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거짓말을 좋아하는 이유
술자리가 무르익어갈 때
으레 하는 진실 게임은 거북하다.
흥이 오른 술자리에서 낯간지럽게 무슨 진실게임이냐며 찬물을 끼얹는 사람은 나다. 누군가의 비밀 이야기를 듣는 건 흥미로운 일이지만 내 진실과 맞바꿀 만큼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진실을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땐 약간의 거짓말을 첨가한 편법 쓰기를 좋아한다. 진실 게임은 ‘거짓말을 얼마나 진실처럼 말하는가’의 게임 같다. 진실과 거짓을 잘 엮어서 스토리를 만드는 게임. 단, 있는 그대로의 순도 100% 진실처럼 들려야 할 것.
생각해보면 우리는 매 순간 진실게임을 한다. 순도 100%의 진실만 말하는 솔직한 사람이 있을까? 세상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할 때마다 피노키오처럼 코가 길어진다면 어떨까. 사람들은 코를 깎기 위해 성형외과를 매달 미용실에 가듯 들락날락할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나도 솔직한 사람을 좋아한다. 자신을 다 펼쳐보이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온걸까. 그 군더더기 없는 솔직함과 용기가 부러울 때도 있지만 ‘솔직하기’는 아직 내게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내가 애용하는 거짓말은 다음과 같다.
영혼을 끌어모은 거짓말: 척.이라도 열심히
가장 좋아하는 거짓말은 ‘영혼을 끌어모은 거짓말’이다. 공감이 되지 않는다면, ‘척’이라도 열심히. 어떤 대화는 지루하다. 불현듯 어떤 주제에 대해 푹 빠져 이야기하는 내 맞은 편 상대. 그 동하지 않는 대화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적절한 반응을 골라내기 바쁘다. ‘이 타이밍에 이 정도면 되겠지’ 계산하며 연기자가 되곤 한다. 훌륭한 연기자도 못돼서 가끔 눈치 빠른 이들에게 내 발연기를 들켜버릴 때도 있다.
감추는 거짓말: 통편집 해버리기
나를 ‘감추는 거짓말’도 자주 사용한다. 나는 가끔 속을 알 수 없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그건 아마 감추는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두서없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부 하다 보면 오해를 사기도, 누군가에 의해 내가 정의 내려지기도 한다.
가령 내가 사탕을 싫어한다고 말하면, 어떤 이는 내가 단것을 싫어한다고 정의하는 것. 그래서 일부 사실은 숨기고 일정 부분을 편집하여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어떤 질문은 통편집해 버리기도 한다. ‘아 잘 모르겠네요’, ‘별거 아니에요’, ‘글쎄요’ 등 단골멘트로 얼버무려 버리곤 질문을 넘기기 바쁘다.
그럼에도 쉴새 없이 떠들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를 보고 있는 상대가 내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 시선이 따가워 말을 흐리게 된다. 너무 솔직하게 말 해버렸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했던 말을 되짚어보며 후회하기도 한다.
착한 거짓말: 무례하게 솔직해지지 않기
‘착한 거짓말’도 빼놓을 수 없다. 종종 무례함을 솔직함으로 포장하는 사람이 있다. 무례하지만 솔직한 사람과 무례하지 않은 거짓말쟁이. 둘 중 고르라면 나는 후자다. 무례한 솔직함이 싫어서 선뜻 대답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자면, 싫어하는 것을 물어보는 질문. ‘어떤 사람을 싫어하세요?’
좋은 것도 많지만 싫어하는 것도 많은 나는 그런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가 없다. 내 사소한 취향 혹은 생각으로 상대가 온종일 내 눈치를 보며 조심하는 것이 싫기 때문에. 이미 내가 싫은 기색을 감추지 못해 상대를 불편하게 했다면, 그때부터는 나를 재정의하는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사실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이.
이렇게 써놓고 보니 양치기 소년이라도 된 기분이다. 미화하고 싶진 않지만, 양치기 소년에게도 나름의 속사정이 있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진실은 거짓의 포장지만 벗기면 짠하고 드러나는 달콤한 사탕이나 초콜릿이 아니다. 피와 살을 보호하는 피부가 필요하듯 진심을 가리기 위해 거짓말이 필요하다.’ –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