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민영 Dec 27. 2021

2021년 올해의 영화 베스트 10 (국내 개봉작)

2020년에 코로나로 인해 상반기 극장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던 게 기억난다. 그러다가 2020년 하반기가 끝날 즈음 다다라 개봉을 미루던 주옥같은 영화들이 앞다투어 개봉하기 시작했다. 2020년 11월엔 그 영화들을 몰아보기도 바빴다. 올해는 이미 2020년에 겪은 게 있기도 하고 2021년 11월부터는 위드코로나, 백신패스 등의 도입이 시작되어 어떻게든 극장가를 활발하게 하려는 조짐이 보였다. 어쨌든 2020년의 경험을 바탕 삼아, 2021년에는 2020년보다 조금 더 많고 좋은 영화들이 개봉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2021년에도 2020년만큼 극장에 자주 갔다. 외식을 1년 내내 거의 하지 않은 것에 비해, 극장은 일주일에 한번, 어떤 때는 두세 번도 불사했던 것 같다. 극장에서는 취식이 되지 않고(아주 잠깐 풀렸던 때가 있었으나), 여전히 거리 두기 좌석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2021년도에 들어 나는 완전히 프리랜서가 되었기에 극장 포맷과 시간의 선택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여하튼 작년보다 좀 더 많은 개봉영화를 보았고, 작년에는 두 번 볼 거 한 번 보는 등 몸을 사리기도 했지만, 올해는 딱히 그러지 않았다. 블로그에서 부산국제영화제 이야기를 따로 하진 않았는데, 2년 만에 부산국제영화제에도 들러 올해 개봉작 혹은 내년도 개봉작을 미리 보기도 했다. 


베스트 10의 영화들을 꼽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올해의 영화는 작년처럼 딱 '반드시 이거다!'싶은 영화가 별로 없었고, 고만고만하게 1-3위 정도의 상위권을 주고 싶은 영화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리스트는 2021년 1월부터 2021년 12월까지의 국내 개봉작을 기준으로 했다. 언제나 그렇듯, 순위는 10위부터 1위까지 순서대로다.


10. <모가디슈>


2021년 최고의 흥행을 가져다준 한국영화가 아닐까 싶은 <모가디슈>. 2020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두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그걸 깨고 두 번 본 영화가 바로 <모가디슈>다. 실화를 바탕으로,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와 류승완의 장점만을 솎아내 만들어진 블록버스터 영화. 전작들에서 했던 실수 없이, 매끄러운 결말도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건, 구교환. 입장과 퇴장 방식 모두 좋았다.


9. <퍼스트 카우>


<웬디와 루시> <믹의 지름길> 등을 보며 단박에 최애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던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신작. 19세기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우유가 귀한 시절 이를 두고 벌어지는 사건이 주가 되는 버디무비. 켈리 라이카트 감독 특유의 자연을 다루는 연출, 그리고 건조한 시선으로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큰 울림을 주며 맺는 결말이 이번에도 역시 좋았다. 2021년에만 서부극이 두 편 연달아 개봉했는데, 워낙 서부 시대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터라 즐겁게 관람했다.


8.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개봉 당시부터 좋다고 좋다고 노래를 불렀던 바로 그 영화. '디즈니픽사'가 아닌 '디즈니'의 새 영화다. 디즈니 최초의 동남아 공주가 등장한다는 사실로 화제를 끌었는데,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메콩강의 문화에 대해 익히고, 넓게는 동남/동북아 문화권에 대해 심도 있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생각한다. <모아나> 제작진이 만들었기에 물의 묘사와 표현이 정말 끝내주며,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붕괴된 세상, 그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동물, 남겨진 '마지막 드래곤'의 연대에 관한 이야기다.


7. <콰이어트플레이스 2>


보는 내내 긴장을 거두지 못했던 수작 <콰이어트플레이스>의 속편. '공포'나 '크리쳐' 혹은 '재난'으로 분류된 영화의 속편은 아무래도 여러 걱정이 들 수밖에 없는데,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그런 걸 통쾌하게 날려 부수는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이란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한데 <콰이어트 플레이스 2>가 그걸 해내고 말았다. 한층 더 넓어진 세계관과 업그레이드된 편집과 음향이 아주 만족스러웠고, 공포영화 가뭄이었던 2021년에 제 몫을 톡톡히 해주었다. <콰이어트플레이스 3>가 내년, 혹은 내후년 즈음 나올 예정.


