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08
8월 두구동의 태그커피를 인수하였다.
5월 즈음 작은 가게라도 해보면 어떨까 싶어 관련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를 기웃거리다가 몇 군데 괜찮아 보이는 곳을 지나가는 척 방문도 해보면서 돌아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전까지 이것저것 배우며 자격증이나 따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올해 초부터 무언가 작정한 것 마냥 아르바이트를 찾아다니면서 하루 2-3시간이라도 생산적인 활동을 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온실 속 화초 같은 일상의 나 자신이 자꾸만 작아지는 것 같이 느껴지고 일상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던 것같다. 누군가는 부잣집 사모님이 호강에 받친 고민을 한다고 욕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나 자신은 그렇게 많은 것을 누리고 살지도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찐부자들, 많이 배운 엘리트들, 넉넉한 마음의 사람들, 뼛속부터 돈걱정이라고는 해본 적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그나마 자존심 하나로 버티고 산 것도 대단한 일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땐 아이들이 뒤쳐질까 혹시나 나가서 무시당할까 무리에 억지로 끼어서 나 자신의 자존감을 곱씹어 먹으며 버텼던 것 같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가고 잘하든 못하든 그들 사이에도 부류가 나누어지면서 저절로 거리를 두게 되고 서서히 무리에서 따져 나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아침 일찍 아이들과 남편이 나가고 난 뒤 혼자 뒹굴거리며 넷플릭스나 뒤적거리다가 하루를 마감하는 생활이 몇 년간 지속되었던 것 같다. 마치 나 자신이 어디까지 가라앉는지 테스트라도 하듯이 그렇게 나 자신을 방치해 버렸다.
가까이 살면서 시댁 식구들한테도 여러 가지 실망을 하게 되면서 살던 곳을 떠나고 싶은 욕구가 커져갔지만, 내 남편은 의지가 약했고 욕망도 욕심도 밑바닥 어딘가에 존재라도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드러내지 않고 사는 사람이기에 이런 내 요구들은 매번 묻히기 마련이었다.
3월 퀴즈노즈라는 샌드위치 프랜차이즈에서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다.
평일 11시부터 2시까지 점심파트 주방을 도와주는 알바였고 직영점이라 주인이 따로 상주하거나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없는 점장이 가게 전반을 관리하는 매장이었다. 어린 점장과 그보다 더 어린 알바들과 섞여 주문서에서 뽑혀 나오는 메뉴들을 만들어댔다. 처음엔 레시피를 다 익히지 못해 실수도 하고 점장이 얼른 다시 만들어 내어 주곤 했던 것 같다. 매일의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금방 익숙해졌고 실수가 줄어들고 손이 빨라질 때쯤 그곳을 그만두었다.
주 5일 3시간을 일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왕복 1시간 반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게 그렇지 않아도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는데 가게에선 하루 2시간만 일하기를 원했다. 점심피크 시간만 추가 알바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 일이 힘든 것도 아니고 바람 쐴 겸 운동삼아 왔다 갔다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이미 이력서에 나온 내 주소지를 보고 왜 이런 알바를 하냐고 묻는 점장에게 불편함을 느껴왔고 한 번씩 쉴 틈 없이 일거리를 맡기고 돌아서는 점장에게 나 자신을 이해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서로의 공통분모가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일을 그만두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여기저기 단기 알바를 알아보고 하루 이틀 일용직이라도 있으면 다녀볼 생각에 여러 곳에 면접도 보고 다녔는데 그 중 키자니아도 있었고 레스토랑도 있었고 전시장 알바, 아웃렛 매장 알바 등등 내가 퇴짜를 놓는 건지 그쪽에서 나를 거부하는 건지 모르게 서로 밀어내면서 보내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던 중 태그커피를 만났다.
노란색 간판에 명조체로 태그커피라고 적힌 통창을 가진 카페였다.
그렇게 처음 방문한 태그커피의 분위기와 모든 것이 나와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촌스러움과 낡아빠진 생각들, 몸에 밴 무언가가 카페의 그것과 닮아 있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조우하게 된 태그커피의 일상을 하나씩 기록해 보려 한다. 매일 오는 다움병원 환자와 직원들, 동네주민들, 상인들, 지나가는 사람들, 두구동의 바람과 구름과 햇볕과 나무와 꽃들 새소리 개 짖는 소리까지 나이가 들어도 돌아보며 추억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