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회차는 길고 복잡합니다. 미리 알립니다)
2회 차에 걸쳐 기술은 앞서가고 머릿수는 부족하지만 여전히 결과에 매몰되어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둘러봤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만 찾으면 됩니다.
이 단계에 들어서면 다소 막막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에 앞서 정리해 둔 알파나 베타들이 맞는지부터 긴가민가 하거든요. 하지만 확신을 가지세요. 과거의 진화에서 도출한 알파와 주변의 흐름에서 읽어낸 베타는 비교적 높은 확률로 현재를 설명해 줍니다. 질문도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간 학습했지만 파편처럼 흩어져 저장되어 있던 지식들을 이어 주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연결고리가 바로 인사이트의 중요한 재료죠. '이 정의는 다른 분야에서 어떻게 달라질까', '이 개념은 다른 분야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이 접근법은 다른 분야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와 같은 묘한 호기심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을 거치면 대뇌에 저장되어 있던 각기 다른 분야의 지식이 겹쳐집니다. 새로운 정보를 기존 지식과 연결 짓다 보면 더 쉽게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죠. 학습의 관점에서 유의미하고, 효율의 관점에서도 효과적입니다.
그간 모아둔 지식을 사용할 때가 왔다
하나의 단어(혹은 용어)를 고르는데서 시작합니다. 기계적으로 접근하세요. 100% 이해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어떤 분야에서 사용되는 단어를 이해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분야 지식이 필요합니다. 약간의 팁만으로 단기간에 키울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죠. 하지만 기계적으로 찾아가는 능력은 다릅니다. 여러 분야의 문서에서 추출하거나 구글에 검색어를 쳐보세요. 정 어려우면 AI가 정리해 줄 겁니다. '이런 의미가 있구나' 정도만 인지해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당장 이해하면 좋지만 어렵다면 잠시 미루어둬도 됩니다. 몇 번 접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깊이라는 게 생깁니다.
그 단어를 어떻게 골라야 하는가 라는 고민이 생깁니다. 답은 알파에 있습니다. 이 과정은 바닷물에서 소금을 얻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거르고 걸러 마지막에 남는 단어를 고르면 되는 거죠. 생각나는 대로 다 쓰세요. 다 쓰고 나면 현상(산업, 사회, 문화)의 변화와 분야의 변화를 구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고 싶은 건 현상의 변화가 아니라 분야의 미래거든요. 분야의 변화를 포괄하는 단어를 선택하면 됩니다. 일단 한 번 써볼게요.
초록 구역은 산업의 변화, 밝은 구역은 그에 따른 HR의 변화. HR을 포괄하는 개념만 남긴다.
여기에서 초록구역은 산업의 변화와 관련되는 단어들이죠. 참고하면 됩니다. 반대편 밝은 상아색 구역이 산업변화에 따른 HR의 변화에서 주목할만한 단어들입니다. 얘들 중에 고르면 됩니다. 저 안에서 하위개념과 상위개념을 부등호나 순서로 구분해 주세요. 예를 들면 관리하기 위해 쓰는 도구 중 하나가 리더십이니 관리가 리더십의 상위개념이 되는 식입니다. 줄을 세우면 권력 메커니즘 > 관리> 리더십 > 코칭, 채용, 보상 순으로 정리될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질문으로 풀어가야 할 키워드는 제일 위에 있는 개념, '권력(혹은 권력 메커니즘)'이 됩니다.
문제가 생기면 필드에선 리더십을 많이 언급합니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많은 문제들이 리더, 개인만의 문제인지는 의문입니다. 창의성 부재, 혁신의지 상실, 개인 혹은 부서 간 협력 저하, 정보공유 기피, 조직분위기 경직, 성과 피로도 증가, 소속감 상실, 우수인재 유출 같은 문제들이 리더 혼자 잘한다고 혹은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냐는 거죠. 리더가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입니다만 거시적 관점에서 조직 내 영향력의 종류와 크기가 달라지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영향력이 작동하는 방식, 권력 메커니즘도 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핵심인재는 결이 달라 따로 빼두었습니다. 이런 키워드는 독자적으로 또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재료가 되거든요. '핵심인재의 미래'로도 도출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건 다음 시리즈에 다루겠습니다)
도출한 최상위 개념에 내가 가지고 있던 기존 지식을 잇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권력 얘기부터 해볼까요. 권력은 공동체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개념이지만, 분야에 따라 그 의미가 다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정치학이나 사회학에서는 타인의 행동과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을 말하지만 마케팅에서는 시장과 소비자에 대한 영향력을 뜻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본질적으로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군요.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고 제어할 것이냐'라는 고민이 인류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걸 보면 아마 그 언저리겠죠.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권력은 보편적이며 항상 존재하는 힘입니다. 마치 질량을 가진 두 물체 간에 보편적으로 작용하는 만유인력처럼 두 사람만 있어도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완전히 평등한 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 큰 질량을 가진 물체가 더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처럼, 더 강한 권력을 가진 쪽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인력이 강해지듯, 거리에 따라 미치는 영향력도 증가 혹은 감소하죠. 당기는 힘이 양쪽으로 작용하듯 권력관계도 양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저장해 둔 지식과 붙여서 해석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저는 권력이라는 최상위 개념을 만유인력의 관점에서 잇고 해석해 봤습니다. 뜯어볼수록 비슷한 면이 많거든요. 질량과 거리, 중력상수가 에너지를 구성하는 요소라면 조직에서 영향력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권력의 본질은 영향력인데 조직 내 위계나 지위가 영향력의 전부는 아니겠죠. 제가 찾아낸 답은 시간, 기술, 지위였습니다. 보낸 시간이 많을수록, 축적된 기술 수준이 높을수록, 지위에 대한 우대정도가 높을수록 영향력이 커졌거든요.
