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민영 Nov 05. 2018

'e'의 스카프

"여기 오는 건 처음이야?"  


얼굴 바로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살며시 떴다. 오랜 시간 동안 눈을 감고 있어서인지 눈꺼풀 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이 너무 강렬하게 느껴졌다. 꿈벅 꿈벅, 몰려드는 햇살을 조금씩만 눈꺼풀 사이로 넣어본다. 그러면 적응이 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어디에 누워있었더라.  


"여기-이- 해변가에 오는 건 처음이야?" 


두 번째, 똑같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얼굴 바로 위에서 들려오던 목소리의 주인공. 그 주인공이 누군지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눈가를 찡그려야만 했다. 옅은 빛 사이로 양갈래 머리를 한 여자아이의 동그란 머리가 보인다. 바람에 갈라지는 머리카락이 빨간색 커튼의 실루엣처럼 움직인다. 싱그러운 미소로 나를 내려다보는 주근깨 투성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잠깐. 빨간 머리, 양갈래, 주근깨... 그렇다면 너는 혹시, 


"안녕, 나는 앤 이라고 해." 


아, 그래. 역시 너는 앤 이구나. 


"드디어 눈을 떴구나, 너. 아, 내 이름은 그냥 앤-Ann이 아니라 'e'가 붙은 앤-Anne이야." 


'e'가 붙은 'Anne'. 앤이 강조해서 말한 'e'를 되새김질하며 누워있던 몸을 바로 세웠다. 등 쪽에 차르르하고 모래가 닿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서야 내가 바닷가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 바닷가가 처음이야? 이번에 질문이 네게 벌써 세 번째 묻는 거야. 네가 내 목소리를 듣기 전에 자고 있었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아, 내가 잠이 들었었구나. 앤의 말을 듣고 몸을 일으키자 몸에서 소리 없이 고운 모래가 떨어진다. 자리를 고쳐 앉는 나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던 앤이 말을 건넸다. 


“좋은 자리에 누워있었네. 여기는 해변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고 사람이 잘 오지 않아. 바다에 자주 올 수는 없지만 가끔씩 사색을 즐기러 들르곤 했는데, 마침 내가 제일 아끼는 자리를 잘 찾았네.” 


아끼는 자리라는 말을 듣고 아차 싶어 몸을 움직이는 나를 황급히 그녀가 막았다. 


“아냐 아냐, 자리를 비켜달라는 뜻은 아니었어. 세상 어느 누가 모래가 예쁘고 풍경이 좋다고 바다의 해변 한 구석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겠어? 나는 그냥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랬어. 사실 몇 십분 전부터 너를 저기 구석에서 지켜보고 있었거든.” 


나를?  


“그래. 처음 보는 사람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에 누워있는데, 나는 처음에 하도 움직임이 없기에 네가 죽은 줄 알았어. 그것도 아니면 왜 그런 거 있잖아, 타국에서 비명횡사했는데 고향 바다를 잊지 못해 떠내려 온. 뭐 그런 사건 같은 건 줄 알았어. 좀 무례하게 들렸다면 미안해. 그냥 비극적 사건을 목도한 사람처럼 가슴이 너무 두근거려서, 한 달음에 너에게 달려왔지 뭐야.” 


앤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가 안달복달하며 달려왔는데, 넌 죽은 사람도 아니고 어딘가에 떠 내려온 것도 아니고, 그냥 곤히 잠을 자고 있더라고. 자고 있는 모습이 너무 평화로워 보여서 차마 널 깨울 수 없었어. 게다가, 그거 말이야 ㅡ” 


앤은 자신의 목 부근을 가리키며 크게 U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 스카프 이 목에 두르고 있는 스카프 말이야?  


