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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Apr 17. 2024

한계 앞에서 한개 더

글쓰기가 좋다. 그게 나의 소소한 일상이든, 블로그에 여행일기를 쓰는 일이든, 맛있는 밥을 먹고 리뷰를 쓰는 일이든. 


우연한 기회에 한 카페에서 에세이 연재를 시작했고, 초고가 완성되었다. 사실 초고는 완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하다. 1차, 2차, 3차 피드백을 받아서 글을 수정했고 4차 피드백을 받는 자리에서 다시 초고 작성을 권유받았다. 


피드백을 받고 글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점점 길을 잃었다. 나의 경험에 기반한 에세이인지라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의 감정은 점점 옅어지고 때로는 들추기 싫어 잠시 묻어놨던 기억들을 마구 파헤쳐 끄집어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 과정을 거쳐서 작성한 글들이 한 문장 한 문장 시험대에 올라가 난도질당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지? 처음 마음을 잊은 채 피드백에 휘둘리며 글을 수정하다 보니 나만의 색을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한 권의 책 안에 세 개의 카테고리가 나뉘어 있어 하나로 묶이기 어렵다고 했다. 그중 하나의 카테고리를 끄집어내 잘게 잘게 에피소드를 늘이고 하나의 주제로 한 권의 책을 엮어내기로 했다. 그런데 정말 내 글로 책을 내줄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가능성이 있는 건가. 이걸 다듬고 다듬는다고 베스트셀러 작가의 글처럼 한 방에 많이 팔리는 책이 될 것 같지도 않고. 사실 베스트셀러 작가의 글을 읽어도 어휘력이 뛰어나다거나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이 되는 에세이는 드물었다. 그냥 내 마음대로 한 권 써서 일단 독립출판으로라도 내고 싶은 마음이 크기도 했다. 


그런 복잡한 생각이 들면서 글쓰기를 중단했다. 

아, 아예 중단한 건 아니다. 에세이를 쓰는 대신 네이버 블로그에 매일 포스팅은 했다.  


원래 일기처럼 쓰던 나의 블로그에는 400개가 넘는 영화 리뷰, 200개가 넘는 도서 리뷰, 900개가 넘는 일상의 기록들이 있었다. 보고 쓰고, 읽고 쓰는 게 좋았던 나여서 매일의 기록을 남겼다. 블로그 지수가 뭔지 방문자수가 뭔지 관심도 없던 내가 재작년 SNS 마케터라는 일을 시작하면서 내 블로그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4~5명이 한 팀이 되어 신생 기업이 원하는 홍보자료를 만들어주는 일이었는데 그 홍보자료(카드뉴스, 동영상 등)를 기업의 채널이 아닌 SNS 마케터 개인 채널에 올리라고 했다. 열심히 만든 자료를 많은 사람들이 봐줬으면 싶었고, 그러려면 나의 채널이 영향력이 있어야 했다. 그 당시 나의 블로그 1일 방문자수는 50명도 채 되지 않았다. 기업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방문자수를 늘리는 방법을 고심하다 체험단을 시작했다. 맛집에 가서 음식을 먹거나, 여행지를 체험한 후 업체에서 전달해 주는 키워드를 받아 포스팅을 작성해서 올리니 방문자수가 100, 200, 300 금방 늘어났다. 2년 넘게 꾸준히 일기처럼 쓰던 내 글을 봐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여행 관련 포스팅은 참 많이도 봐줬다. (검색자들이 원하는 정보 = 키워드라는 걸 신경 써서 작성했어야 했는데 영화 리뷰, 도서 리뷰에는 그런 게 없었던 거다.) 기업 홍보자료도 덩달아 조회수가 높아졌다. 

그 당시 들었던 블로그 강의에서 블로그 카테고리를 하나로 정하고 주제와 관련 없는 글은 비공개로 돌리라는 조언을 받았다. 영화, 도서, 일상 글을 비공개로 돌리고 국내여행으로 주제를 정한 뒤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하루 1,300여 명이 들어오는 블로그지수 최적 3+ 국내여행 블로그가 되었다. 

그런데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인플루언서라는 게 되어야 영향력도 있고 포스팅 상위노출도 더 잘되고 광고도 많이 붙고 원고료도 많이 받을 수 있단다. 돈은 둘째치고 내가 열심히 작성한 글을 많은 사람이 봐주었으면 싶어 돈을 내고 유료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어서 1일 1 포스팅을 시작했다. 매일 하나씩 작성하는 포스팅도 쉽지 않은데 인플루언서가 되려면 1일 2포, 3포씩 해야 한단다. 나는 조금 더 정성을 다해 글을 쓰고 싶은데 기계적으로라도 숫자를 늘리는 게 좋단다. 다시 현타가 왔다. 


에세이 쓰기랑 뭐가 다르지. 잠시 멈추고 내가 원하는 방향을 생각해 본다. 

내가 쓰려는 방향을 잃지 않은 채 끝까지 글을 써서 책을 내고, 나만의 퍼스널브랜딩을 살리는 국내여행 인플루언서가 되는 방법을. 느리지만 휘둘리지 않고 결국은 내가 하려고 했던 일들을 하나씩 해가면 좋겠다. 다시 또 시간과 노력이구나. 멈추지 않아야 하는 거구나. 


작가가 되어도 모두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먹고살기 힘들다는 푸념 섞인 작가들의 투정을 들으면서도 일단 오롯이 내 이야기가 꽉꽉 들어찬 나만의 책이라도 한 권 내보자 싶다.  

인플루언서가 되어도 키워드 챌린지에 인플루언서 순위에 목매는 사람들을 보며 인플루언서가 돼서 좋은 게 대체 뭐지 싶으면서도 저 자리에 가서 직접 느껴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싶다. 

일단 내고 나서, 일단 되고 나서 생각해보자 싶은데 자꾸 한계가 느껴진다. 


멈추고 싶은데 기계적으로라도 써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건 강박일까 습관일까. 

이 고비를 넘어서면 더 멀리까지 이어진 길이 보이겠지 싶다. 

한계 앞에서 한 개만 더. 

포스팅 작성하러, 글 쓰러 또 가보자. 에효. 




제주단비의 삶은 여행 블로그인데 궁금하신 분들은 와서 보시고 이웃 추가해 주세요 :) 

https://blog.naver.com/eksql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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