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 5

저녁 지각생

by 에킨

버스에 올라탔다. 바깥 풍경을 잘 보기 위해 맨 앞자리를 택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광역버스 같은 버스인 듯싶었다. 약간 어둑어둑해지는 바깥이 사뭇 멋들어졌다. 더 이상 햇빛도 내리쬐지 않아 피부나 시야를 자극할 만한 어떠한 요소도 없이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여유를 누리고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기사님 역시 여유를 아시는 분인지 매우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내부순환로 같은, 하지만 그것보단 좀 낮은 고가도로? 비슷한 도로를 이용하는데, 앞에 차가 한 대도 없어도 속도는 60으로 요지부동이었다. 미래에 자율 주행하는 버스를 타면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속도 변화 없이 그대로 쭉 나아가는. 뭐 나쁘지 않았다. 여기서야 나도 급할 게 없으니. 우린 그렇게 함께 여유를 누렸다.


차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예쁜 듯 아닌 듯, 오묘했다. 그리 예쁘진 않은데 계속 눈길이 가는 그런 사람, 딱 그런 풍경이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데 뭔가 담아두고 싶은, 자꾸만 보게 됐다. 차도 슬금슬금 가고 있겠다 제법 운치 있는 청승을 떨었다.


하늘이 멋졌다


하지만 기사님은 운전 스타일만큼이나 말투도 차분했다. 문제는 너무 차분한 나머지 뭐라는지 잘 안 들렸다는 것. 한국에서야 버스 한 정거장 놓치면 다른 버스 타고 오면 되지만 외국이고, 외진 곳이라 고생을 사서 하고 싶진 않았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개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다행히 내가 내릴 곳을 듣게 됐고, 맨 앞자리인 만큼 당당하게 내렸다. 하차 태그도 해야 하는지 몰라서 뻘쭘하게 버스에 다시 올라탄 건 좀 가오가 상했지만, 그래도 내릴 곳을 놓치지 않은 게 어디인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내린 곳은 대략 이랬다


그런데 뭔가 자꾸 빼먹은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버스에 뭘 놓고 내렸나? 그건 아니었다. 물건 산 걸 놓고 왔나? 산거라곤 탈수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 들고 다녔던 아쿠아리스뿐이었다. 버렸다. 여행기간 동안 분신과도 같았던 아펜쳐 모자는 쓰고 있나? 얹혀있었다. 안경잽이라 선글라스를 쓸 수 없어 갖고 다니던 클립은? 가방 안에 오케이. 대체 뭐지? 그러던 와중 에어비앤비 메시지가 도착했다.


"Where are you now? What time will you back?"


체감 엄마


그랬다. 시코상이 저녁때 자기 친구들과 반주를 함께 하자고 했던 게 기억이 났다. 7시까지 오라고 했는데 이미 7시가 넘었었다. 더군다나 전 날과 다른 길이었기 때문에 가는 법도 서툴러 구글 지도가 일러준 10분보다 늦을 것만 같았다. 일단은 메시지를 읽씹 하고 빨리 걸었다. 메시지로 구구절절 설명할 시간에 한시라도 빨리 도착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해도 거의 넘어가 길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을 이들을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에게 맥주를 선사하기 위해. 고지가 눈앞이었다. 도달하면 맥주와 음식을 영접할 수 있다. 그 기대 하나로 날랜 걸음으로 숙소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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