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마존프라임과 디즈니플러스를 구독하면서부터 또다시 OTT분열 지옥에 빠졌다. 더불어 HBO와 파라마운트가 국내 서비스될 것을 알리면서 OTT정국은 어디로 흐르는가 깊은 시름 하던 차에....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넷플릭스의 이용이 높았다. 이유는 오리지널 스토리가 넷플릭스만큼 다양하게 공개되는 곳이 없고, 올해 하반기에 걸출한 한국드라마들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기 때문. 블로그 어디에도 <오징어 게임>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정도로 그 시리즈를 좋아하진 않으나, 확실히 <오징어 게임>이 쏘아올린 파급력은 부정하지 못하겠다. 이를 기반으로 더 좋은 한국 드라마/영화들이 넷플릭스를 통해 제작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올해 얼마나 넷플릭스를 보았냐 하면, 사실 몇 편을 보고 어쨌고 하는 수치적 계산을 할 수는 없고, 하루에 한 편 정도는 무조건 봤던 것 같다. 특히 새 작품/시리즈가 공개되는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 동안은, 재밌건 재미없건 시리즈에 한해서 모두 몰아봤기에 주변 지인들로부터 '찍먹 전문'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좋은지 나쁜지 먼저 찍어 먹어보고 반응을 알려주는 감별사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새로 나온 것 중 흥미진진해보이는 건 참을 수 없어 한번에 다 달려 본 이유도 있다.
이번 추천작 목록에는 한국드라마가 제법 많다. 올해 넷플릭스 뿐만 아니라 케이블에서도 주옥같은 한국드라마들이 다수 쏟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순서는 10위에서 1위 순이다. 전부 2021년 넷플릭스에 공개된 시점을 기준으로 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영화를 중심으로 다뤘고, 개봉 예정이었으나 개봉하지 못해 넷플릭스로 편입된 영화 또한 포함시켰다. 넷플릭스 공개작으로 넷플릭스 공개보다 개봉이 빠른 영화도 있지만, 별다른 기준을 세우지 않고 내가 그 영화를 어떤 포맷으로 봤나로 가르기로.
이 블로그를 꾸준히 방문해주셨던 분이라면, 대체로 익숙한 작품들이 많다. 매주 추천작으로 꼽았던 작품들이 베스트 목록과 중복되기 때문이다.
10.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사랑스러운 '라라 진' 캐릭터가 돋보이는, 이른바 '내사모남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 '내사모남' 시리즈를 즐겼던 팬으로, 엇나가지 않고 비교적 깔끔하게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작품이라 더 마음이 갔다. 한국계 미국인 영 어덜트 소설가인 제니 한의 원작을 기반으로 한 하이틴로맨스물로, <클루리스>나 <브링 잇 온> 같은 그 시절 그 감성의 하이틴 무비에 목이 말랐던 사람이라면 정말 행복하게 즐기고 챙겨봤을 시리즈. 이번 마지막 편인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는 한국에서 촬영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9.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거울 속으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등을 연출한 김성호 감독의 첫 번째 넷플릭스 연출작. 원작 에세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각색한 드라마로, 올해 상반기 탕준상 배우의 입지를 굳히게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매 에피소드가 안정적이고, 두 주인공을 이어주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잘 얽혀져 따듯한 결말로 이끈다. 넷플릭스에 이 드라마가 공개될 즈음 탕준상 주연의 <라켓 소년단>이 시작했던 것 같은데, <라켓 소년단>도 재밌게 봤던 작품으로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8. <화이트타이거>
올해 1월에 봤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중 가장 좋았던 작품. 아라빈드 아디가의 동명 소설인 『화이트 타이거』를 원작으로 한 영화로, 프리얀카 초프라, 라지쿠마르 라오 등 굵직한 인도 배우들이 참여해 화제를 모았던 영화다. 여전한 인도의 카스트와 신분제를 비판하는 동시에 '현재의 인도'를 만드는 게 무엇인지 비판하고 파고 드는 영화. 그렇다고 재미가 없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 아주 흥미롭게 봤다. 원작 소설을 워낙 좋아했는데, 원작 소설보다 조금 더 유한 서사와 연출로 절대 다수의 '호'를 자극한 듯. 아카데미 각색상 후보에 올랐었다.