“그래 그거, 그 스카프. 멀리서도 눈에 잘 띄는 빨간색이더라고. 내 머리색도 이렇게 빨개서 눈에 잘 띄지. 물론 네 스카프만큼 예쁜 빨간색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 스카프가 너무 예뻐서, 그렇게 예쁜 스카프를 메고 죽은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라 생각했어. 뭐, 인생의 마지막에 그런 예쁜 색으로 사치를 좀 부려도 상관없었겠지만 말이야.” 


앤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빨간 스카프를 꼭 두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누워있는 줄 몰랐고, 내가 빨간 스카프를 동여 메고 있었다는 걸 몰랐다. 앤이 나에게 한 마디씩 말을 건네줄 때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듯했다. 마치 입 속에서 팝 캔디가 팝 팝 터지듯 그렇게 하나 둘 정신이 차려지는 기분이었다.  


내 목 부근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앤을 바라보며 천천히 스카프를 풀었다. 앤은 계속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할 말이 남아있다는 듯, 혹은 대답을 들어야겠다는 듯이. 아, 그러고 보니 앤의 물음에 아직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이 생각났다. 또 한 번, ‘팝’ 소리를 내며 정신이 들었다.  맞아, 나는 이 바닷가가 처음이야. 바다는 참 많이 봤지만 난생처음 와봤어, 여기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앤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말했다.  


“맞아, 네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어. 네가 대답해주지 않으면 내가 다시 - 이번엔 네 번째로 -  물을 뻔했거든. 안 그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 이 마을에 살면 아무리 후미진 곳에 살더라도 서로를 모를 수가 없거든. 네가 이 마을에서 살았다면 당연히 알았을 텐데 말이야. 너처럼 겨울철새같이 까만 빛깔의 머리색을 가진 사람은 드물거든. 게다가- 눈은 햇빛에 부서질 정도로 밝은 갈색이네." 


앤은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앤의 짙은 초록색 눈에 내 속내를 들키는 것 같이 부끄러워 서둘러 말을 붙였다. 사실 나는 딱히 바다가 좋아서 온 것은 아니야. 그냥 좀 버리고 싶은 것이 있었어. 그뿐이야.  


“그래, 바다는 이-만큼 넓고 깊어서 무언가를 비우거나 마음을 다 잡으러 오긴 적격이라고 생각해. 나는 바다라는 것을 여기 너와 내가 서 있는 이곳 화이트샌즈 위에서 처음 알았어.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한 곳이지만, 사실 세상 어디에도 이렇게 예쁜 바다는 또 없을 거라고 생각해. 발아래 모래를 봐. 어쩌면 이렇게 색이 곱고 아름다울까. 항상 여기 올 때마다 감탄을 하곤 해." 


앤의 시선에 맞추어 무심코 발 밑을 내려봤다. 정말 그랬다. 티끌 하나 없는 하얀 모래. 여름이면 많은 관광객들이 드나들어 이 빛깔이 제대로 보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겨울의 초입이다. 해변 위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이라고는 앤과 나뿐. 이렇게 추울 때 누가 바다를 보러 가겠냐는 생각을 하며 무작정 발걸음을 옮겨 이곳으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한다. 그래, 여기라면 다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내 목을 두르고 있던 빨간 스카프의 끝자락을 꼭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쥐었다.  


“있지 나는, 사실 오늘 작별을 하러 왔어."


'작별'이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앤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줄곧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던 앤의 초록색 눈은 내가 아닌 먼 바다를 보고 있었다. 방금까지 더없이 들뜬 얼굴로 이 바닷가를 칭송하던 그녀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마치 도달할 수 없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수평선 너머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네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사람들 얼굴을 보다 보면 다양한 감정들이 드러나잖아. 근데 표정을 잘 숨기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 너는 표정을 잘 숨기지는 못하는 편인 것 같아. 봐, 그렇게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스카프를 꼭 쥐고 땅을 또 바라보고 있잖아."


