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랜들리 Apr 21. 2023

질투, 그 묘한 감정을 달래는 토요일 아침

그 기이하고 불편한 감정에 대해

토요일 아침 10시.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다.

물병을 통째로 들고 마시며 생각한다. 일찍 일어난 김에 밀린 일을 해야지. 대충 얼굴을 물로 헹구고 칫솔을 문 채로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노란 포스트잇 한 장을 뜯어낸다. 빨래 돌리기, 화장실 청소하기, 밀린 책 읽기. 오늘 할 일을 끄적끄적 적어본다.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여니 햇빛이 쏟아진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노래를 틀어야겠다. 주말 아침에 어울리는 노래로. 유튜브에서 플레이리스트를 누르니 광고가 나온다. 푼수기 넘치는 뷰티 유튜버가 뭔가를 열심히 설명한다. 양치질하며 광고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 뷰티 유튜버는 내가 아는 누굴 닮았다. 그래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그녀도 푼수 그 자체였다. 그녀는 착 달라붙는 앞머리와 단발을 고수했는데 머리카락이 어찌나 얇던지 살짝만 움직여도 그 앞머리가 반짝거리며 차르륵 흔들렸다. 통통한 체격에 특별히 예쁜 얼굴도 아니었지만, 특유 밝고 건강한 분위기가 있었다. 웃을 때 비죽 튀어 올라가는 통통한 광대와 휘어지는 눈가. 그 분위기가 그녀를 예쁘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그녀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았다. 그녀의 과한 몸짓과 시끄러운 웃음소리는 주변을 항상 수선스럽게 만들었다. 그 푼수 어린 모습이 그녀의 여리여리한 머리카락과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몇 번 내게도 말을 걸어오던 그녀였지만 피한 건 나였다. ‘쓸데없이 과하고 귀여운 척을 한다는’ 이유로. 싫은 티를 내진 않았지만 절대 다가가지도 않았다. 그녀의 활기참과 구김살 없는 모습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와 내 사이에는 항상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유독 그녀에게 회의적이던 나와 영문도 모른 채 미움을 받던 그녀. 나는 그녀를 꽤 많이 질투하고 있었다.


양치를 마치고 할 일도 포스트잇에 예쁘게 정리해 두었다. 하지만 소화하기 어려운 이상한 기분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포스트잇은 그냥 대충 벽에 붙여버리고 다시 벌렁 침대에 누웠다. 아직도 나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아무런 이유 없이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내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생각해보면 나도 맹목적인 질투를 받은 적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 나를 싫어하던 여자애로부터.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애는 내가 치마를 입는 것을 싫어했다. 치마를 입고 학교를 오는 날이면, 치마를 입지 말라며 버럭 화를 내기도, 안 놀아주겠다며 협박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치마를 입은 날은 나를 노는 무리에서 제외시켰다. 치마는 그 아이만 입을 수 있는 특권이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 엄마. 갑자기 내가 치마나 드레스 입기를 거부하자 엄마는 노발대발 화를 냈다. 내 옷의 절반이 드레스나 치마였으니.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가 그 집에 당장이라도 전화해 따지려는 것을 나는 극구 말려야만 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나는 엄마와 옷 전쟁을 벌여야만 했다.


그 애와 다른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내게 치마로 트집을 잡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치마는 입기 어색한 옷이었다. 결국 나는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치마를 입어 보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직도 그때 당시 이야기가 나오면 ‘천하의 나쁜 x’이라며 열불을 낸다. 지금까지도 역정을 내는 엄마의 모습이 생각나 괜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주변 사람들의 소식을 귀에다 물어다 주는 사람들이 있다. 걔, 이번에 대기업 어디 들어갔다며? 걔는 유튜브 시작했는데, 조회수 장난 아니래. 그럴 때면 내 삶이 밍밍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한다. 김이 빠져버린 콜라처럼. 그리고 새카만 감정이 울컥 올라온다. 말로 설명하기도, 소화하기도 어려운 그런 민망한 감정이. 치마를 못 입게 하던 그 여자애와 내가 다를 바 없는 것이 혐오스럽다고 생각하며. 그리고 그 추잡한 마음을 들키지 않도록 꽁꽁 싸매기 바쁘다.


벽에는 노란색 포스트잇이 조용히 붙어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오늘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다. 머릿결이 좋던 푼수 여자애든, 치마를 못 입게 하던 그 여자애든, 그 누구보다 오늘 하루를 보란 듯이 보내길 바라며.


그럼 빨래를 돌리러 가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