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말려주는 시간

by 실버

그는 늘 내 머리를 말려준다. 샤워를 마치고 나면 조용히 따라온다. 나는 의자에 앉고, 그는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다. 뜨거운 바람이 이마를 스치면, 나는 눈을 감는다. 어떤 말도 필요 없는 시간이다. 그 순간만큼은 어떤 걱정도 나를 방해하지 못한다.


나는 그 시간 속에서 평화를 느낀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애써 강해지려 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 누군가에게 온전히 맡겨져 있다는 감각은 아직도 낯설고, 그래서 더 귀하다.


그는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늦은 밤에도, 피곤한 날에도 그는 늘 내 머리를 말려준다. 시간이 늦응 수록 그가 피곤해보일수록 그 어떤 것도 나를 해치지 못하는 시간을 방해하는 유일, 내 마음 속 느릿한 불안이 조용히 올라오곤 한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장면을 떠올린다. “오늘은 조금 피곤하네. 네가 말릴래?” 혹은 이런 말도 없지만 자연스러운 척, 당연한 척, 물어보지 못하고 나 혼자 머리를 말리는 상상. 이런 못된 상상이 피어오르면 내 자아의 기원인 불안을 원망하며 가슴을 슬쩍 내리친다.


이 불안은 흰 와이셔츠와 베이지색 조끼, 체크무늬 치마 교복을 입고 있던 어느 날 오후에서 시작한다.


중학교 2학년, 내 생일이 막 지난 가을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도착한 집, 그날따라 공기가 이상했다. 눈으로 보는 색이 조금 달랐다. 어쩐지 푸른빛이 번져 있었고, 익숙한데 무언가 낯선 느낌이 들었다. ”왜 이렇게 파래 보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감각이었다. 이제는 안다. 사람의 몸이 때로는 이별을 감각으로 깨닫는다는 것을


현관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그저 집일 뿐인데, 마음이 이상했다. 집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엄마가 없는 평소보다 훨씬 깊은 고요였다.


그날 아침, 엄마는 등교하는 나를 보며 말했다. “같이 나가자.” 어디를 가자는 건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운동을 하려던 건지, 미용실에 들르려던 건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저 먼저 갈게요.” 그리고 현관문을 나섰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날 이후 엄마를 다시 볼 수 없었다. 엄마는 전화는 받지 않았고, 조금 기다리자 대신 경찰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아빠에게 연락을 하고, 경찰과 함께 응급실로 향했다. 거기서 엄마를 봤다. 마지막까지 고통스러워 보였다. 하얀 천이 얼굴 아래를 덮고 있었고, 의사는 올라가서 엄마를 깨우려 했지만, 아무도 엄마를 깨우지 못했다. 의사가 엄마를 포기하는 순간에도 나는 울지 않았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몸속 어딘가가 조용히 굳어버렸다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이 굳어진 것에 대해 마침내 해석할 수 있었다. 기대하지 않아야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배웠고, 누군가의 품을 필요 이상으로 바라지 않아야 덜 아프다는 것도 배웠다. 사람은 결국 타인이라는 것, 설령 그것이 나를 낳아준 엄마라 해도.


더 많은 시간이 흘렀다. 사람들은 자라면서 세상을 믿는 법을 배운다고 했다. 나는 그 반대를 배웠다. 믿음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사람은 결국 나밖에 없다.


이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동시에, 지금의 나를 가둔다. 누군가의 사랑 앞에 나는 어쩔 줄을 모른다. 그가 내 못난 얼굴을 귀엽다고 말할 때, 엉망인 하루를 조용히 받아줄 때, 내 머리를 말려줄 때조차 나는 고맙고 동시에 불안하다. 이 따뜻함이 사라지면 나는 다시 견딜 수 있을까. 이 사랑이 변해도 나는 괜찮을 수 있을까. 그 질문이 내 마음 구석에서 쉬지 않고 맴돈다.


오래된 아이의 목소리가 속삭일 때면 스스로 되뇌인다. 언젠가 그가 내 머리를 말려주지 않는 날이 온다 해도, 그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 물론 조금은 서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의 안온한 사랑에 힘입어 기꺼이 그 서운함을 받아드릴 준비를 한다


나는 오늘도 욕실에서 나온다. 그는 드라이어를 든 채 조용히 웃는다. 나는 고개를 숙인다. 뜨거운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를 스쳐간다. 내 안의 오래된 불안은 잠시 숨을 고른다.


사람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지만, 그래도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그 믿음을 배우는 데 아주 오래 걸렸고, 나는 지금도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어쩌면 내 머리를 말려주는 이 시간은, 그 자기암시 같은 배움의 한가운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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