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인 작가의 “제법 안온한 날들”을 읽다가 ‘흐흐흐-’하고 쿰쿰하게 웃고 말았다. ‘발가락은 특별히 더 아프다’라는 제목의 꼭지였다. 작가는 의대생 시절 내성발톱을 심하게 앓아 수술을 받았는데 그때 받은 발가락 부분마취가 너무 아파 지금까지도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그 후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되어 온갖 종류의 부상자를 만나며 수술을 해왔지만, 유독 발가락에 주사를 놓을 때면 죄책감이 들고 환자에게 격려의 말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더한 아픔을 견뎌야 하는 환자도 있지만, 발가락 마취는 작가가 직접 경험해서 아는 것이기에 환자를 배려하며 말하게 된다고 했다. 삶이 흘러갈수록 고통을 경험하는 일이 많을 것이고 그만큼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며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으니 다양한 고통의 편린을 기꺼이 마주해도 좋겠다며 글은 마무리됐다.
글을 읽으며 쿰쿰한 웃음을 짓고 만 데는 내가 썼던 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남궁인 작가의 우아하면서 재치 있는 글솜씨와는 비교도 안 되지만 어쨌든 나도 그와 비슷한 글을 썼다. 작년 여름에 요로결석을 앓았다. 땀을 많이 흘리고 수분 섭취를 적게 하면 걸리는 병이라 하는데 나는 늘 비슷하게 땀을 흘리고 물을 마셔왔기 때문에 그 이유는 아닐거다. 어쩌면 건강염려증 때문에 몇 달 전부터 챙겨 먹은 칼슘 영양제 때문이었을까. 처음엔 왼쪽 아랫배를 기분 나쁘게 쿡쿡 쑤시는 듯하더니 나중에는 그 강도가 세져 참을 수 없이 아팠다.
하필 일요일 저녁이라 다음 날 아침에 병원을 가겠다고 아픈 배를 쥐어 싸고 동네 약국에서 진통제를 사 먹었는데도 효과가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더 아픈 것 같아 좁아터진 원룸 방을 계속 뱅뱅 돌며 걷다가 나중엔 기어 다니기까지 했다. 저녁 9시가 넘어서야 이건 내가 참을 수 있는 고통이 아님을 깨닫고 야간진료를 하는 병원을 찾아 택시를 타고 갔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소변으로 자연 배출될 크기가 아니라 결석에 충격을 가해 잘게 분쇄해서 자연 배출되도록 하는 체외충격파 쇄석술을 받았다. 다음 날 시술을 한 번 더 받고 일주일 지나 CT를 찍어보니 자연 배출된 것으로 판독되었다. 늦여름의 짧고 강렬한 고통은 그렇게 끝이 났다.
중학생 때 내성발톱으로 시술을 받은 적이 있어서 남궁인 작가의 글에 더 공감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이후로 절대로 엄지발톱을 바투 깎지 않는다.
평소 잘 아프지 않고 아픔에도 둔감해서 흔한 감기나 몸살 같은 병으로 회사를 결근하거나 업무 시간에 병원을 들락날락하는 동료를 보며 엄살을 부린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크게 아파보고 나서야 몸의 고통은 정신력 따위로 이겨낼 수 없다는 걸 알았고, 체질이 약해 자주 아픈 동료가 얼마나 괴로울지 그제야 짐작이나 해보게 되었다. 이런 경험과 글을 써야겠다는 의무감이 합쳐져 나의 요로결석 투병기를 썼다. 그 글의 끝은 이렇게 끝맺음됐다. ‘살아가며 이번처럼 가끔 아플 것이며, 아프고 나야만 이해의 지름이 넓어지는 경험을 할 것이다. 나는 좀 겁쟁이라 다가오는 아픔을 두 팔 벌려 껴안을 수는 없겠지만, 아픔이 내게 주는 것들을 생각할 수는 있다.’
그 글을 브런치엔가 블로그엔가 올렸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지워버렸다. 앞에는 요로결석으로 아팠던 일을 실컷 써놓고, 마지막 문단에서 갑자기 앞으로 다가올 고통을 마주하겠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게 매끄럽지 않고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글을 올리고 다음 날에 보니 ‘아픔이 내게 주는 것들을 생각할 수 있다’라는 마지막 문장도 느끼하고 별로였다. 그렇게 지워버린 글이 남궁인 작가의 책을 읽으며 다시 떠올랐다.
요로결석을 겪은 지 1년 반이 지났다. 그 이후로 주변에 물을 자주 마시라고(너무 많이 마시면 신장에 안 좋으니 적당히) 권한다. 인터넷에 요로결석을 겪은 사람이 올린 글을 보면 그때의 통증이 떠올라 매번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끝까지 정독하며, 그의 아픔에 공감하고 치유를 축하한다. 그간 난 부지런히 몸도 아팠지만 마음이 아픈 일이 더 많았다. 예전 같으면 ‘안쓰럽다’고 쉽게 한마디 하며 값싼 동정을 흘리거나, ‘왜 저러고 살지’하는 매정한 시선을 보낼 일들에 마음이 쓰인다.
그렇다고 대단한 인격자가 된 건 절대로 아니다. 유명 작가의 글을 읽으며 질투하고, 비슷한 경험을 하고도 잘 쓰지 못하는 나를 한심케 여긴다. 책에 나를 ‘밴댕이 소갈딱지’라고 쓴 걸 보고 내게 ‘밴댕이’라고 놀리는 친구한테 진심으로 화가 치미는 ‘밴댕이 소갈딱지’가 맞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아픔이 내게 주는 것들을 생각할 수는 있다. 여전히 나는 겁쟁이라 다가오는 아픔을 두 팔 벌려 껴안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