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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랑 Nov 06. 2018

하늘에서 내려온 공포의 마왕 (上)

1장. 지구에서 달까지


V-2 로켓이 떨어져서 파괴된 런던 시가지


1944년 9월, 한적한 가을 오후를 즐기던 런던 시민들은 아무런 경고도 없이 두 번의 폭발음을 듣게 되었다. 땅이 흔들리는 충격파에 놀란 가슴 쓸어내리고 두리번거렸을 때, 도시 한복판에 시커먼 연기가 치솟는 것을 발견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누군가 “저것은 로켓이다!”라고 외쳤다. 바다 건너편에서 발사된 탄도미사일이 5분 만에 도버해협을 건너왔다. 첫 번째 폭음은 로켓이 음속을 넘는 속도로 떨어질 때 발생한 소닉붐이었고, 두 번째는 1톤에 이르는 폭약이 터지는 소리였다.

이렇듯 인류와 우주로켓의 첫 만남은 비극적이었다. 나치 독일이 만든 V-2 로켓은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한 후로 우주에 나갔던 최초의 물체였으나 살육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그 뒤로 사람들은 언젠가 인류를 멸망시키는 악마의 무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 로켓이지만 원래는 열정을 가졌던 몽상가들의 꿈을 현실로 이뤄낸 값진 결실이었다. 우주로 가려던 많은 이의 열망은 아이러니하게도 미사일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왔다.


V-2는 역사상 첫 탄도미사일이자 우주로켓이 되었다.


탄도미사일(Ballistic Missile)은 일반적인 미사일과 달리 지상에서 발사되어 우주권(80~100km)까지 포물선을 그리며 상승했다가, 중력에 의해 다시 대기권으로 재진입 후 지상에 떨어지는 군사용 로켓을 뜻한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폰 브라운이 이끄는 육군 병기국 로켓연구소에서 개발한 V-2 로켓은 최초의 탄도미사일로 분류가 된다. 1톤에 이르는 폭약을 탑재했고, 고작 1분간 로켓을 연소시켜 무려 마하 5가 넘는 속도로 320km를 날아가서 지상에 충돌 시 속도가 마하 2.4였다. 당시 기술로는 이런 무기를 결코 방어할 수가 없었다.

대공습도 견뎌낸 영국이었지만, 무방비 상태에서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그 뒤로 6개월 동안 1,358발의 V-2 로켓이 런던을 향해 발사되어 2,754명의 민간인을 살육했다. (부상자 6,523명)

다행히 V-2는 초기 기술의 한계로 매우 정확도가 낮았고, 심지어 비행 도중에 오작동으로 영국으로 날아가지 못한 것도 상당수다. 로켓의 발사 성공률은 겨우 78%였고, 런던의 시가지에 떨어진 것은 그중에서도 매우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무방비 상태에서 로켓의 급습으로 많은 런던 시민이 희생됐다. V-2는 명중 정확도가 형편없었지만, 무려 1톤에 이르는 고폭탄을 탑재해서 제대로 떨어지면 반경 100m를 파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유럽 본토의 전선이 빠르게 독일 쪽으로 이동하면서 영국까지 V-2를 날릴 수 있는 발사 위치를 확보할 수 없었기에 런던에 대한 위협은 곧 제거되었다.


사실 2차 대전은 너무 많은 나라가 얽혀서 런던 하나쯤 쑥대밭이 되었어도 멈추지 않았을 전쟁이었지만, 주요 전쟁 수행국이었던 영국의 입장으로는 런던에 대한 독일의 대규모 공습은 대중의 전쟁 수행 의지를 꺾고 사기를 떨어트릴 수 있는 위협이었다. 그러나 런던 시민들은 1940년의 대공습에서 아이들을 후방으로 대피시키고 방공호에서 버티며 굳건히 전쟁 수행을 지지했다.

전쟁 막판인 1944년 후반부터 고작 몇 달간 이뤄진 독일의 V-2 로켓 파상공격에는 다소 양상이 달라졌다. 이미 전세가 연합군에게 완벽히 기울어진 상황에서 방심하고 있던 런던 시민들은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신무기의 공격에 대공습을 능가하는 심리적 충격을 받게 되었다.

2차 대전 막바지의 나치 독일은 최후의 수단으로 1년간의 짧은 기간에 무려 5,200발이나 되는 V-2 로켓을 생산했다. 처음에는 주로 런던을 향해 쐈고, 이후 차차 전선이 밀리면서 런던을 사거리로 잡을 수 없게 되자 연합군의 주요 물자 보급항인 안트워프를 향해 1,600발이나 발사했다. 모두 합쳐서 4,300발이나 쐈음에도 불구하고 기울어진 전황을 뒤집을 수 없었다. 종전 후 나머지 로켓과 부품들, 그리고 생산시설과 기술자들은 승전국들의 전리품 신세가 되었다.

V-2가 가져다준 공포에 비해 실제로는 군사적인 효과가 크지 않았다. 정확도가 매우 낮아서 큰 도시를 공격하는 용도로만 사용되었다. 비용면에서도 미국의 원자폭탄 계획보다 50% 이상 더 많이 들어갔으니, 차라리 그 돈과 기술로 다른 무기를 만들었으면 전쟁이 더 오래갔을지도 모른다.



