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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랜들리 Jul 13. 2023

담배를 꼭 끊어야 하나 싶다

예민보스에게 담배란

나는 예민보스다.


시끄러운 소리와 형광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와 방을 같이 썼던 동생은 밤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싫어하는 냄새도 물론 많았다. 다들 맛있다고 잘 먹는 고기반찬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면 살며시 젓가락을 내려놓곤 했다. 지금도 나는 집에서 상한 반찬을 판가름하는 탐지견으로, 엄마는 나를 통해 정육점 고기의 질을 확인하곤 했다. 안 좋은 고기면 내가 바로 젓가락을 놓을 테니.


그런 내가 유일하게 싫어하지 않은 것은 담배 냄새였다. 어릴 적 엄마와 아빠가 부엌문을 닫고 담배를 피우며 두런두런 이야기할 때부터.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비밀 이야기와 갓 피운 담배 냄새를 만끽하며 그 주변에서 자주 쭈그려 앉아 있었다. 생각해 보면 냄새에 예민한 내가 애연가가 된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내 ‘담밍아웃’에 놀라는 친구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나의 기호식품을 존중한다며 편하게 피라고 과하게 이해해 주던 친구, 그래도 담배는 끊으라며 농담 반 걱정 반으로 오지랖을 피워주는 친구, 그리고 같이 담타(담배 타임)를 하자며 카톡을 보내는 친구도 있었다.


기분 나쁜 질책도 받았다. ‘남자들 사이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호되게 혼내던 대학교 기숙사 선생님, 여기에 담배꽁초를 버리면 어떡하냐고 짜증을 내던 할아버지 (나는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여자가 남자 얼굴에 담배 연기를 뿜으면 유혹’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던 선배로부터.


불쾌한 질책부터 따듯한 질책까지, 담배를 통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손에 박힌 거스러미처럼, 묘하게 날 선 기분이 들 때면 담배를 피우러 갔다.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한 곳에서 벗어나 마음을 환기시켰다. 자욱한 연기가 옅어지면, 아득한 기분에 이상하게 숨이 쉬어졌다.


담배는 날카로운 부분들을 흐릿하게 깎아낸다. 보기 싫은 것, 느끼기 싫은 감정들을 블러 처리하는 이상한 매력이 있다.




친구에게 해선 안 될 말을 해버린 적이 있다.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다가. 출근을 하다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어느 순간의 공백에, 아주 새삼스럽게. 그때 내가 했던 말이 불쑥 생각나, 후회가 밀려든다.


빗금을 낸 건 난데 왜 내가 아직도 이렇게 아릿할까. 역시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어. 라든가. 이렇게 돌려받는 건가 봐.라는 생각들이 떠오르고 가라앉는다. 그 친구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이래서 죄를 짓고 살면 안 되는 거야.라는 성의 없는 반성으로, 진부한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그 반성이 무색하게도 나는 또 유혹에 빠져버린다.  집 근처 이자카야에서. 그날 나는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나 있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친구는 또 무슨 말을 하고 있는데, 전혀 들리지 않는다. 그저 내 앞에 놓인 빈 맥주잔과 대치 중이었다. 저 친구의 머리통을 쳐버리지 않기 위해 두 주먹을 꼭 쥐고 맥주잔을 바라보고 있다.


입이 간지러웠다.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 터져 나올 듯한 순간이었다. 참다못한 나는 친구에게 담배를 피우고 오겠다고 했다. 분명 언젠가는 후회하겠지만, 또 말한다면 엄청난 쾌감을 줄 말을 입 속 가득 머금고.


결국 친구에게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오니, 점원이 치웠는지 빈 맥주잔은 없었고,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현명한 선택이었다. 아주. 맥주잔을 들지 않은 건. 또 나중에 후회할 말들을 내뱉지 않은 건, 웃기게도 고작 담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걱정 어린 말로 담배를 끊을 생각은 없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볼 때, ‘뭐, 끊어야죠’라고 작게 말을 흐리고 만다. 하지만 나에게 패닉 버튼인 담배를 아직은 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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