아니야 난, 하얀색 모래가 너무 신기해서 그저 그 모래를 바라본 것뿐이야 ㅡ라고 말을 하려고 앤을 바라보았지만, 앤은 나를 한번 슬쩍 바라보고 다시 바닷가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물결 위로 비치는 햇빛을 가득 담은 앤의 얼굴이 너무나 하얗고 말갛게 느껴져서, 나는 변명을 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래, '변명'. 내가 지금 하려고 했던 것은 변명이 맞다. 스스로 비겁해지진 말자고,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하자고 생각하고 살아왔던 나인데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서 한걸음에 달려와주었다는 이 여자아이 앞에서, 나는 왜 필사적으로 내 마음을 숨기며 아닌 척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걸까.  





-너를 절대 잊지 않을 거야. 절대 절대, 잊지 않을 거야.


나는 B가 나에게서 멀어지던 날을 기억한다. 나는 꽤 많은 시간을 B에게 할애했고 우리는 제법 깊은 시간을 함께 했다. 함께여서 힘들었던 시간들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낙엽이 떨어지면 찬바람이 기승을 부리듯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도 당연한 존재였다. 그렇게 당연하게 여기던 B의 존재가 돌연 없어진 것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그날의 바다는 너무 거칠고 파도는 너무 높았으며 B의 몸은 그들에 대적하기엔 너무 작고 연약했다. 

그렇게 B가 나의 일상에서, 나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난 후 나는 지금까지 바다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처음에는 나에게서 B를 빼앗아버린 그 바다를 지독히도 원망하며 세상 모든 바다가 흙으로 변해버렸으면, 숲과 풀들이 바다를 먹어 진흙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어이없는 생각을 매일 같이 하곤 했다. 이윽고 그 증오와 저주는 바다가 아닌 나에게로, B가 떠난 길 위에 남겨진 B를 잊지 못하는 나에게로 전이되었다. 그 큰 슬픔을 감내해야만 하는 나를 견딜 수 없었다. B가 자신을 덮쳐오는 커다랗고 새까만 파도를 보았을 때도 이런 무력감을 느꼈을까. 나는 계속해서 이 절망을 버텨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준 이 빨간 스카프만은 절대 놓지 않을 거야. 죽을 때까지 이걸 보며 널 기억할 거야.


아니야, 그게 아니야. 나는 이제 너를 잊고 싶다고, 너를 완전히 지우고 싶어서 이 외딴 바닷가를 찾아왔다고, 이렇게 힘내어 너를 잊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왜 나는 아직도 그렇게 말하는 것을 주저하는 걸까. 너를 계속 기억하기에는 내가 너무 힘들다고, 왜 스스로 그렇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걸까, 나는. 




"그 스카프 말이야, "


오랜 침묵을 깨는 앤의 말에 나는 정신이 퍼뜩하고 다시 들었다. 내가 저 아이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찾는 것이 몇 번째더라. 


"네가 손에 꼭 쥐고 있는 그 빨갛고 예쁜 스카프 말이야. 나도 그런 스카프 같은 존재가 있었어. 지금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지만. 세상에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다들 이런저런 슬픔을 안고 살아가곤 하잖아? 나도 묻어두려고 노력했지만, 그게 잘 안 되더라고. 가슴에 묻고 평생 묵혀두고 있기에는 너무 미련하고 답답해서 차라리 그 모든 기억과 추억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면 어떨까 생각을 하고 있었어."


앤은 싱긋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난 여기를, 이 마을을 떠나려고 해. 다시 돌아오기 힘들 정도로 먼 곳으로 가려고 해. 나의 '바다'가 처음 시작된 곳, 이 아름다운 곳에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다가 이렇게 해변에 누워있는 너를 만났네.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서 토끼를 만난 것처럼 우연히 말이야."


앤은 앉은자리를 한번 툭 하고 털고 일어났다. 그녀가 일어난 자리에 하얀 모래가 오랜 찬장에 쌓여있던 먼지처럼 부옇게 일었다가 금세 가라앉았다. 나도 앤을 따라 일어나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그녀가 나에게 움직이지 못하는 마법을 부린 것처럼. 