7. <언포기버블>
하반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는 거의 재앙 수준이었는데, 그 불만을 완전 씻겨준 작품이었던 <언포기버블>. 산드라 블록 주연으로, <버드 박스> 이후 오랜만의 영화 주연작이다. 살인죄로 20년을 복역 후 출소한 '루스'라는 여성이 주가 되는 이야기. 샐리 웨인라이트의 드라마 <언포기븐>을 원작으로 두고 있지만, 전혀 다른 감성으로 사건을 접근하여 호평을 받았다. 산드라 블록의 캐릭터 해석력과 더불어, 시종일관 느슨함이라곤 찾을 수 없는 긴장감 속에 머리를 울리는 결말을 안겨주는 게 포인트. 한스 짐머가 음악의 일부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극장에서 보면 더 좋았을 텐데, 놓쳐서 좀 아쉽다.
6. <아케인:리그 오브 레전드>
올해의 넷플릭스 시리즈를 빛낸 1등 공신임이 분명한, <아케인:리그 오브 레전드>. '롤'이라는 게임의 세계가 기반이긴 하나 롤의 'ㄹ'자도 몰라도 충분히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롤'의 캐릭터인 '징크스'와 '바이'의 서사를 주 소재로 하고 있으나, 작화가 뛰어나고 모든 연출과 카메라 워킹, 에피소드를 엮는 방식 등이 너무 유려하고 신선해 아무 것도 모르는 제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시간 순삭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시리즈. 마케팅을 위해 1-3화가 선공개되었는데, 이때 폭발적인 반응을 딛고 나머지 화들이 차례로 공개되었고, 시즌1 종영 이후 시즌2 제작이 확정되었다. 올해 본 모든 애니메이션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작품.
5. <조용한 희망>
원제는 'MAID'. 루어낸 스테파니의 동명 에세이를 원작으로 두고 있는 시리즈다. 지난 10월에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올해 모든 넷플릭스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드라마적이라는 호평을 얻고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기댈 가족도 없고 마땅한 기술도 없이 아이와 함께 세상에 덩그라니 놓인 싱글맘 '알렉스'의 이야기가 주다. 알렉스를 포함해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절대악 혹은 절대선처럼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입체적 서사와 성격을 보여준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 화에서 알렉스가 숨을 고르며 자신을 오랜 시간 학대한 사람을 찾아가 "이제 다시 너를 두려워 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올해의 장면으로 뽑고 싶을 정도. 참고로 배우 마고 로비가 제작에 참여했으며 알렉스 역을 맡은 마가렛 퀼리의 친모인 앤디 맥도웰이 드라마에서도 엄마로 등장해 엄청난 모녀 지간의 연기를 보여준다.
4. <D.P.>
<차이나타운> <뺑반>을 연출한 한준희 감독의 첫 번째 넷플릭스 시리즈 <D.P.>. <아만자>로 유명한 김보통 작가의 웹툰 <D.P.-개의 날>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총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들의 편수를 생각하면 <D.P.>는 더 해도 좋을 정도였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만큼 흡입력있고 시작하면 단번에 마지막까지 달려가게 하는 힘이 있으며, 모든 주조연 배우들이 엄청난 케미를 자랑한다. 특히 구교환 배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더불어 최근 <구경이>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조현철 배우 또한 <D.P.>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2021년 뉴욕타임스 최고의 인터내셔널 TV쇼 TOP10에 선정되었고, 최근 시즌 2 제작에 돌입했다.
3. <돈 룩 업>
내가 살면서 아담 맥케이의 영화를 지루하게 느꼈던 적이 있었나? <빅쇼트> <바이스> <앵커맨> 등만 해도 심각한 표정 뒤에 회심의 블랙코미디를 심어놓은 영화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돈 룩 업>은 거기서 한층 더 나갔다. 말 그대로, '우린 망했다, 그래서 이제부터 어떻게'를 보여주는 영화. 지구로 향하는 혜성의 존재를 발견한 두 천문학자로 부터 발생된 이야기는, 전 인류에게 '이상하게' 가 닿는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조나 힐, 메릴 스트립, 케이트 플란쳇, 티모시 샬라메 그리고 아리아나 그란데 등 이름만 들어도 입이 떡 벌어지는 배우들이 총출동하는데, 얼굴에 성형이라도 한듯 지금까지 보여준 연기와 너무 다른(그래서 재밌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진짜 데굴데굴 깔깔 구르며 보다가 마지막에 묘한 감동과 비극을 남겨주는, 아담 맥케이만의 독특한 철학이 집대성된 영화. 연말연시, 이만한 영화가 또 있을까 싶다. 쿠키는 2개이니 꼭 기억하시길.
