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지는 별빛

외할아버지 요양원 가는 날 _ 1

by 최단비

①외할아버지 요양원 가는 날


"부영 아파트 부탁드립니다~"


오랜만에 택시를 타고 외가댁을 다녀왔다. 이번 주 금요일이면 외할아버지가 강릉 요양병원으로 가신단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원래 도계에 있는 시골집에서 살고 계셨는데, 5~6년 전부터 할머니의 건강이 많이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동해에 있는 작은 아파트로 이사 오셨다. 다행히도 삼촌들과 외가 식구들이 자주 할머니를 찾아뵙고 있고, 엄마도 종종 반찬을 만들어서 방문하고 있기에 크게 적적하시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요양보호사 분도 생각보다 자주 방문해 주고 계셔서 나로서는 크게 걱정이 되는 부분은 전혀 없었다. 다만 몇 년 전부터 할아버지가 치매 증상을 보이시면서 오줌도 지리고, 뭔가 까먹기도 하고, 여러 가지 말썽(?)을 피우기 시작하면서 할머니가 더 힘들어지셨던 모양이다. 하는 수없이 외가 식구들은 할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시기로 결정했다.


할아버지가 요양병원으로 가시면 지금보다 훨씬 더 찾아뵙는 게 쉽지 않을 거 같단 생각이 들자 이번 주는 꼬옥(!)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 뵈러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옛날처럼 그리 먼 곳에 사시는 것도 아닌데, 항상 할머니 할아버지 찾아뵙는 것은 뒷전으로 미루고 미루었다가 나중에 가곤 했었다. 조금만 더 부지런하면 되는 건데 그게 참 쉽게 되지를 않았다.




저 멀리서 나를 배웅해 주시는 귀여운 외할머니 ^^


최근 아름다운 아파트에서 부영 아파트로 한 번 더 이사를 마친 할머니네 집은 이젠 어느 정도 살림이 안정화되어 있었다. 싱크대도 이사 온 날보다 훨씬 더 깨끗해져 있었고, 집도 깔끔하게 청소가 되어 있어서 바닥이 반질반질했다. 다만 현관문을 열자마자 바로 느껴지는 은은한 지린내와 쉰내에 본능적으로 들숨이 조심스러워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그 냄새를 까먹게 되었다. 이렇게 청소가 잘 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퀴퀴한 냄새가 나는데, 평소에 할머니 혼자서 할아버지를 돌보며 여러 가지 뒷일을 처리하다 보면 냄새가 훨씬 더 심하겠구나 싶었다.


나는 곧장 잠바를 벗어두고 할아버지 방으로 갔다. 역시나 오늘도 누워 계신다. 점점 치매가 심해지면서 잠도 많아지시는 걸까. 늘 힘 없이 누워계신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 한구석이 착 가라앉는다. 할아버지는 내 인기척을 들으시곤 눈을 뜨셨는데, 분명 눈을 뜨고 있었지만 저 멀리 밤 하늘에서 아주 희미하게 반짝거리는 별빛처럼 눈을 꼼빡꼼빡 거리셨다. 초점을 잃은 희미한 작은 빛. 눈동자가 까만 것도 아니고 흐리고 약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중에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가게 된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눈을 쳐다보면서 할아버지와는 다르게 아주 크고 왕왕 거리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 몸저 누우면 저렇게 눈빛이 작고 희미해지는 걸까. 할아버지는 아주 천천히 본인의 생명력을 잃어 가고 계셨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멀리서 비치는 별빛 같은 할아버지의 눈을 마주하면서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이야기라기보다는 내가 이런저런 안부를 물으면 할아버지는 그냥 생각나는 데로 말씀하시다가, 곧 열띤 토론 못지않게 힘껏 본인의 인생 이야기를 펼쳐 놓으시곤 했다. 그 말씀의 주제는 할아버지를 만나러 갈 때마다 조금씩 바뀌곤 했지만, 결국엔 할아버지 본인의 인생 이야기였다.


작년 즈음인가? 그때 할아버지는 삼십 대 젊은 시절을 얘기해 주셨는데, 한참 어린 자식들이 배를 굶고 힘들었던 와중에 일을 하고도 쌀을 받지 못해서 억울한 마음에 며칠을 앓아눕다가, 다시 일을 알아보러 다니셨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거의 60년이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그때의 마음의 상처가 가시지 않으셨는지, 힘 없이 누워서 얘기를 하시다가도 베개에서 머리를 벌떡벌떡 일으키셨다. 나는 '아유~ 썩을 넘~ 못된 넘~ 18놈~' 하면서 할아버지를 진정시키고 다시 눕혔다. 그때 거의 30분가량을 할아버지가 쉬지 않고 말씀을 하셨는데, 어눌한 말투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과 그 썩을 놈에 대한 묘사를 모두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할아버지의 억울함이 와닿아서 나도 같이 욕을 해댔다.


그렇게 감정의 응어리를 한참 내뱉던 우리 외할아버지가 오늘은 40~50대의 호시절을 이야기해 주셨다.


"내 그때는 말이 래이, 인생에서 제일 바쁘고 행복했데이~

내가 일을 마아 이르케 하니, 집안이 마아 이러케 이르켜 지는기래이~

그때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 갔는기도 모르고 살았데이~"


"할아버지 고생 많으셨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할아버지의 손등과 팔을 만지작거리다가 쓰다듬어 주는 것뿐이었다. 사실 침대 옆에 앉아서 계속 반복되는 할아버지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좀 버거울 때도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를 손으로 쓰담쓰담 하면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집중이 더 잘 되는 거 같기도 하고, 생생하게 와닿는 거 같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뜩 할아버지의 손과 발이 생각보다 차갑다는 걸 알았다. 노인이 되면 혈액순환이 잘 안된다고들 하는데.. 정말 그런 거였구나. 이렇게 차갑다니.


