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문득 든 생각
뜨거운 커피에 얼음 몇 개만 넣어주세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할 때, 특별 주문을 넣는 손님이 간혹 있었다. 얼음 몇 개만 넣어주세요. 별거 아닌 그 배려의 말이 멜로디처럼 들린다. 주문한 커피를 들고 가는 손님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상대방은 알까. 덕분에 자신이 적당한 온도의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걸. 안다면 꽤 감동할 텐데.
얼음이 들어간 뜨거운 커피. 얼음이 들어간 줄 모르고 커피를 식혔다가 마시면 미지근할 텐데. 주문한 저 손님이 얼음을 몇 알 넣었다고 말해주려나. 조금 생색을 내면서. 만약 엄청 뜨거운 커피를 원했다면 약간 실망할 수도.
커피 취향이 다르듯, 사람마다 원하는 커피의 온도 취향도 다르다. 누군가는 한겨울에도 얼음이 왕창 들어간 커피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푹푹 찌는 여름에도 뜨끈한 커피만 마신다. 그래서 배려가 어렵다. 각자의 온도에 따라 배려는 달라질 테니.
칼로 배려하네
배려라고 하지만 상대가 원하는 배려가 아닐 때, 내가 농담처럼 쓰는 말이다. 농담하는 나도 ‘칼로 배려하는 경우’가 있었다. 고작 ‘별거 아니야’라는 말 하나 때문에. 그 말 한마디로 나는 친구와 크게 싸웠다. 정말 별거 아닌 일이었는지 혹은 말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저 나는 내 마음을 뭉뚱그리기 위해 그런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결국 친구는 나에게 서운함을 말했고, 나는 나대로의 억울함이 있었다. 늦은 밤, 우리는 그렇게 식은 커피를 사이에 두고 카페 한 켠에서 열정적으로 싸웠다.
그때의 나는 내 복잡한 이야기로 친구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이 컸다. 불편한 상황을 하소연하듯이 설명하는 것은 친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 생각해 혼자 삭히는 일이 많았다. 친구 또한 마찬가지로 나를 배려하기 위해 크게 캐묻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친구에게 내 배려는 일방적이었고, 친구는 그런 배려를 ‘선 긋기’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고, 대화하는데 왜 싸우는 걸까. 잘못한 사람은 없지만, 피해자만 둘. 아무도 탓할 수 없는 그날 밤, 나는 편하게 잠자리에 들 수 없었다.
어떤 관계에서는 따듯한 배려가, 어떤 관계에서는 지나치게 차갑게 변하기도 한다. 약간만 잘못 틀어도 차가운 물이 나오는 샤워기처럼. 그 온도 맞추기는 어려워서 매몰찬 사람이 되기도, 오지라퍼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슬프게도 관계들이 깊어져 갈 때, 온도 맞추기는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실수하기도 한다.
어떤 힌트들
결국 배려하려면 어떤 온도의 관계이든 관심이 중요하다. 관심을 기울이고 주의 깊게 살필 것. 그건 ‘물 많이 마시기’처럼 당연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다행스러운 건, 깊어지는 관계 속에서 자신의 온도에 대해 힌트를 주거나 내 온도를 살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가볍게 선을 그어주기도, 술자리에서 은근한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힌트들이 나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그 힌트를 놓치지 말 것. 관심을 기울이고 주의 깊게 살펴볼 것.
따듯한 커피에 몇 알의 얼음을 넣어 먹는지는 모르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