2. <괴물>
올해 나의 모든 한국영화, 한국 드라마를 통틀어 넘버원으로 꼽고 싶은 작품, <괴물>. 어떻게 이런 드라마가 나왔나 싶을 정도로 시작부터 혀를 내둘렀는데, 그 긴장이 마지막 화인 16부까지 고르게 이어져 또 한번 무릎을 탁 치고 입을 쩍 벌렸던 드라마다. 신하균, 여진구 주연에 연기파 조연들로 가득찬 드라마로, 백상예술대상 TV드라마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연쇄 살인의 실마리를 풀어 나가는 게 주된 소재지만, 애초에 알고 있던 단서가 다음 화에 뒤집히거나 과거의 사건이 현재 혹은 미래와 연결되는 등 관객에게 추리미스터리, 그리고 스릴러의 진국을 경험하게 한 드라마. 12화에 다다라 '더 이상 진행될 서사가 없겠는데'라며 다음 화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던 때,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듯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는 흐름이 너무 좋았다. 최백호의 OST 또한, 극의 분위기를 한층 더 살려준다. 정말 '말해 뭐해'싶은 드라마.
1. <어둠 속의 미사>
대망의 1위는, <어둠 속의 미사>.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마이크 플래너건의 작품으로, 전 에피소드 플래너건이 연출을 맡았다. 2018년 이후 꾸준히 플래너건은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를 내고 있고 2022년에도 하나 예정되어 있는데, 다작을 함에도 불구하고 무엇 하나 흐트러지거나 어긋나지 않고 고르고 다른 성질을 유지한다는 것에 정말 투 썸즈 업. <어둠 속의 미사>는 청불 등급의 호러 드라마로, 작은 섬과 그 섬의 성당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 소재로 한다. 플래너건 연출작 중 드물게 원작이 없는 작품인데,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인물들이 여기저기 튀어나며 벌이는 드라마, 그런데 거기에 초자연적 현상과 환상, 트라우마를 엮은 다층적 드라마다. 확실히 오컬트나 크리쳐물은 이래야 한다는 확신을 또 한번 안겨다 준, 플래너건의 마스터피스 중 하나. 시리즈로의 플래너건은, 이제 정말 완벽해졌다. '드라마란 무엇인가'의 정석을 보여주듯 전체 판을 조합하고 흔들어 관객에게 내보이는 실력이 정말 점차적으로 수준급이 되어간다. 플래너건이 만드는 공포는 동시대 다른 감독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독특함과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공포라는 장르에서 끝나지 않고 더 나아가 드라마적 맺음으로 극을 갈음하는 연출력. 역시 플래너건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어 준 또 하나의 드라마.
올해는 예년보다 다큐멘터리를 챙겨보지 못했는데, 개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도시인처럼>이었다. 더불어 한국드라마 절반 이상이 방영 이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어 한국드라마를 작년보다 더 챙겨보던 한 해였고, 그만큼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콘텐츠들도 하반기에 가득 포진해있어 쉴 새 없이 바쁜(?) 하반기였다. 그와중에 OTT는 분열 정국을 맞고 넷플릭스는 가격을 올렸는데, 내가 챙겨보는 오리지널 콘텐츠만 해도 그 값을 충분히 웃돌고 남는다는 생각에, 개인적으로 리즈너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디즈니플러스가 새로 들어왔고 이후 HBO와 파라마운트도 국내 상륙할 예정이지만, 앞서 말한 것들은 전부 오리지널 시리즈가 부족하고, 안정적인 넷플릭스 체계에 비해 여러 비판도 받고 있는 편. 이래나 저래나 지금처럼만 해준다면, 내년에도 이 정도로 많은 콘텐츠를 넷플릭스를 통해 즐기게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