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졸업을 했다. 학위증도 곧 우편으로 받을 예정이다.
넷플릭스에서 좋아하던 김보통 작가의 D.P를 봤다. 스트레스 받아가며 하루 만에 끝까지 다 봤다.
대학 1학년 때 진지하게 자퇴를 고민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에서 매일 울었고 나를 괴롭히는 선배들이 무서워서 학교 근처에도 발을 들이기 어려웠다. 수업에 나가는 것도 무서워서 교수님께 온갖 핑계를 대며 빠지곤 했다. 마음을 함께해 준 소중한 동기들이 있었기에 졸업까지 버틸 수 있었다. (3학년 이후로는 분위기가 바뀌어서 오히려 나를 괴롭히던 선배들이 갑자기 내게 잘 대해주는 기현상을 경험했다. 잘못한 건 아나보다. 혹시 모를 미래에 대중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한 이미지 세탁이었을까. 전자든 후자든 부정적인 방향은 아니라고 본다.)
신입생 과대나 부과대는 보통 연기/뮤지컬전공 학생 중 현역인 학생들을 시킨다. 그 이유는 대부분이 빡센 예술고등학교 생활을 거쳐왔고, 연기전공 학생들이 사람들을 더 잘 이끌 거라는 스테레오 타입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현역이어야 하는 이유는 당연히 부리기 쉬운 학생들이어야 할 테고.
우리 동기 중 이에 해당되는 나를 포함해서 단 4명뿐이었는데, 이 중 아무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어서 가위바위보를 했다. 슬프게도 나는 가위바위보에 소질이 없었고 그렇게 나는 1학년 첫 시작을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하게 되었다.
초반부터 다이나믹한 학교생활이 시작되었다. 누군가 무슨 일이 있었는데 하고 묻는다면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줄 수는 있지만 글로 나열하기엔 너무 많아 쓸 수가 없다. 요약하자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매일 새롭게 일어났기에 매일 어디선가 뛰어내리고 싶었다는 정도.
여기저기 불려가고 쌍욕을 먹으며 한 달을 견뎠지만 결국 신입생 OT를 다녀와서 부과대를 그만두었(퇴출당했)다. OT 바로 뒤에 비공식 개강 총회라는 몇십 년 동안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어 온 구식 신고식 일정이 잡혀 있었는데 나는 그 무시무시한 행사를 도저히 학년 대표의 신분으로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물론 전체 필참이라 가서 욕을 또 바가지로 먹긴 했다. 무릎 꿇고 손들고 있거나 엎드려뻗쳐를 했다. 누군가는 맞았다. 무려 16년도에... 쿨럭. 그리고 다음 해 어떤 용기 있는 자가 경찰에 알림으로써 그 행사는 사라졌다고 한다.
날 괴롭히던 선배들은 늘 화가 나 보였다. 위에서 내려오는 압박감으로 중간에 껴서 나를 혼내던 선배도 있었고, 여태까지 그래왔으니까 혹은 나도 당했으니까 하는 모종의 복수심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이유 없이 나를 혼내던 선배도 있었다. 드물게 그냥 본인의 재미로 괴롭히던 선배도 있었다.
D.P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그렇게 후임을 괴롭혔던 선임이 나중에 똑같이 되돌려 받고선 그때 왜 그랬냐는 물음에 대답했던 말.
"그땐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
상명하복/군기 문화라는 게 참 그렇다. 그러지 않을 것 같던 사람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고 분위기에 휩쓸려서 다들 자기 생각을 잃기도 하고. 내재되어 있는 개개인의 폭력성과 지배 심리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분명 이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아무도 용기 내어 섣불리 말하지 못하고 오히려 잘 적응하는 모습들이 무섭고도 답답했다.
나는 선배가 되면 저러지 말아야지 매일 다짐하며 2학년이 되었다. 후배들을 지키고 시스템을 바꾸자는 헛된 야망에 사로잡혀 등교하던 어느 날, 한 선배가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큰 소리로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내게 혼을 냈다. 그날 나는 공개 인스타그램 계정에 쌓이고 쌓여 그동안 말하지 못한 학교 내 부조리를 짧게 고발했다.
그리고 그날은 평생 중 가장 많은 전화를 받은 날이 되었다. 학생회장 부회장부터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고기수 선배들부터 교수님들까지 그날 전화가 불통이 되어 엄청난 욕을 먹었더랬다. 원래도 부과대하다 적응 못하고 쫓겨난 애.. '제가 생각했던 예술대학은 이런 곳이 아니었어요' 발언을 했던 애.. 등으로 평소 선배들의 눈엣가시였던 나는 그 이후로 반동분자로 확실히 낙인찍히게 되었다. (오히려 그 인사 선배와는 개인적으로 잘 풀었다.)
문제는 학교에 대한 어떠한 고발이라도 외부에 제보되면 다 내가 했을거다 라는 소문이 나돌았다는 것이다. 그때는 많이 힘들었고 덕분에 성격도 가치관도 많이 바뀌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라도 나라고 넘겨짚을 법 하긴 하다. 총대 매고 다른 용기들을 지켜줬다 생각해버리니 오히려 다행이지 싶다.
그 와중에도 큰 기복 없이 1학년 생활을 한 동기들도 꽤 있었다. 물론 겪은 일은 다 비슷비슷했지만 딱히 튀지 않고 그냥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해야지 하고 무리에 잘 스며든 사람들. 적당히 맞춰주고 적당히 빠지는. 이제서야 그렇게 잘 넘기는 사람도 많이 있었구나 알게 되었다. 그런 그들이 보기에 가만히 못 있고 힘들어했던 내가 더 유별나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한때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 그토록 힘들었나 그렇게 자책을 했었더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양한 곳에서 일하다 보니 똥군기가 없는 집단에서의 나는 사람들과 꽤나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자책은 그만두었다. 물론 애초에 사회성이 뛰어난 편은 아니긴 하다. 숫기도 없고 혼자 있는 게 익숙하기도 하고 아직도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나도 모르게 무뚝뚝해지며 로봇같이 굴기도 한다.
개인주의라며 할 일만 하고 겉도는 사람이 내가 있고자 하는 업계에서는 딱히 반가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 이유도 잘 알고 있고 그렇기에 유연함을 갖추려 애쓰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다! 마인드로 개인을 침범하고 그에 따르지 않는 이에게 벌을 주는 악습은 이젠 정말 없어져야지.
드라마 D.P든 지나간 학교생활이든 이제는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며 넘기지만 우리 모두 실제로는 더하면 더했다는 사실을 알기에 남 일 보듯 볼 수는 없다. 지금도 많은 예비군들이 ptsd로 고생한다고 한다. D.P에 나오는 군대 가혹행위만큼은 아니었지만 내게도 아직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조여오는 경험이 존재한다.
인스타그램 사건 이후로 학교에 관한 글은 4년 만에 처음으로 나 외의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것 같다.
이런다고 졸업한 나를 다시 잡아오는 연영 D.P는 없겠지...?
잡을테면 잡아봐라!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