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일기
“유산했어요.”
낯선 사람들은 의례히 결혼은 했는지, 몇 년차인지, 아이는 있는지,
왜 없는지를 묻는다.
예전의 나는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
동정 받기 싫어서
등등의 이유들로
“아직 하나님이 주시지 않아서 없다.”라고 했지만
지금의 나는
“유산했어요.”라고 명확하게 대답한다.
그러면 곧이어
줄줄이
“내가 아는 누구는...”이 나오기 시작한다.
결국은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았다로 끝나는 이야기들이다.
유산했어요.
유산 이라는 단어는 내 인생에 내 입술에서 터부시 되는 단어였다.
그 단어 자체만으로도 재수가 없었고
또 재수가 없을 것만 같은 단어였다.
그런데
문득 나는 그 단어를 그냥 내 뱉고 있었다.
처음에 그 단어를 쓸 때는
스스로가 비통하기도 하고, 뭔가 꺼림칙 했는데
몇 번 그단어를 내 뱉어 보니
“충치있어요.” 보다는 무거운 단어이긴하지만
그냥 그것은 그 현상 자체였다.
세 번의 유산 끝에
나는 아직 아이가 없다.
많은 생각도 기도도 소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22년이 다가오자 나는 날수를 계산했다.
나의 날수
만약에 아이가 태어난다면
아이가 10살이 되는 해에 나는 50이 넘는다.
내가 아닌 아이를 위해서라면
나는 아이를 고집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생각은 이효리씨의 글을 읽고
반면교사를 삼았는데.
나 역시 나의 인생, 내가 느끼고 싶은 감정
<내가 느끼고 싶은 그 감정> 그것에 충실한 것이었다.
부모의 마음이란 무엇일까
부모의 마음에 빗댄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일까
목숨보다 중한 자식이란 어떤 것일까
이 생에 태어나 한번쯤은 남들이 겪어보는 그 육아라는 것은 무엇일까
잉태, 출생, 양육의 기쁨은 무엇일까
결국 내가 알고 싶고 내가 느끼고 싶은 것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생각해보자
내가 내 경험치를 쌓고 싶어서 낳자고 하기에는
그의 인생은?
물론 이효리씨는 부자라서 그 나이에
아이를 낳아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내 인생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는데 벌써부터 포기할 일인가 싶겠지만
아이 입장
아이의 생각은
좀 다를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는 목적조차도 나라면 생각을 고쳐먹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2022에는 피임을 하자고 권했다.
어쩌다 한 관계에 아이를 가졌는지 아닌지 신경쓰는것도 2021이 끝이다.
인스턴트도 술도 담배도 하지 않겠다던
생각도 이제 끝이다.
술도, 담배는 모르겠지만 거절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난시간동안 초기비만일까 말까 단계였지만 나름 깨끗한 정신머리로 깨끗한 자궁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게 소용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임신을 위해서 커피를 마실 때에도 카페인이 지나치지 않는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2022에는 남편으로부터, 임신으로부터 자유롭겠다고 결정했다.
어쩌면
[또다른 나]는 아이를 낳고 잘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또다른 나]는 독신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또다른 나]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또다른 나]는 또다른 삶들로 채워져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의 상황/선택/결정 속의 “1”의 결과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딘가 내가 소원했던 아이들과 행복하게 잘 살 나여
행복해라.
육아에 울부짖을지도 모르는 나여
행복해라.
외로움에 사무쳤을 나여
행복해라
삶을 갈구 했을 나여
행복해라
나도
여기서
행복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