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골당에 엄마는 없다

by 실버

명절날 본가에 내려가지 않겠다고 말하면 아빠와 할머니는 말한다. “니네 엄마도 안 보러 오냐.”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왜 내가 가고싶지 않은지 그들에게 부르짖고 싶다.


엄마는 이미 죽었다. 그녀는 거기 없다. 납골당의 유골은 그녀가 아니다. 그녀는 나를 버리고 갔다. 그런데 나는 왜 그녀를 찾아가야 할까.


왕복 두 시간. 머무는 시간은 5분 남짓. 아빠, 언니, 가끔은 막내까지 유골함 앞에 선다. “벌써 10년이네, 우리 많이 컸다", 그리고 “이제 가자.” 그게 전부다.

납골당에서 엄마가 우리를 보고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나와 언니를 버리고 혼자 도망갔으니까 미안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막내를 보면 괴로워하겠지.


막내는 아빠와 새엄마의 아들이다. 엄마는 끝내 아들을 낳지 못했다. 입덧으로 힘들어하던 얼굴, 반복된 유산으로 지쳐 있던 몸, 그리고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던 순간.


엄마는 반복된 임신과 유산으로 찐 살 때문에 스스로를 미워했다. 결국 다이어트약에 손을 댔고, 조현병, 우울증, 그리고 자살. 그녀는 세상에서 도망갔다.


아빠는 한동안 막내를 데리고 왔다. 드디어 낳은 아들을 자랑하고 싶었던 걸까. 혹은 엄마에게 말하고 싶었던 걸까. 너는 낳지 못했지만, 나는 결국 아들을 가졌다고. 아니면 우리가 하지 못했던 일을 자신이 해냈다고 걱정하지 말라 전하고 싶었던 걸까. 혹은 아들에게 "'우리 엄마’를 보여주고 싶었을까. 자기가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 한명 더 있었다고.


뭐든 아니길 바라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아빠의 이기적임이 다시 한 번 엄마를 괴롭게 하는 일이라는 걸 그는 끝내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아빠와 할머니는 말한다. “니네 엄마 보러가자." 아마 그들은 믿고 있을 것이다. 엄마가 거기서 우리를 보고 있다고. 매년 달라진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의 죄책감을 줄일 수 있다고.


나는 그 믿음을 따라가지 못한다. 나는 엄마가 납골당에서 우리를 보고 있지 않길 바란다. 소멸이든, 환생이든, 그 어떤 방식으로도 우리 곁에 없기를.


명절마다 찾아오는 우리를 보며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기를, 명절이 아니면 오지 않는 우리 때문에 외로워하지 않기를. 그녀는 사는 동안 충분히 괴롭고, 충분히 외로웠다. 나를 버리고 갈 만큼 고통스러웠던 그녀가 지금까지도 아파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