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섀도우에서 민낯까지
첫 화장은 18살,
카페 사장님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다.
부모님 동의서를 제출하고, 맨 얼굴로 집과 카페를 오가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카페 사장님은 화장을 하고 오라고 하셨다.
화장의 ‘화’자도 모르던 나는 집에 굴러다니던 엄마의 보라색 섀도우를 눈두덩이에 칠하고 카페에 가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끔찍한 화장이었다.)
‘왜 화장 안 하고 다녀?’ ‘화장해 봐’
맨 얼굴이었던 대학교 신입생 시절에도 노골적인 오지랖과 관심은 종종 있었다. 그게 달갑지 않아서, 오기로 더 안 했던 화장이었다. 그런 소심한 반항이 무색하게 생일 선물은 줄곧 화장품이었다. 그렇게 나는 화장의 세계에 눈을 떴다.
화장은 내 눈을 밝게 해 준 선악과였다. 무궁무진한 화장의 세계는 살 것도, 알아야 할 것도 많았다. 물광이냐 매트냐 하는 피부 표현부터 윤곽을 잡는 법까지. 눈화장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화장법 하나로 완전히 달라지는 유투버에게 매료되어, 틈틈이 로드샵 화장품 가게를 들르기도 했다.
지인들의 화장법을 보며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기도 했다. 눈썹부터 입술까지 빈틈없이 채워 바르는 사람, 마스카라로 예쁜 눈을 부각하는 사람, 심플하지만 기초에 충실한 화장을 하는 사람.
화장이 떴다는 말의 의미조차 이해할 수 없었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화장이 뜰까 봐 걱정을 하고 있었다.
두꺼운 입술이 콤플렉스였던 나는 립메이크업에 집착하는 편이었다. 밥을 먹고 난 후에는 바로 그 자리에서 립스틱을 바르곤 했다.
조금이라도 입술이 얇아 보이도록 하기 위해 컨실러로 입술을 한 겹 덮은 후 얇게 립스틱을 바르고, 파우더로 고정해야 했다. 그리고 입술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작은 휴대용 거울도 들고 다녔다.
친구와의 약속 시간을 맞추기 위해 허겁지겁 준비하던 날이었다. 그날따라 가방 밑바닥에 한두 개는 굴러다니던 립스틱마저 없어, 포기하고 그대로 친구를 만나 갔다. 한창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뜻밖의 칭찬을 들었다. 입술 예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진짠 줄 알아.
괜히 투정을 부리면서, 입술을 만졌지만 새어 나오는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그날 하루는 입술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악착같이, 뭘 그렇게 찍어 바르고 있던 걸까.
탈코르셋.
예쁘지 않을 권리라며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이 단어. 아이러니하게도 탈코르셋 영상과 메이크업 영상이 유튜브에 같이 공존하기 시작했다. 화장은 여성 억압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쁘게 보이고 싶고, 예쁜 걸 보고 싶은 건 그냥 본능 아닌가. 나조차도 길거리를 지나가다 예쁜 언니를 보면, 다시 한번 보고 싶어 괜히 딴 곳을 보는 척하며 슬쩍 보기도 하는데.
그러다 문득. 집 앞 카페를 가기 위해 화장을 하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맨 얼굴로 편의점 가기를 고민하고, 좁은 버스 안에서 얼굴을 팡팡 두드리기 바쁠 만큼 중요한 화장이 나를 야금야금 먹어가고 있다. 억압일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든 이후로는 3단 케이크 같은 입술 화장은 그만두었다.
호기롭게 맨얼굴로 다니던 반항적인 10대, 매일 아침 공을 들이며 풀메이크업을 하던 치열한 20대를 지나, 조금은 거품기가 빠진 화장 안정기에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