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북인도, 특히 수도 뉴델리 근방에서는 여전히 대규모 농민 시위 및 봉기로 인해 교통 등이 자주 마비되고 있다. 지난 2월 중순에 시작해 여전히 진행 중인 이 인도 농민 시위로 인해 주인도 한국대사관 등에 안전 유의 공지까지 내려온 상황이다. 농민들이 수도 뉴델리로 집결하기 위해 움직이는 바람에 고속도로 등이 막히고 기차가 연착되는 등 여러 불편 사항이 있었고, 이에 대해 주의하라는 공지였다.
이번 농민 시위는 사실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아마 국제사회 뉴스를 챙겨보신 분이라면 인도나 네팔,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농부들이 이와 같은 시위를 꽤 자주 한다는 걸 접하셨을 거다. 인도는 농업 인구가 상당히 많고 전 국민의 밥상에 양파나 감자 등 작물이 올라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식료품 가격에 민감하다. 조금만 인플레이션이 생겨도 바로 다층적으로 드러나는데, 이는 1차 생산자인 농부들에겐 치명적이다. 농사가 너무 잘 되어 가격이 폭락하거나 농사가 너무 잘되지 않아 가격이 폭등하는 등 여러 가지가 모두 문제다. 때문에 여러 나라들에서는 자국의 농업물을 보호하고 상인 및 1차 생산자를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고, 인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보장 제도가 미흡한 점이 많고 즉각 대응이 어렵다. 현 시위는 근본적으로는 인도 의회에서 2020년에 통과된 '농장법'에 대한 항의에서 발발했다. 정부는 지원 및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으며 새로 개정된 농장법을 통해 농작물을 구매자에게 도소매 직거래 하는 것이 좀 더 편해지고 효율적인 체계로 돌아갈 것이라 말했으나 농민들은 이는 잘못된 것이라며 즉각 항의했다. 결국 이 농장법은 2021년에 폐지되는데, 이 파편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농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법의 허울을 쓴 여러 가지 규제들을 철폐하고자 농민들이 직접 움직인 것이다.
과거의 농민 시위 때에도 펀자브 지역의 농민들의 결집력이 가장 강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양상을 보였는데, 농민 연금 보장, 농부들의 농업 임금 보장, 모든 작물에 대해 최소 지원 가격의 보장, 그리고 농장법의 완전 철폐 및 시행 금지를 외치며 수만 명의 농민들이 수천 대의 트럭과 트렉터를 끌고 뉴델리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응해 경찰들은 바리케이트를 쳐서 농민들의 집결을 막았고, 당연하게도 주 사이의 경계 여러 개가 봉쇄되었다. 최루탄이 투하되고 강경 진압이 더해지는 등 여러 가지 유혈 사태가 일어났고, 사망자도 네댓 명 정도 발생했으며 부상자는 200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뉴델리 근방에 집결한 시위 구성원들은 펀잡, 하르야나, 우타프레데시 농부들로 대부분 구성되었다.
인도의 총선은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지만 올해 4-5월 사이에 치러지는 선거들이 쟁점일 것이기에 이 시위는 어느 때보다 좀 더 민감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특히 현 모디 총리의 정당과 정책을 언제나 강하게 비판하는 콩그레스(INC) 진영에서는 이 시위 자체를 지지하는 연설을 대대적으로 내보내는 등 정치 싸움으로 시위를 끌고 가기도 했다. 어쨌든 시위에 직접적으로 참가하거나 혹은 각자의 지역에서 거의 곡기를 끊다시피하고 강하게 항의하는 농민들은 정당 싸움에는 관심 없고 다음과 같은 요구사항을 들어줄 것을 강력하게 호소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움직여서 한국으로 따지면 "청와대로 가자!"는 식의 시위를 할 수 있는 것도 대단한 용기이자 결집력이라고 보는데, 노무사 친구에게 이에 대해 이야기하니 얼마 전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농작물의 최소 가격 보상 및 지원
흉작으로 인한 농부들의 부채 면제
농부들이 목숨을 잃었던 지난 2020-2021년의 시위 진압에 대한 보상
농부들을 위한 연금법 개정
부족 공동체의 권리 보호 및 근로자 지원법 강화
기업이 직접적으로 농업에 뛰어드는 것에 대한 규제, 사기 기업 규제(비료, 살충제 등을 저품질로 생산하는 기업)
(기타 등등...)
기후 이변으로 인해 작물의 재배 환경이 심각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기 위한 시위라고 이 시위를 정의할 수 있을까. 아무튼 최근까지 사망자가 계속 생기고 있고 이들 대부분은 펀잡주의 나이 많은 농부들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일촉즉발의 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특히 펀잡과 하리아나 주의 경계 지대의 대치가 심각한 상황이다. 시위자의 사망이 일어나면 시위대는 더 강경하게 반응하거나 대응할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총선과 맞물려 있어 모디 총리가 그저 무시할 수만은 없음을 시사하고 있기도 하다.
인도 인구가 14억이 넘었는데, 인도 현지에서 농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은 그중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농업 자체는 매우 중요한 주요 생계 수단이다. 하지만 토질 변화와 기후 변화로 인해 쌀과 같은 작물들이 황폐화되다시피했고, 모든 수를 써도 어쩔 도리 없는 농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허다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자살을 택한 농민들이 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고. 이에 대해 인도 경제학자 샤르마는 "인도 농민의 약 85% 이상이 시장 경제에 의존하고 있는데, 시장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니 농민들이 스스로 항의하고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뛰어나온 것이다. 이는 인도의 비극이며, 주 정부 및 중앙정부에서 어떻게든 신중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결국 집권 여당의 참패이자 선거의 결과로 드러날 수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농민은 인도 내에서 가장 지분이 많은 유권자다. 이들은 총선 결과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이 있다. 2024년의 인도 농민 봉기는 2020-2021년의 엄청난 규모의 농민 시위로는 아직 번지지 않았으나 집권 여당이든 제1야당이든 이를 무시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