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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Feb 08. 2022

헬베티카는 제 취향이 아닙니다만

틀린 취향은 없다

서체를 이야기하는데 있어 헬베티카라니

이 글이 어떻게 써질지 나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헬베티카를 사용한 브랜드들을 쭉 열거하며 서체를 넘어 브랜드가 된 헬베티카!라고 어디서 한번쯤 읽어 봤을 진부한 내용이 예상될 법도 하겠다. 그러나 이 글이 구글이나 블로그, 위키백과에서 검색 한번에 쉽게 찾을 수 있는 흔한 내용이고 아니고가 중요한게 아니다. 글을 쓰기는 시작하나 마무리가 안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디자이너 이전에 취향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헬베티카는 내 취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Helvetica

내 눈에 헬베티카는 미끄러진다

개인적으로 헬베티카는 어떤 감정인지 도무지 알수 없는 표정같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지 않는 예의상의 미소같달까. 마주보고 대화를 하는데 눈은 다른 곳을 보고,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며 내 말에 영혼없는 리액션을 하는 어쩌다 만난 사람같다. 그런 사람과 이야기하다보면 속으로 ‘이 사람과는 앞으로 인연은 못되겠군. 이번만 보고 말겠어.’라는 생각이든다. 내 사람 되긴 글렀다. 따라서 나를 클라이언트로 두고 디자인하다면 헬베티카는 무조건 배제할 것이다.

Helvetica Regular

글은 내가 좋아하고 쓰고 싶은 주제여야 술술 잘 써지는 법이다. 딱히 관심없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려면 안써질 가능성이 크다. 좋아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법이니까. 그런데 난 헬베티카를 선호하는 인간이 아니다. 그래서 안써질 글을 지금 쓰고 있는게 시간낭비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디자이너로서 헬베티카를 좋아한다

헬베티카는 1957년 스위스에서 막스 미딩거Max Miedinger 과 에두아르드 호프만 Eduard Hoffmann이 만들었다. 스위스의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서체로 그 이름 또한 스위스의 옛 이름인 Helvetia 헬베티아에서 가져왔다. 세계대전 시기 당시 중립국이었던 스위스에서 만들어진 글자답게 굉장히 민주적이고 중립적이다. 호불호가 크게 나뉘지 않으며 이것과 저것 양쪽을 모두 무난하게 끌어 안을 수 있는 서체. 보편적이며 부담없는 인상이면서도 모던하고 깔끔한 디자인. 그래서 헬베티카여야만 하는 클라이언트가 있다. 대중적이고 뉴트럴한 이미지를 추구하는 브랜드엔 꼭 헬베티카를 사용해 작업해왔다. 디자이너로서 헬베티카를 매우 선호하니 글이 막힘없이 술술 써질 것이다.  


헬베티카의 다재다능함

가독성이 좋은 서체들은 본문용, 디스플레이용 서체로 많이 활용되는데 헬베티카는 제목용, 로고에도 굉장히 많이 사용된다. 글자가 깨끗하면서도 짜임새와 디테일이 세련되었기 때문이다. 본문용 서체들이 제목이나 로고에 사용되면 힘이 없고, 완성도가 낮아보이는 경우가 있다. 글자 사이즈가 12pt 이하로 긴 문장에 적용되었을 때 그 수려함이 더 드러나는 서체가 있다. 그런데 헬베티카는 글자가 작아지든 커지든 상관없이 완성도가 높은 서체이다. 글자의 비율이 일정하고 빈틈없는 디테일들이 만드는 힘이다. 내가 생각하는 헬베티카의 최고의 장점이자 매력은 여기에 있다. 어떤 환경에도 자신의 위용을 드러내는 밀도와 완성도.


또한 서체의 폭이 좁은 condensed는 비율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좁히기만한 서체들이 종종있다. 과거 내 사수 분의 표현에 의하면 '우악스러운' 디자인. 그런데 헬베티카의 condensed는 글자가 좁아져 길어보임에도 세련됨을 그대로 놓치지 않고 있다. 기존의 유연함과 모던함을 간직하며 단단한 힘까지 느껴진다.

