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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꿈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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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 Nov 21. 2020

어느 호텔

꿈의 기록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나와 같은 호텔에 묵고 있는 사람들이 연회장에 모여 있다. 저마다 같은 목적으로 투숙한 사람들이다.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고등학교 동창도, 대학 동창도, 예전 직장 동료도. 아는 얼굴이 많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죄다 모여 있기라도 하듯이.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서 한바탕 게임을 한다. 각종 무기를 장착하고 적과 교전하는 게임인데 실전을 방불케 한다. 실제로 전투에 참여하는 기분이다. 마치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듯하다. 서바이벌 게임을 한 번 해봤을 뿐이지만 얼마나 스릴 넘치던지. 해본 사람은 안다. 고작 물감일 뿐인데 그게 내 몸에서 터질 때 그 참담한 기분이란!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게임인지 구분이 잘 안 된다. 나는 그저 그 안에 있다. 우리는 조금 전 큰 전투를 치른 상태다. 양쪽 다 인명 피해가 상당하다. 막바지에 이르러 남은 적 몇 명이 줄행랑을 친다.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은 아군 한 명이 놓쳐서는 안 될 적군 한 명을 놓치고 마는 우를 범한다. 등을 돌리고 교전지를 빠져나가는 적군을 보며 망연자실, 넋 놓고 바라볼 뿐이다. “쏴! 쏘라고!” 누군가 채근해 보지만 그들은 이미 퇴각한 후다. 


상황실 같은 곳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며 프로그램에서 빠져나온다. 게임 종료. 그들이 또 언제 급습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남겨 놓은 채. 적들이 어떤 무기를 지니고 무슨 전략으로 쳐들어올지 파악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그런데 그들이 진짜로 다시 급습을 시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것도 무시무시한 화력을 지닌 무기들을 동원하고서. 비상이 걸리고 방어선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으로 다들 분주하다. 이쯤에선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건 실전이야,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닌다. 


건물의 계단을 내려가는데 누군가를 닦달하고 있는 몇 명의 무리가 보인다. 낡고 더러운 화장실 안이다. 그들은 약을 거래하는 중이다.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인물(A라고 하자)이 상황을 주도한다. 약을 파는 사람에게 악을 쓰다시피 소리를 지른다. 약을 사는 쪽에서 불만이 상당한 걸로 보인다. 분위기가 살벌하다. 다들 신경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는 것 같다. 


칸막이 안에 있는 누군가가 약을 받아들고 확인 작업에 들어간다. “약이 너무 약해.” 볼멘소리가 새어 나오자 A가 칸막이 아래 틈으로 가루를 받아들고는 맛을 본다. 잠시 후에 A도, 나도 화장실 칸에 들어간다. 그 순간 이곳 관리자 혹은 책임자가 오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관리자가 화장실 칸 앞까지 당도할 동안 우리는 무방비 상태다. 쥐 죽은 듯 숨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숨어 있을 따름이다. ‘어쩌지? 어쩌지?’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들키지 않을 리 없다. 나는 볼일을 보고 있는 체하려고 더러운 화변기 위에 쪼그리고 앉아 힘을 주기 시작한다. 


호텔 방으로 향하는 복도에서 방마다 문이 활짝 열려 있고 안에서 방 정리를 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내 방 안에서도 직원이 정리를 하고 있다. ‘제때 연장을 하지 않아 체크아웃이 되고 말았구나. 아직 좀 더 있어야 하는데. 왜 난 그거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을까?’ 자책하며 방 안에서 내가 남긴 흔적을 살펴본다. “그 사람 하와이에 다녀왔다며?” 다른 방에서 직원 한 명이 소곤대는 말소리가 들려온다. 그제야 내가 하와이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그곳을 빠져나와 전화를 하려고 폰을 찾는다. 그 순간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폰 화면에 여러 사람의 모습이 뜬다. ‘다중 영상 통화?’ 전화를 받으니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음악에 맞춰 뭔가를 한다. 연극을 하듯 움직인다.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뭔가 준비한 모양이지?’ 한동안 나는 폰을 들여다본다. 그러면서 어딘가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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