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집 건너편 창가에 웬 소녀가 있
*스포일러 없습니다.
*제목 글자수 제한으로, 부제목에 제대로 된 제목 전부를 적어두었습니다 :)
이번 주 추천작은,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넷플릭스 시리즈 드라마 <그 여자의 집 건너편 창가에 웬 소녀가 있다>.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 공개가 되어 주목받았던 작품으로, 회당 25분 남짓한 짧은 텀으로 앉은 자리에서 정주행을 마칠 수 있는 드라마다. 한국에는 넷플릭스 인기작이었던 <굿 플레이스>의 주인공 엘리너 역으로 유명한 크리스틴 벨이 주연을 맡았다.
<그 여자의 집 건너편 창가에 웬 소녀가 있다>는 엄청나게 영리하게 만들어진 블랙코미디다. 예고편과 포스터만으로 이 드라마가 정통 스릴러, 혹은 호러 장르의 그것이라 생각해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드라마는 그 정통 스릴러 장르의 모든 것을 비꼬는 코미디적 요소가 들어가 있으므로 스릴러 장르를 기대한 사람들은 초반 회차부터 '이게 뭐야?'하고 소리를 지를 게 뻔하다. 의미심장하게 시작하는 오프닝 크레딧, 그리고 너무 심각하게 여자 주인공을 연기하는 크리스틴 벨. 공포스런 분위기 물씬 풍기는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이 드라마가 사실은 블랙코미디의 탈을 쓴 스릴러가 아닐까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곧 이어지는 온갖 클리셰 범벅의 장면과 스토리들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그 여자의 집 건너편 창가에 웬 소녀가 있다>는 <우먼 인 윈도>, 그리고 <이창> 등에 대한 패러디물이다. 특히 <우먼 인 윈도>의 모든 부분을 닮아 있는데, 개인적으로 <우먼 인 윈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면 역으로 그의 패러디물인 <그 여자의 집 건너편 창가에 웬 소녀가 있다>가 무척 즐거울 테다. <우먼 인 윈도>는 걸출한 이름들이 붙어 제작된 영화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건지지 못한 과유불급의 망작인데, 이 '망한 지점'들이 <그 여자의 집 건너편 창가에 웬 소녀가 있다>에서 완벽하게 재현되고, 보다 심각하고 보다 뜬금없는 장면들을 삽입해 관객들을 벙벙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그게 정말 '블랙코미디'처럼 느껴질 만큼 피식 웃게 되고 헛웃음 나는 장면들의 연속이냐 하면, 심지어(!) 그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스토리, 등장인물, 전개 방식, 복선 및 음악 어느 하나 '코미디'라고 느껴질 만한 지점은 거의 없다. 그래서 더 웃기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장르의 미러링을 통해 말 그대로 '다크 코미디'를 열연하고 있음이 눈에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화에 이르러 앞서 쌓아온 모든 복선을 해결하고(!) 사건이 일단락되거나 이어짐을 암시하는 결말 즈음에 이르러서는 거의 입을 쩍 벌리고 바라봤다. 짧은 호흡으로 훅훅 지나가다 마지막에 결정타를 세게 날리는 느낌이랄까. <그 여자의 집 건너편 창가에 웬 소녀가 있다>의 후반부는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생각하는데, 다시금 강조하지만 이 드라마를 시작하기 전에 드라마 자체가 '코미디'이자 '패러디'라는 걸 감안하고 보아야 한다. '음, 볼 만한 스릴러일까?'하고 시작했다가 욕만 씨게 뱉고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다른 드라마/영화들은 몰라도 <그 여자의 집 건너편 창가에 웬 소녀가 있다>는 어느 정도의 정보를 안고 진입하는 게 좋다. 난감한 상황을 겪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 여자의 집 건너편 창가에 웬 소녀가 있다>는 이 장르 애호가들을 위한 드라마니까. 이런 게 바로, 넷플릭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사이드킥이라 생각한다.
평소 스릴러/범죄/호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드라마를 보면서 범인을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테다. 물론 무엇도 생각하지 않은 대로 흘러가지만(이미 <우먼 인 윈도> 등의 결말을 알고 있는 사람 제외), 이런 장르를 남다르게 즐겨봤고, 어느 정도 연식이 쌓였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겐 이 드라마가 너무 즐거울 수밖에 없다. 본색을 감춘 채, 장르 자체를 까내리는 이보다 완벽한 패러디가 있을까 싶다. 여기에 미친 척 음산하고 진중한 연기를 펼치는 크리스틴 벨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