전쟁의 공포, 전방과 후방의 수위 차이?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아무리 세계대전이라 할지라도 재래식 전쟁에서는 살육이 주로 ‘전장’에서 이뤄진다. 군인들이야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전사라서 그렇다 쳐도, 민간인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는 전선 근처의 포격이 가능한 범위에서 발생한다. 물론 후방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의 직접 피해도 만만찮다. 이것은 대부분 한쪽으로 전세가 기울어서 적국의 공습을 막아낼 상황이 안될 때 발생하는 일이다. 적의 공습에 후방의 시민들이 무차별적으로 노출된다면 지도부는 전쟁을 멈추는 게 낫지 않을까?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알린 E.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서는 전방의 참호전에 휩쓸린 군인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과 전쟁에 대한 반감을 느낄 수 있다. 전선에서 설령 적이더라도 서로 살고자 발버둥 치는 똑같은 마음에 동정심을 갖는 소설 속 주인공에게 공감이 된다. 주인공이 후방으로 휴가를 나왔을 때, 동네 노인들이 자신들은 전쟁터로 나가지도 않을 거면서 적국을 공격해야 한다며 강경한 여론을 펴는 장면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전쟁은 노인이 일으키고,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건 젊은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것은 1944년, 미국의 전직 대통령인 허버트 후버가 연설 중 “선전포고는 노인이 하지만, 싸우다 죽어가는 것은 젊은이들이다”라고 말한 대목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어느 나라든지 전쟁 수행 능력은 사전에 준비된 병력과 무기들에 의해 좌우되지만, 전쟁이 지속되면 전방을 지원할 후방의 중요성이 커지게 마련이다. 국제적인 전쟁일 경우, 주변국과 지원국들의 상황에도 좌우된다.

일단 어떤 민간지역이 전선에 노출되어 민간인들에 대한 살육이 자행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피해 지역 사람들은 누구도 전쟁이 지속되길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전쟁에서 대규모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는 이유는 지도자들의 광기와 집착, 독선 때문이다. 일부 지역만 전쟁에 노출된 경우에는 후방의 대다수 민중이 여론 선동 때문에 감정에 휩쓸려서 전쟁에 반대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종교적인 이유도 다수 차지하고 있다.


탄도미사일은 일반적인 공습과는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폭격기 공습은 사전에 예측할 수 있다. 물론 대응을 제대로 못 해서 경보가 늦게 울리면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은 폭격의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또한, 장거리포 사격은 사정권 내에 있는 지역에서는 늘 위험을 인지하고 있다. 반면에 탄도미사일은 발사되면 극히 짧은 시간 만에 목표로 도달하기에 설령 포착하고 경보를 울린다고 해도 대피할 시간이 사실상 없다.


“300km 사거리의 미사일은 발사 후 1분이 지나야 대충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있고, 고작 5~6분 내로 목표에 도달한다.”


폭격기의 경우에는 중간에 요격할 가능성도 있지만, 탄도미사일은 최소한 1990년대까지는 요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무기였다. 제공권을 한쪽이 장악한 경우라도 열세인 쪽의 미사일은 언제든 발사돼서 상대편의 도시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다음 편에 이어서)






이 글은 제가 2015년부터 일 년 동안 연재했던 『프로젝트 로켓』시리즈에 나오는 일부입니다. 당시 22편과 몇 편의 외전을 합쳐 모두 2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올렸습니다만, 지금은 대부분 삭제하여 일부만 딴지일보 기사로 남아있습니다. 당시에 썼던 글은 지금 보니 많이 부족하고, 틀린 내용도 있어서 새로운 글로 대체하려 합니다.

그 뒤로 나머지 부분을 집필하여 10월에 동명의 우주로켓 교양서로 출간했습니다. 저의 브런치북 당선작인 <초보를 위한 우주여행 가이드 북>은 애초에 『프로젝트 로켓』후반부에 들어갈 내용을 우주여행이라는 주제로 상세하게 풀어쓴 것입니다. 곧 출간될 『지금은 부재중입니다, 지구를 떠났거든요』는 당선작에서 다시 사람을 주제로 새롭게 쓴 글타래를 엮은 에세이가 되었습니다.


우주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만, 낙관적인 시각이 주류인 것 같습니다. 제가 바라보는 우주는 차갑고 냉혹한 극한의 장소랍니다. 그곳에 가기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 『프로젝트 로켓』입니다. 이런 종류의 책은 벌써 여러 권 나왔어야 하는데, 왜 없는지 이해가 안 될 뿐입니다.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담으려 했고, 부족하나마 결실을 보았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출간작이라서 전체를 올리지는 못합니다. 출판사 측에 양해를 구해서 기술 설명이나 나열식이 아닌, 조금 흥미로운 챕터들을 골라서 공개할 예정입니다. 언젠가 다른 작가(또는 전문가)가 새로운 책으로 보완해줬으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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