다움웍스 작업실 포스터 - 삶

작업실 포스터에 헬베티카 condensed를 사용했다. 삶을 사랑하는 저 문장은 자칫하면 느끼하고 올드해보일 수 있다. 최대한 담백하게 그러면서 힘있게 표현하고 싶었고, 헬베티카 condensed가 제격이었다.


이 지점이 재밌는거다. 디자이너로서 헬베티카의 극강의 대중성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탈개성적인 면을 좋아하지만, 직업을 벗어나 개인으로서 헬베티카는 개성이 없고 무난하다 못해 재미없어 보인다. 내 직업의 역할과 한 개인의 취향에 따른 차이를 보여주는게 헬베티카이다. 평범해서 좋아하고, 평범해서 재미없다. 헬베티카는 내게 모순적이지만 모순적이지 않은 그런 서체이다.



저...헬베티카가 취향이 아닌..(주저주저)

그런데 이 개인의 취향이란 마음껏 표현해도 되고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왠지 “헬베티카는 내 스타일 아니야.”라고 단호하게 말하기 보단, “헬베티카.. 음.. 그건 약간 내 스탈은 아닌 거 같아”라고 띄엄띄엄 말하게 된다.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하는게 눈치보이는 것 처럼, 때론 모두가 예스라고 하니 아니오를 말하고 싶음에도 그냥 예스라고 말하는 것 처럼 말이다. 헬베티카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서체 중에 하나이고, 호불호가 크게 나뉘지 않는 서체이니 베티카는 일단 비호감을 살 일은 거의 없다고 암묵적 동의를 맺은 것 같다.



하루키의 소설은 제 취향이 아닙니다만

취향에 관한 한 일화가 있다.

대학교 수업시간, 강사 선생님께서 자신의 취향과 신념이 확고하신 분이셨다. 하루는 수업 중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야기가 나왔다. 하루키 특유의 번역투의 건조한 소설 문체는 내 취향이 아니다. 내가 평소 감정 표현이 서툴러서 그런지, 내면의 감정을 속속들이 드러내는 글을 좋아한다. 소설에서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한 문장을 만나면 속이 다 후련해진다. 하지만 하루키의 소설 문체는 내겐 감정을 도려낸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루키가 본인의 에세이에서 자신의 문체에 대해 말했듯이 ‘구멍이 숭숭 뚤린’ 느낌.


그래서 하루키 소설은 나랑은 안맞았다고 강사님께 얘기하는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건 몰라서 그렇고”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난 하루키의 소설의 문학적인 우수함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소설이 얼마나 독창적이며 특별한지 나도 당연히 알고 있다. 그저 하루키의 소설이 나의 취향에는 맞았다는 개인적 취향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예상치 못한 반응에 적잖이 당황했다.


개인의 취향을 표현하는게 용인되지 않는 것인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좋아하고 읽는다고 한들 그게 내 취향에 맞이 않으면 잘못된 것인가?


그래서 그 수업 이후 상실의 시대를 한번 더 읽어보았다. 역시나 내겐 수수께끼 같은 그의 문체가 새롭고 신비롭긴 하지만 읽어내기엔 다소 버거웠다. 문장이 허공을 맴돌아 내 안으로 와닿지 않았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그의 에세이를 정말 좋아한다

그런데 대학 수업 시간에 하루키 소설에 대한 내 취향을 말했다가 무시를 당한 일은 꽤 큰 충격으로 남았다. 대학 강사가 저렇게 편협한 태도를 보였다는게 참 암울했었다. 해당 수업이 전공수업이 아니었기에 한학기만 듣고 수업이라는게 다행스러웠지만, 학교와 어른들은 다 저런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람들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하나씩 내려놓게 되는 20대 초반, 일련의 과정의 시작이었지싶다. 다행히도 지도 교수님은 늘 내 생각과 취향을 존중해주신 분이었어서 학교와 어른에 대한 편견을 지울수 있었다. 역시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건가보다.


그런데  하루키의 에세이를 정말 좋아한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그의 소설 문체와 많이 다른데, 아주 담백하게 솔직하고 익살스럽기까지하다. 개그 코드가 잘맞아서 그의 에세이를 읽으며 껄껄 웃기도 한다. 당시 강사님과 취향이 달랐을 뿐이다.




