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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와 '푸른 산호초'

by 강민영

2025년의 첫 영화로 <러브레터>를 봤다. 사실 <러브레터>가 세상에 나온 지 30주년이 되어 그것을 기념 삼아 재개봉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래, <러브레터>는 많은 시간 동안 반복해서 회자될 만한 작품이 맞지'라는 생각만 할 뿐 다시 이 영화를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실 그동안 <러브레터>는 여러 번 재개봉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러다 바로 어제인 12월 31일, 다른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들렀다 <러브레터>의 포스터를 보고 내 기억과 감정을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내가 어떤 식으로 이 영화를 기억하는지, 또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은 어떤 것인지를 말이다.


<러브레터>를 마지막으로 본 건 아마도 고등학교 재학 중이었거나 갓 대학에 들어갔을 때였을 거다. 극장에서 온전히 관람한 것이 그렇고, 그 뒤는 가끔 텔레비전에서 틀어줄 때가 있다면 몇 장면을 보다가 채널을 돌리곤 한 게 전부다. '어릴 때'라고 해도 좋을 그 시절 그 기억 속에 이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놓지 못해 여러 번 같은 자리를 맴돌고 슬퍼하는 한 여성과, 영원히 잊지 못하는 첫사랑에 관한 영화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것이 눈 내리는 설원에서 발화되는 외침이며, '잘 지내나요?(오겡끼데스까)'라는 전설적인 대사가 등장한 핵심 요소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건 결국 사랑을 말하는 영화구나, 라는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말이다.


앞자리가 두 번 바뀌어 다시 보게 된 <러브레터>는, 조금 다른 감정을 내게 가져다주었다. 아니 사실, 이 감정이 너무나 나의 기록과 달라 조금 당황했다. <러브레터>는 명백한 이별에 관한 이야기였다. 너무 사랑했던 사람을 잊지 못해 여러 날을 마음을 비우고 슬퍼했다가 결국에는 잊어가는 과정. 그가 떠난 설산을 바라보며 눈이 쌓인 평원에서 '잘 지내나요?'라는 말을 처절하게 뱉을 때, 실신하듯 우는 히로코를 바라보는 아키바의 말,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 말하는 그 장면을 보며 이것이 <러브레터>의 핵심이다 싶어 펑펑 눈물을 쏟았다.


몇 년이 더 지난 언젠가 다시 이 영화를 보면 또 다른 감정이 현재의 기록과 기억을 밀어내게 될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반복해서 보면 볼수록 생각할 지점들이 생긴다는 이유에서, <러브레터>는 정말로 명작이 맞다.


https://www.youtube.com/watch?v=yNNPP3-L_oA

그와 별개로 처음 <러브레터>를 볼 때는 잘 몰랐던 부분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볼 때만 해도 잘 몰랐던 마츠다 세이코의 존재를 이제는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러브레터> 속에서 후지이 이츠키(남)의 친구들이 흥얼거리는 그 노래가 마츠다의 명곡이자 영원한 고전인 '푸른 산호초'라는 걸 이제는 알지만 처음 이 영화를 볼 때만 해도 몰랐다. 쇼와돌 양대 산맥 중 하나인 메가 스타 마츠다 세이코의 노래를 모른 채, 그냥 의미 없이 흥얼거리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후지이 이츠키는 '푸른 산호초'를 왜 죽기 전에 흥얼거렸을까? 그가 '마츠다 세이코를 싫어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그 노래를 불렀다는 점은 반지를 들고 가서도 청혼하지 못하는, 좋아하면서 좋아한다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명백히 후지이 이츠키의 성격을 보여주는 지점이라 생각했다. 쇼와돌의 햇살캐릭터이자 그 시절 누구나 좋아했던 만인의 사랑 마츠다 세이코의 노래가 이 영화에 쓰인 이유야 감독이 밝히지 않아서 자세히 알 수 없다. 그 시절 누구나 흥얼거리는 대히트작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삽입된 곡일 수도 있겠지만, 하필이면 '푸른 산호초'라니.


이 노래의 가사를 생각하면서 <러브레터>를 다시 생각하면, 너무도 슬프다. 그래, 맞다. 이 영화는 이 서사를 통해 주조연들의 캐릭터들이 모두 성장을 한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도 명백히 너무도 슬프다. 잊기 위해, 잃기 위해 온몸을 내던지는 영화다. 가장 사랑했지만 이젠 돌아올 수 없는 대상을 어떻게든 보내주기 위해, 잊어버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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