"있잖아."  


앤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슬쩍 돌아보며 말을 건넸다. 


"내가 가고 나서 마음껏 울어. 언제까지고 눈물을 참는 건 정말 비겁한 거라고. 사람은 울만 할 때는 울고, 웃을만할 때는 웃으라고 만들어진 존재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우는 걸 다른 사람이 보면 그게 또 그렇게 싫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더라고. 그럴 때마다 나는 탁 트인 오두막 지붕이나 내 울음소리 따위는 산새들의 소리에 묻혀버릴 정도로 울창한 숲을 찾곤 했어.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고 아무도 내 표정을 읽을 수 없는 곳에서 실컷 울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거든. 이야기하고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이런 나도, 입을 꾹 다물고 울고 싶을 때가 있거든. 그럴 때는 마음을 터놓고 혼자 펑펑 울 수 있는 곳을 찾는 게 좋아." 


바닷바람에 펄럭이는 치맛자락을 잡으며, 앤은 멀리 바닷가의 입구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가 저기까지 걸어가고 나면, 이 바다에는 너 밖에 없는 셈이야.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너에게 꼭 이곳이 혼자 온 마음을 다해 울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 그렇게 예쁜 눈을 가지고 있는 너니까, 아마 실컷 울고 나면 전부 시원하게 떨쳐버릴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나면 너도 최고로 멋진 작별을 준비할 수 있을 걸."


앤은 한 발자국, 발을 다시 떼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너와 비슷한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때 이 바다를 소개해줘도 좋을 것 같아. 나도 언젠가 울고 싶어 져 훌쩍 이 바다를 찾을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직접 오는 것도 좋겠지만 누군가에게 이 바다에 대한 소식을 들으며 내 추억 속에 이 곳을 간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특히 너처럼 예쁜 눈을 가진 사람들이 이따금씩 혼자 이 곳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는 아마 더없이 기쁠지도 몰라. 언젠가 만날 너의 누군가에게, 네가 서 있는 그 좋은 자리는 꼭 앤-Ann이 아니라 'e'를 붙인 Anne-이 알려주었다 말해주는 걸 잊지 말고!"


앤은 검지 손가락으로 'e'자를 크게 그리며 싱긋 웃음을 짓고, 바닷가의 끄트머리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얀 모래사장 위에서 신기루처럼 나풀거리는 앤의 치맛자락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운동화나 조깅화를 신은 것도 아닌데, 어쩜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있을까. 만일 가다가 치마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했다면, 앤은 어떤 웃음을 지으며 나를 돌아보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피식, 웃음이 입가에서 새어 나왔다. 


그녀가 사라지고 나니 정말 이 바다에는 나 혼자만 남게 되었다. 앤이 떠나고 나서야 나는 아주 천천히 바닷가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 바닷가, 앤이 '화이트 샌즈'라고 부르던 이 바닷가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아니면 원래 '바다'란 이렇게 예쁘고 반짝거리는 존재였었나. 잘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손등에 놓여있던 빨간 스카프가 바람에 날려갈 뻔한 것을 가까스로 잡았다. 내가 그 날 이후 이 스카프를 이렇게 느슨하게 잡았던 적이 있었나. 스카프의 무게가 이토록 가볍게 느껴진 적이 있었나.  


조심스럽게 빨간 스카프를 들어 하얀 모래사장 위에 내려놓았다. 앤이 가장 좋아했다는 이 자리에, 내가 오랜 시간 누워있던 바로 이 자리에.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나의 몸에서 벗어난 적이 없던 스카프였다. 그와 함께 몇 계절을 보냈는지도 모를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지니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시간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을 다해 B에게 '이제 그만 안녕'이라고 작별의 인사를 건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서야, 눈물이 터져 나왔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그런 눈물이 터져 나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