다른 취향의 존중

내 취향은 낯설고 이상한거다. 나는 디자인, 음악 등 창작물을 보고 들을 때 대체로 낯선 것을 선호한다. 기존의 것들과 다른 무언가, 확연히 구분되는 명확함을 좋아해 그런 창작자들에게 경의와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이런 개인적 취향답게 내가 작업하는 서체들도 이미 존재하는 서체들과 다르고 새롭기를 바란다. 그러다보니 내가 작업한 서체들은 하나같이 얌전하지 못하다. 또한 얌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Becoming serif typeface

누군가는 내 서체가 특별하게 보이려고 용썼다 싶기도 할테다. 가독성이 좋은 서체가 가장 어렵기도 하다. 읽는 내내 눈에 거슬리는 것 없이 자연스럽게 읽히는 서체는 어마어마한 디테일과 집요함이 담겨있다. 그런데 나는 서체를 일부러 꼬고, 비틀고, 강한 대비를 주는 디자인을 하니 어떤 이는 과하다고 느낄 수 있겠다. 하지만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작업을 해야 영혼있는 결과물이 나온다. 난 내 취향을 따라, 마음을 순리를 따를 뿐이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디자인을 펼쳐내고 있다.  내가 새로운 음악을 찾아듣는 취향처럼 신선한 디자인의 서체를 만들고 싶다. 약간의 낯섦을 가진 기존과 다른 신선함말이다.

Melange serif typeface

딱 4개의 서체만 사용한 비넬리

내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디자이너 중 한명인 마시모 비넬리 Massimo Vignelli는 그의 모든 디자인 작업에 딱 네 개의 서체, 헬베티카와 보도니, 개러몬드, 센추리익스팬디드만 사용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비넬리는 내게 타임리프 능력이 있다면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 사람 중 한명이다. 내가 만든 서체들을 보고 그는 뭐라고 말할까? 거추장스럽다고, 불필요하다고 했을까? 내 취향 아니야 라고 했을까.


만약 그가 내 서체가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한다면, 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군요. 누구나 취향은 다르니까요. 존중해요."


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든 서체를 로고로 써준다면, 그의 맘에 드는 서체를 내가 만들수 있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서체를 앞에 두고 디자인의 거장과 끊없는 대화를 하는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마시모 비넬리가 디자인한 아메리칸 에어라인 로고 / 출처 : commons.wikimedia.org



마음의 순리, 취향

다시 헬베티카로 돌아와보자.


헬베티카를 단순히 모던하고 깔끔한 글자라고만 하면 다소 성의없는 표현이다. 기본을 가지고 최고의 완성도를 뽑아내려면 어마어마한 내공이 있어야한다. 음식을 만들 때도 온갖 양념, 조미료 다 넣어서 만들면 어떻게든 맛이 난다. 하지만 최소한의 재료로 맛을 내려면 재료의 본질을 알아야하고, 조리의 타이밍, 손맛도 좋아한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요리를 해봤자 엄마가 뚝딱 만들어주는 된장찌개의 깊은 맛을 낼 수 없는 것 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디자이너로서 내게 헬베티카는 넘사벽이다. 미딩거와 호프만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헬베티카만한 본문용으로도 쓰이면서 로고에도 쓰이는 전천후 서체는 만들 자신은 아직 없다.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어서 베테랑 디자이너가 되었을 때 제대로 도전해보고 싶다. 그때는 분명 내 취향도 달라져있을 것이다. 달라졌다기보단 확장되었다는 표현이 더 알맞겠다. 자연스럽고 평범한 것에 끌리는 취향이 마음 한켠에 크게 자리하는 때가 되면 그 취향을 따라 기본에 충실한 서체들을 만들고 싶어지겠지.


지금은 마음이 가는대로 디자인을 하자. 세상 눈치보느라 마음을 거스르는 바보같은 짓은 하지 않아야한다. 마음이 끌리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창작 할 수 없으니까. 마음 가는 곳에 그 뜻이 있는 법이다. 틀린 취향은 없다. 그러니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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