주에 읽게 된 것도 기적이 아니면 무엇일지요.


인간은 망각과 발견을 되풀이하며 제자리를 지킵니다. 감사의 발견을 저는 조만간 또 잊을 겁니다. 그리고 이내 또 찾겠죠. 자주 잊는 두 글자 감사를 자주 찾기 위해 매일 가는 길이 아닌 새로운 길로 가고 책 읽기를 멈추지 않아야겠습니다. 혹은 현관에서 운동화를 신으며 출근하는 딸 뒷모습에 “오늘도 감사해라~”라고 말하는 부모님의 한마디에 불현듯 깨닫게 될 수도 있어요.


다가오는 한 주 동안 우연한 곳에서 당신만의 삶의 기쁨 만나시길 소망합니다. 부디 다음 주엔 제가 감사했음을 기록할 수 있길 바랍니다. 아님 뭐 어쩔 수 없고요. 


이만 자유로운 동시에 자유롭지 않은 프리워커의 한 주 이야기였습니다.


주간 업무 로그  

    Written by 보령다움 5호 편지 발송  

    Written by 보령다움 6호 편지 모집 공지  

    S사 이벤트 페이지  

    N사 SNS 콘텐츠 디자인 작업, 업로드  

    H사 인쇄 진행  

    공예 교육 프로젝트 구매 요청서 제출  

    다락장 7월 미팅  

    서체 작업 조금이라도  


주간 독서

완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독서 중 

시선으로부터 - 정세랑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환희의 인간 - 크리스티앙 보뱅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 헤르만 헤세


이번 주의 문장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환희의 인간 - 크리스티앙 보뱅


다음 주 포인트  

    감사 또 감사  

    앉을 때 바른 자세, 허리 운동  

    M사 카드뉴스 시안 전송  

    다락장 포스터 인쇄  

    읽는 책들 완독  

    하던 일 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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