6. <피닉스>


작년 개봉영화 베스트에 <운디네>를 넣었는데, 올해도 또 크리스티안 페촐트 영화를 넣게 되었다. <피닉스>는 작년 개봉한 <운디네>보다 한참 전인 2014년에 제작된 영화로, 2021년 7월에야 한국에서 정식 개봉하게 되었다. <피닉스>의 개봉 직후 페촐트 영화 특별전이 곳곳에서 열렸는데, 대부분의 영화들을 챙겨보며 다시 한번 크리스티안 페촐트와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고전적인 멜로장르를 계승해 비극의 누아르를 선보여준 <피닉스>. 다시 생각해도 엄청난 울림을 주는 라스트 씬. <피닉스>의 라스트 씬은 '올해를 빛낸 라스트 씬'으로 꼽혀도 손색 없을 정도.


5. <파워 오브 도그>


넷플릭스 공개작이긴 했지만 극장에서 먼저 개봉했고, 당시에 개봉작으로 보아 이 목록에 들어올 수 있었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오랜만의 신작으로,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여했으며 오스카에 거론되고 있는 작품. 11월 개봉이었으니 좀 늦게 본 셈인데, 보자마자 단박에 '이건 올해의 영화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다. 서부극으로 시작하지만, 그 안에 가둬져 있는 여러 갈래들의 감정이 하나씩 풀어져 나오면서 로맨스 혹은 스릴러로 바뀐다. 영화의 호흡 자체는 느린 편인데, 처음 오프닝 시퀀스부터 시작해 이후 일련의 사건을 거치는 과정들이 퍼즐처럼 맞추어지며 결말에서 한 번에 터지는 흐름이 매우 탁월하다. 서부극 장르의 수작으로 자리매김될 것이 분명한 영화.


4. <라스트 듀얼:최후의 결투>


<라스트 듀얼:최후의 결투>는 개봉 이후 주변인들에게 '좋다 좋다 좋다'를 연발하며 제발 내리기 전에 극장 가서 보라고 등 떠밀던 영화였다.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고, 실화를 바탕으로 하며, 원작 소설이 있다. 맷 데이먼, 아담 드라이버, 조디 코머, 벤 애플렉 등 엄청난 캐스팅에 더 엄청난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영화. 중세의 탈을 쓰고 있지만 리들리 스콧의 '떠먹여주는 페미니즘 영화'로, 스콧의 장기가 모조리 집약된 작품이다. 러닝타임 152분이란 허들이 좀 높지만, 1부부터 3부까지 시간 순삭이라 막판엔 눈 끔벅이며 극중 관중들에게 심하게 몰입되는 재밌는 영화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 내는 감독이 아직 있다니, 눈물이 줄줄 흐를 수준. 믿고 보는 고증, 믿고 보는 연출의 리들리 스콧 되시겠다.


아래의 3위부터 1위까지의 영화는, 포맷이 다른 극장에서 각 두 번 이상씩 관람했다.