할아버지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가 손으로 할아버지 팔을 스윽스윽 문지르다 보면, 내 온기가 묻으면서 할아버지도 따뜻해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나는 할아버지의 널찍한 이마와 머리도 쓰다듬고 있었다. 짤막한 흰 머리털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다. 할아버지도 워낙 힘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 드리는 것에 대해서 어떠한 저항도 없으셨다. 20년 전의 어린 나 같으면 꿈도 못 꿨을 행동이었다. (어른 머리를 만지다니..) 어쩌면 이렇게 할아버지를 접촉할 수 있는 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나의 온기를 좀 더 실어드리고 싶었던 거 같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할아버지의 고생했던 젊은 시절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던 거 같다. 머릿속에 그려본 그때의 할아버지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과 비슷해 보이기도 했고.


한동안 흐린 별빛을 허공에 풀어놓으며 말이 없던 할아버지가 입을 여셨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그렇데이~

한 칠십 다서 여덜에 죽어야 하는데, 그러질 모해써.."


"하르바이, 젊었을 때 그리 오래 살 줄 알았소?"


"생각도 못 했데 이.."


"그게 사람 마음대로 되는 기 아니래요."


"그래 맞다.."


계속 할아버지와 얘기하다 보니 나도 강원도 사투리를 섞어 쓰게 되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왠지 할아버지와 의사소통이 더 잘 되는 거 같기도 했고, 할아버지가 내 말을 더 잘 알아들으시는 것 같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살던 시대에는 워낙 사람들이 고생도 많이 하고, 몸을 많이 쓴 까닭에 본인이 이렇게 오랫동안 살게 될 줄을 정말 모르셨을 거 같다. 지금은 100세 시대다 120세 시대다 라고들 하지만, 뭐 누가 알겠는가? 세상을 살면서 어떤 변수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오늘 할아버지를 만나 뵙고 오면서 결국엔 매일 똑같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나의 일상에 답이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나아가는 방향을 스스로 알고, 소중하고 충만하게 일상을 산다면 그 반복 자체가 은혜로운 기회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십년전에 그린 외할아버지의 초상화. 갑자기 생각이 나서 스케치북을 뒤져보았다.


할아버지를 방에서 쉬게 하고 거실로 나오니 할머니가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니 저녁은 먹었나?"


"점심을 늦게 먹어서 아직 안 먹었어요. 내가 있다가 알아서 차려 먹을게 할머니~"


나는 할머니와 함께 따뜻한 온돌 침대에 나란히 앉아서 텔레비전을 봤다. 저번엔 6시 내 고향에서 나이 든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매운탕을 끓이는 장면이 나왔는데, 뭐 저렇게 매련 없이(형편 없이) 끓이냐며 못마땅해 하셨다.


‘저래 하면 우따 쓰나.. 에유 18.. 할 줄도 모르는 기, 걍 다 같다 버러랴~'.


오늘은 다행히도 할머니의 눈에 거슬리는 장면들이 나오지 않아서 모처럼 평화롭게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었다.


"아 맞다, 할머니 내가 홍시 가지고 왔어!"


"이거 어데서 났나?"


"한살림"


"환성구울?"


"아니, 거기 말고. ㅎ 우리 집 근처에 있는 가게에서 샀어요~"


"아이고, 이런 걸 왜 돈을 주고 사 오나.."


며칠 전 장을 보면서 홍시용 대봉감을 한 상자 샀다. 한두 개를 빼놓고는 아직 다 익지 않은 덕분에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익혀 먹을 수 있었다. 며칠 전 상자 안에서 처음으로 잘 익은 빨간 대봉감 하나를 맛보았는데, 대형 마트에서 사 먹던 연시보다 훨씬 더 깊은 단 맛이 났다. 냉장고에 두지 않고 집안 곳곳에 대봉감을 인테리어 삼아 장식하고는 말랑하게 익으면 하나씩 야무지게 먹다가, 오늘 외할머니 생각이 나서 선물 삼아 몇 개 가져왔다.


예전에 도계 외갓집에는 큰 감나무가 있었다. 매년 가을이면 그 감나무에서 큰 감들이 주렁주렁 열렸고, 덕분에 나는 외갓집에 갈 때마다 크고 실한 홍시를 실 컷 먹을 수 있었다. 기껏 홍시를 맛나게 먹고는 똥이 잘 나오지 않아서 징징 되던 기억도 났다. 그렇게 한두 번 징징거리거나 울면 외할머니가 찰지고 무섭게 욕을 하며 혼을 내셨다. 외할머니는 입도 거칠고 엄하셨지만 곧 그것이 그녀의 마스코트가 되어 삼촌들에게 종종 ‘땡삐’라고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한 번은 외할머니 욕하는 걸 혼자 듣고 있기가 너무 아까워서 녹음도 해 놓고, 비디오도 찍어 두었는데, 역시 그것보다는 직접 생생한 현장에서 들어야 예상치 못한 폭소를 일으키며 욕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거 같다. (할머니는 재치 있는 애드리브 전문가다^^) 이제는 나도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할머니가 예전보다 힘도 없으시고 덜 무서워져서 그런 건지, 종종 할머니가 찰진 욕을 하는 걸 듣고 있으면 웃기고 귀여워서 저절로 웃음이 삐져나온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뒤 그 찰진 화살(?)이 나를 향해 돌아올 줄 누가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