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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랜들리 Apr 20. 2023

취향은 딱히 없습니다. 그런 비슷한 걸 찾는 중입니다.

무색무취 INFJ에게 취향이란

덥다. 뭐라도 마시자.


여름날, 수업을 마치고 친구를 따라 편의점에 갔다. 편의점 문을 열자마자 그녀는 냉장고로 성큼성큼 걸어가 레몬 녹차를 꺼냈다. 친구에게 물어봤다. 그거 맛있어? 응, 맛있어. 뭘 마실지 고민하다 결국 멋쩍게 물 한 병을 꺼냈다.


레몬 녹차. 생각지도 못했네.

고작 음료수 하나에도 너는 취향이 확고하구나. 생각했다. 친구의 레몬 녹차를 한 모금 마셔본다. 달달하고 씁쓸한 맛. 레모네이드에 녹차를 섞은 듯한 신기한 맛이었다.


모든 것에 취향이 확고한 친구와 달리 나는 무색무취에 가까울 정도로, 딱히 취향이 없는 사람이다. 그 흔한 음료수 취향도 뚜렷하지 않은 나는 편의점 한 바퀴를 돌며 고민하다 겨우 마실 음료를 선택했고, 가끔은 친구가 마시는 것을 따라 고르곤 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제삼자인 닉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정작 소설의 주인공은 개츠비. 개츠비의 화려한 저택, 그가 사랑하는 여인 데이지, 오만한 톰, 그리고 그의 정부까지. 책에 등장하는 개츠비와 그 주변 인물들까지 전부 알 수 있었지만 정작 닉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어찌 보면 이야기의 주인공이지만 너무나 희미한 닉의 존재. 이따금 나는 닉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내 세상에서 내 자신이 삼자인 것처럼. 내 이야기에 마치 다른 사람이 주인공 된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취향은 선택의 연속에서 드러나고, 선택은 확신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나는 확신조차 없었다. 이 문제로 가장 오래 겪었던 딜레마는 바로 옷. 한창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대학생 시절에도 옷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내 선택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그저 요즘 내 나이 또래가 입을 만한 옷. 혹은 누군가 예쁘다고 칭찬해준 옷의 느낌. 을 찾아다녔다. 귀 아래로 내려오는 여성스러운 귀고리. 자잘한 꽃무늬가 들어간 치마 등. 지나가다 한 번쯤 봤을 법한 옷들을 입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내가 좋아하는 옷, 내 취향이라고 말할 순 없었다. 그래서 이른바 ‘풀 세팅’을 하기 위해 매일 아침 더 기를 쓰고 화장에 목숨을 건 걸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짧은 치마를 끌어내리느라 온 하루를 신경 쓰는 것이 싫었고, 귀 옆으로 찰랑거리는 귀고리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과하게 프린팅이 들어간 옷 또한 내 옷이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내가 자주 입던 옷인데. 언젠가부터 불쑥 고개 든 생각을 새삼스럽게 발견했다.


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슬랙스나 벙벙한 티셔츠가 걸린 옷 가게를 보면 기웃거렸다. 몇 년 전의 내가 본다면 ‘남자 옷’이라고 생각했을, 중성적인 느낌의 옷을 도전해보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보다 무난한 것들에 더 눈길이 갔다. 크게 이렇다 할 단점이 없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지금도 취향은 불완전한 상태이다. 닉처럼 느껴지는 순간들도 있지만 모두가 개츠비처럼 뚜렷한 원색일 수는 없으니. 그저 작은 결정과 고심의 순간들이 더 좋은 색을 찾기 위한 과정이다. 미완성인 지금도 나쁘지 않다.라고 편할 대로 생각하며. 내 취향을 사로잡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고대하기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편의점 최애 음료수는 찾았다.


편의점에 가끔 없는 음료라 더 소중한, 태양의 마태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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