3. <그린나이트>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판타지 호러이자, 중세 전설인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를 원작으로 두고 있는 영화. 데브 파텔이 주연을 맡았으며,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배우인 배리 키오건이 등장해 앞뒤 고민 없이 선택했던 영화다. 중세의 판타지물을 현대의 시점으로 각색해 재해석한 세계관이 맞으며, 영화 자체는 난해하고 열린 결말이지만, 확실히 '보는 재미'가 있다. 이를테면 이런 영화를 '영화다'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다만 홍보문구에 쓰인 것처럼 액션 영화는 아니고, 비슷한 미장센과 구성 방식을 가진 영화를 꼽자면 <더 폴> 정도. 어른들을 위한 동화란,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2. <티탄>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보고(이 영화의 프레스 티켓을 얻기 위해 정말 고군분투 했다), 당시 너무 좋았던 기억 때문에 개봉하자마자 잽싸게 명필름 돌비관에서 다시 본 영화. <로우>를 연출한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자,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전체를 놓고 보면 변화와 사랑, 두 가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이야기인데 그 전달 방식이 엄청나게 독특하다. 포털사이트에 올려진 줄거리인 '교통사고로 인해 티탄을 몸에 심고 살아가는 여자의 이야기'는 영화 초반 몇 분에 불과하고, 그 이후의 모든 이야기들이 단 한 순간도 예상에 들어맞는 게 없을 정도로 롤러코스터 고공행진을 타는 영화. <티탄>을 두 번째 관람했을 때야 비로소 이 영화는 너무 슬픈 비극이자 드라마라는 걸 깨달았다. 첫 번째는 <티탄>의 서사 전달방식과 비주얼에 시선을 빼앗겼다면 두 번째는 그것들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진화, 혹은 긍정적 탈피를 받아들이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슬픔을 나눠갖는 대안가족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올해의 문제작임은 분명하고, 동시에 오랜 시간 기억에 남을 영화. 고작 두 번째 영화에서 이런 걸 만들어내다니, 뒤쿠르노의 다음이 어떨지 기대된다.


1. <듄>


올해 개봉작 베스트는, 나에겐 역시 <듄>이다. 드니 빌뇌브의 신작이자 엄청난 캐스팅으로 제작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던 영화. 프랭크 허버트의 동명 원작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사실상 그 세계는 완전히 각색되어 드니 빌뇌브의 스타일로 재해석되었다. 드니 빌뇌브의 영화는 종종 너무 지나친 아트워킹이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듄>이야말로 그가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는 세계관의 집대성이며, 이전의 작품들로 인해 '사막'을 가장 잘 쓰는 감독으로 <듄>의 재질이 딱 들어맞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더불어 아주 오랜 '듄 덕후'인 한스 짐머가 정말 역작의 음향을 만들어냈다. 한스 짐머의 사운드를 듣고 있으면 '이 양반 정말 신났군'스러운 모먼트가 귓가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개인적으로는 <듄>을 통해 성장한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가 너무 좋았는데, 그는 마치 오래 전부터 '폴 아트레이데스'였던 것처럼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하고 있다. 드니 빌뇌브가 티모시 샬라메를 '폴' 역으로 캐스팅한 이유는 '샬라메는 성숙함과 천진함의 표정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빌뇌브 말마따나 나이는 어리지만 일찌감치 혜안을 가지게 된 '폴'의 캐릭터가 너무 잘 어울린다. 티모시가 연기한 폴을 아이맥스와 돌비로 보는 재미만으로도 흡족한 영화였는데, 폴의 주변을 이루는 조연들의 연기와 캐릭터 해석력 또한 탁월하다. <듄>은 2021년 10월부로 '파트 2' 제작에 들어갔다.


올해는 유독 두 번 이상 본 영화가 많았는데, 정부 지원금을 사용해서 이기도 하고 여러 모로 '극장'이라는 시스템이 코로나19로 인해 제한되거나 폐쇄되진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마음에 드는 영화들을 더 챙겨보기 위한 노력이 있기도 했던 듯하다. 위에서 열거한 영화 외에 흥미로웠던 개봉작은 <매트릭스 리저렉션>, <잘리카투>, <엔칸토:마법의 세계>, <이터널스>, <소울> 등이 있었다. 더불어 정가영 감독의 첫 상업영화인 <연애 빠진 로맨스>도 즐겁게 보았다. 12월에 시간이 좀 없어(라고 하기엔 영화를 엄청 보긴 했지만)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지 못한 게 좀 아쉽다. 이 영화를 봤다면 분명 개봉영화 베스트 어딘가 끼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 리스트를 다 쓰고 며칠이 지나서야 <노매드랜드>를 깜박했다는 걸 알았다. 누군가 이 목록을 보고 이 영화가 왜 없지? 의문을 가지신다면, 번외로 가장 좋았던 영화는 <노매드랜드>였음을 알아주시면 좋을 듯. 이 영화의 엔딩롤이 다 올라갈 때까지 먹먹하게 앉아 있던 순간이 새삼 기억난다. 누군가의 죽음에, 누군가의 삶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 영화.


매거진의 이전글 이번 주 넷플릭스 추천작 - <고요의 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