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운 Jan 27. 2019

스투키 화분

친구가 집에서 기르는 기니피그 사진을 보내줬다. 갈색과 흰색이 섞인 수컷 한 마리를 키웠는데, 혼자 있는 게 외로워 보여 검은색 친구를 입양했다고 한다. 계단이 있는 이층 집에 먹이통과 화장실을 깨끗하게 만들어 놓은 걸 보니 꽤나 신경을 쓴 게 느껴졌다. 혼자 자취한 지 오래되어 외로운 마음에 입양했는데 이젠 집에 있어도 심심하지 않다고 했다. 사람을 따르는 동물은 아니지만, 그냥 둘이서 노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 했다.


나도 반려동물을 키워볼까 생각한 적이 있다. 외로움을 잘 느끼는 편은 아니지만, 문득 집안의 생명체가 나밖에 없다는 생각에 쓸쓸해질 때가 있다. 동물을 좋아해서 강아지나 고양이 입양을 고민했지만, 털 날리는 것을 싫어하고 매일 산책을 시켜주고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야 하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출근한 시간에 좁은 방 안에 갇혀 지내는 게 동물에게는 몹쓸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입양은 포기했다.


그래서 대안으로 생각한 게 식물이다. 공기정화도 될 겸 해서 작은 화분을 구입했다. 관리하기 쉽다는 행운목, 파키라를 키웠는데 오래가지 못했다. 술이 문제였다. 술을 마시면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게 되는데, 취한 정신에 식물도 목이 마른 것 같아 자꾸 물을 줬더니 과습으로 죽고 말았다. 나에게 오지 않았으면 잘 자라고 있을 생명을 내가 다 죽여놨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했다. 나는 식물을 키우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식물하나 키우기도 이리 힘든데 사람은 어찌 키우나 싶다. 갑자기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이 존경스러워진다.


1년 전쯤 인터넷 쇼핑을 하는데 작은 스투키 화분이 보였다. 내가 주문하려던 물건과 같이 배송받을 수 있어 충동적으로 샀다. 무엇보다 죽이기가 힘들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르기 쉬운 식물이라고 해서 골랐다. 가느다란 손가락 같은 게 삐죽삐죽 솟은 모습이 한눈에 예쁘지는 않았지만 자꾸 보다 보면 나름 귀여운 데가 있었다. 전처럼 쉽게 보내지는 않겠다는 마음으로 술 마신 날에는 절대 화분은 쳐다보지 않고 날짜를 정해 한 달에 한 번만 물을 흠뻑 줬다. 다행히 지금까지 건강히 잘 자라고 있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잘 돌보지 못한다. 일주일에 한 번 스투키의 존재를 확인할까 말까다. 신경 쓰지 않아도 잘 자라서 새싹까지 틔워주는 걸 보면 기특하면서도 미안하다. 아는 분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자식 키우는 것과 똑같다했다. 지나친 관심이 아이를 상하게 하고 적당히 안보는 척, 조금 무심해야 잘 자란다면서. 새순이 여러 개 올라와 화분이 좁아 보여 처음으로 분갈이를 해줬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고, 내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식물이지만 그래서 더 좋을 때가 있다. 나의 좁은 공간에서 묵묵히 자라며 위로가 되어주는 작은 스투키가 고맙고 예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