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나는 하나의 스타일을 완성하려면 수많은 레퍼런스를 참고하고 툴을 익히고, 수백 번의 시도를 반복해야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디자인을 하면서 다양한 관점—UX, 사업 전략, 데이터 분석 등—을 익히고 싶었지만, 매번 그래픽을 제작하는 일에만 허덕이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그래픽 작업은 본질적으로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었고, 모든 과정이 손끝에서 직접 이루어져야만 했다.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물리적으로 한정된 시간이 나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AI를 활용한 후, 내 그래픽 작업 시간은 말도 안 되게 단축되었다. 이제는 클릭 몇 번과 문장 몇 줄로 수백 가지 스타일을 탐색할 수 있고,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를 순식간에 구현할 수 있다. 또한, 수정 이미지를 짧은 시간 안에 수십 개씩 뽑아내어, 내가 가장 원하는 이미지를 빠르게 선택할 수 있다.
문득 작년 여름, 향수 만들기 체험을 다녀온 기억이 떠오른다. 작은 유리병 안에 담긴 수십 가지 향료 중에서 마음에 드는 향을 고르고 섞으며, 나만의 향수를 만들었다. 조금만 비율이 달라도 완전히 다른 향이 만들어졌고, 좋은 향은 결국 얼마나 세밀하게 조율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지금 내가 하는 AI 디자인이 꼭 그때의 나와 닮았다. 수많은 향료처럼 준비된 이미지와 스타일을 눈앞에 두고, 내가 할 일은 그저 미세한 감각과 디테일로 최적의 조합을 찾아가는 것뿐이다.
결국, 지금의 나는 더 이상 모든 과정을 손끝에서 그리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원하는 향을 찾아 끊임없이 고르고 섞고 조율하는 조향사가 되었다.
결국, 취향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올 것이다. 내가 회사 분들과 AI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다이소가 생겼다고 해서 명품이 망하지 않았고, 백종원 가게가 생겼다고 해서 파인다이닝이 망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디자인의 완성도만을 바라지 않는다. AI가 퀄리티를 보편화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디자인에서 중요한 것은 세밀한 차이와 감각적인 선택이다. 조향사가 수많은 향료 중에서 미세한 향 한 방울로 완벽한 향수를 만들어내듯, 그래픽 작업에서도 고객의 니즈를 세밀하게 찾아내고, 그에 맞는 감각적이고 정교한 조합을 만들어내야 한다.
디자이너는 더 이상 퀄리티만을 다듬는 사람이 아니다. 이제는 취향과 감각을 엮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