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기 위해, 아니 먹기 위해 음악 한다!
'음식'하면 누가 떠오르세요? 조선 최고의 요리사 장금이? 아니면 중식의 달인 이연복 셰프?
저는 요리연구가 백종원 대표가 생각나는데요. 백종원 대표는 '요리하는 CEO'라 불릴 만큼 요리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분으로 잘 알려져 있죠. 장교 복무 시절 부대 식사가 맘에 안 들어 직접 만들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내가 해도 이것보단 잘하겠다!'는 판단 하나로 요리 연습에 매진하고, 그 결과 지금의 요리연구가 백종원이 탄생한 것이죠. 세상 모든 음식을 먹기 위해 여행 떠나고 싶다는 백종원 대표처럼, 실제로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일도 그만두고 떠난 자가 있습니다.
오늘 P가 여러분께 소개해드릴 음악가, 조아키노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입니다.
로시니는 엄청난 미식가였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음악을 한다', '오페라로 번 돈을 음식에 다 쓴다', '미식 인생을 하기 위해 음악을 접었다' 등 다양한 소문이 그를 쫓아다녔죠. 그뿐인가요, 그는 미식가인 동시에 엄청난 대식가였습니다. 말 그대로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었죠. 심지어 로시니는 직접!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투르느도 로시니(Tounedos Rossini)입니다. 투르느도(Tournedos)는 소 안심(tenderloin) 스테이크인데요. 소고기 안심을 2cm 두께로 자른 후 주방용 실로 묶어 모양을 잡고 익히는 방식이죠. 그는 특히 푸아그라와 트러플(송로버섯)을 아낌없이 곁들여 먹는 것을 즐겨했습니다. 트러플이 인생 식재료였던 그에게는 이상한 일도 아니었죠. 이 요리의 서빙을 담당했던 메트르 도텔의 눈에도 이 요리는 완벽 그 자체였다고 하는데요. 너무 완벽해서 손님들의 등 뒤에서(dans le dos) 서빙했다고 합니다.
아! 로시니가 트러플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말씀드려야겠네요. '남자는 태어나서 3번만 운다'는 말, 모두 알고 계시죠? 로시니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그도 태어나서 3번 울었다는 루머가 있습니다. (물론 소문에 의하면 말이죠)
첫째, 엉망이 되어버린 <세비야의 이발사> 초연 후
둘째, 파가니니의 연주를 들었을 때
셋째, 뱃놀이에 싸 간 트러플 가득 채운 칠면조 요리가 강물에 풍덩 빠졌을 때
로시니를 다룬 전기 <로시니의 생애>는 애초에 거짓이 너무 많아 이런 우스갯소리를 100% 다 믿을 순 없지만, 트러플을 향한 로시니의 사랑만큼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그는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지 못해 주방으로 들어가 요리 과정을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옆면을 좀 더 구워보시게', '버터향이 나야 하는데', '트러플 좀 많이 올리시오' 결국 주방장에게 쓴소리를 듣고 쫓겨난 로시니를 상상하니 음식을 향한 그의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되네요.
<세비야의 이발사>, <윌리엄 텔>을 비롯하여 그가 작곡한 오페라 작품들이 연달아 홈런을 쳤습니다. 하지만 벌만큼 벌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소문처럼 음식이 너무 좋아서일까요? 그는 오페라 <윌리엄 텔> 이후로 작품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실제로 작품을 만들어달라는 고액의 제안에도 그는 '맘에 드는 성악가가 없어서', '더 이상 명성을 얻을 필요가 없어서' 등의 이유를 대며 정중히 거절했죠. 하지만 그가 작품 활동을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미식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란 이야기가 가장 많습니다.
작품 활동을 중단하기 전, 음악에 미식을 가미하는 독특한 행보는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의 '미식' 철학이 작품 속에 녹아져 있다는 뜻이죠. 로시니의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에는 극 중 여주인공인 이사벨라가 타데오와 린도로(노예)와 함께 '파파타치'라는 모임을 고안해 무스타파(알제리의 고관)를 속이기로 하죠. 파파타치 모임은 아주 특이한 룰이 있습니다. '마음껏 먹고 마시되 무슨 일이 있어도 묵묵히 먹기만 할 것'이 조건인데요. 실제로 로시니는 파파타치 모임처럼 조용히 먹기만 하는 미식 모임을 열었다고 합니다.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말고도 <결혼 어음>, <랭스 여행>, <바빌로니아의 키로스>에도 그의 미식학적 향연들이 발견됩니다.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중 무스타파, 린도로, 타데오의 3중창 'Pappataci! Che mai sento? (파파타치! 무슨 뜻이야?)'를 들려드릴게요.
작품 활동을 중단한 후에도 그는 간간이 작곡을 했습니다. 오페라 작곡가로 유명세를 떨친 로시니이지만, 피아노 모음집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바로 그의 피아노 모음집 <노년의 과오(Péchés de vieillesse)>입니다.
그의 생애 말년에 작곡된 <노년의 과오>는 총 14권의 피아노 모음집입니다. 피아노 독주/소규모 앙상블로 반주하도록 한 작품인데요. 이 모음집의 가장 큰 포인트는 바로 제목입니다. 프랑스 요리가 좋아서 프랑스에 정착한 그는 아주 귀여운 제목을 피아노 작품에 포함했죠. 가령 전채요리에서 이름을 차용한 '오흐 되브흐(Hors d'oeuvre)', '네 개의 말린 과일 디저트', '작은 독일 케이크'처럼요. 희곡 오페라를 다작한 로시니의 가장 큰 장점인 '웃음'이 모음집 제목을 통해서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특히 '오흐 되브흐(Hors d'oeuvre)'는 <무>, <앤초비>, <피클>, <버터>가 있고 '네 개의 말린 과일 디저트'는 <무화과>, <건포도>, <아몬드>, <헤이즐넛>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로시니에게는 미식이 음악처럼 또 하나의 예술적 대상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오흐 되브흐(Hors d'oeuvre) - 앤초비(II. Les Anchois)
네 개의 말린 과일 디저트(Quatre Mendiants) - 아몬드(II. Les Amandes)
글쓴이 P의 포트폴리오
이메일 wheniwasyour@naver.com
참고 | <예술의 사생활: 비참과 우아> 노승림.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정은주.
자료 | Youtube,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