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 헤어샵 아이스크림샵

전봇대의 친구

by 단뎅

나는 단순히 고객들의 근심과 걱정을 예전처럼 들어주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에게 말만 하면 속이 시원하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입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가게를 연 지 한두 달만에 내 미용실은 '고민 상담을 제일 잘해주는 곳'으로 불렸다.


내가 그렇게 사람 얘기를 잘 들어줬던가?

잘 모르겠지만 장사가 잘되니 그저 좋았다.


그러던 어느날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손님들이 걱정을 쏟아낼때마다 매장 전체의 불빛이 잠깐 깜빡였다.

그리고 불이 다시 켜지면, 손님들은 꼭 한결같이 말했다.

이상하리만치 속이 다 풀렸어요


처음엔 전기 배선 문제인가 싶었지만, 매출이 늘고 있었으니 굳이 고치려 들지도 않았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러다 그 모든 일의 실마리를 알게 된 날이 있었다.

그날은 유난히 늦게까지 마감을 하던 밤이었다.

청소를 끝내고 집에 가려던 참에 건너편 무인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렀다.

그곳에서 나는 이상한 친구를 만났다.


냉동고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입에 잔뜩 묻힌 채 아주 맛있게 먹던 인형 같은 무언가가 내 시선을 느끼고는 동그란 눈을 크게 뜬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움직이는 걸 이미 봐버렸는데 마치 못 본 척이라도 하라는 듯 인형 흉내를 내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났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나는 그 친구의 뜻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그냥 못 본 척, 마음에 드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골라 계산을 마치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그 친구가 전봇대 앞에서 작은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전봇대에 문이 있었다니.


그제야 깨달았다.

매장 불빛이 깜빡일 때마다 이상한 일을 벌이는 존재가 있었다는 걸. 그리고 그 때부터 모든 게 설명되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도 손님들이 걱정을 쏟아낼 때 마다 매장불빛과 전봇대의 등이 동시에 깜빡였다.

그건 이제 우연이 아니라 신호였다.


어느날, 또다시 늦게까지 마감을 하던 밤이었다.

문을 닫고 나오던 나는 문득 건너편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멈춰 섰다.

그곳을 바라보자 전봇대 속 작은 친구가 떠올랐다. 그날 그 친구가 먹고 있던 바로 그 아이스크림이 생각나 나는 조용히 냉동고 문을 열고 같은 맛의 아이스크림을 집어 계산했다.

그리고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전봇대 앞으로 향했다.

문틈을 살짝 열자 수많은 색의 전선이 얽혀 있는 그 안쪽에 작은 친구가 앉아있었다.

불빛에 비친 그 모습은 여전히 낯설고도 신비했다.

눈이 마주치자 그 친구는 또다시 인형인 척 굳어버렸다.

나는 그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마움의 뜻으로 아이스크림을 조심스럽게 문앞에두고 살며시 닫았다.


그 순간 전봇대 안에서 희미한 불빛이 일렁였다.

마치 고마워요 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 날이후로도 어김없이 손님들이 걱정을 쏟아내는 날에는 불빛이 깜빡였다.

마치 누군가의 걱정이 또 한번 사라졌다는 신호처럼.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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