시간과 기술, 지위가 복잡하게 얽힌 동적현상, 그중에서 핵심은 시간입니다. 그간 한국 사회에선 시간이 누적되며 기술이 습득되었고 기술이 축적되는 만큼 지위가 결정되었거든요. 이를 반영한 대표적인 HR시스템이 바로 연공서열과 그에 따른 임금체계입니다. 다른 HR시스템도 이 틀에서 벗어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AI가 등장하면서 기술 습득에 대한 벽이 낮아졌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누적 시간에 대한 가치가 떨어지면서 기존 틀의 효력도 떨어진 것입니다.
이제 거의 끝났습니다. '그 간의 조직 내 권력은 누적 시간과 비례했다'는 저의 해석에 맞춰 질문을 구성하고 답하는 일만 남았거든요. 전 '지금-우린-무엇을-어떻게'로 구성했습니다.
확장 혹은 재해석된 최상위 개념은 달라진 조건이나 환경(현 상황)에서 유효한가
- 지금에 해당합니다. 현재 상황에서 해석된 최상위 개념의 잔존가치를 묻습니다.
아니라면 변화된 조건에서 대체되는 개념은 무엇인가
- 무엇에 해당합니다. 유사 혹은 대체할 개념이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대체된 개념은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는가
- 어떻게에 해당합니다. 대체재를 활용하는 방향을 정하고 방법을 고안합니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조직 혹은 개인차원의 지원은 무엇인가
- 우리에 해당합니다. 처해진 상황에 걸맞게 지원하고 확인해야 할 부분을 개략적으로 서술합니다.
구성한 시퀀스에 따라 HR의 미래에 대한 질문과 나름의 답을 구해봤습니다. 하나의 예시로 봐주세요.
1. 시간의 누적과 비례했던 기존의 권력 메커니즘은 현재에도 유효한가
: 네 지금까진. 그러나 첨단기술의 진화로 누적 시간의 가치가 떨어지면 그 효용은 확연히 감소할 것입니다.
2. 현재의 조건에서 기존 권력 메커니즘을 대체할 새로운 권력은 무엇인가
: 누적 시간에 영향을 받지 않는 그 무엇이 대체할 가능성이 큽니다. 대표적인 게 성과입니다. 여기서 성과는 가시적인 성과(Short Term, Visible)와 비가시적인 성과(Long Term, Invisible)로 구성됩니다.
3. 새로운 권력은 어떻게 활용해야 하나.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나
: 우선 비가시적인 성과에 대한 평가가 필연적입니다. 즉 매출이나 이익이 아닌 '미래잠재력까지 포함한 부가가치'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요구합니다. 이 과정은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가시적 성과 위주의 기존 평가 시스템을 갈아엎어야 한다는 의미니까요. 평가시스템의 변화엔 고도의 평등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연공서열이 아닌 프로젝트 적합성과 과거이력 기반으로 일이 전개되어야 합니다. 내가 가진 역량(혹은 스킬)과 맞지 않는 프로젝트가 주어지거나 수행한 프로젝트가 각자의 성과로 누적되지 않는다면 조직은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됩니다. 시대에 뒤떨어지게 되니까요.
무형의 가치가 측정되고 평가받는다면 긴 호흡에서 프로젝트를 전개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창의성과 혁신이 개입할 여지를 남김으로써 높은 부가가치를 기대할 수 있게 합니다. 말 그대로 당장의 100원보다 미래의 120원을 선택하는 게 가능해지는 셈이죠.
4. 그것을 위해 조직 차원에서 지원하고 확인해야 할 사안은 무엇인가
: 조직엔 모든 임직원들의 스킬 보유 여부 및 수준을 파악해야 하는 숙제가 생깁니다.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개발도 지원해줘야 합니다. 개발에 따른 부담을 덜고 싶다면 해당 스킬을 외부에서 어떻게 수혈할지에 대한 복안을 마련해 두어야겠죠. 물론 세부적인 사안들은 조직 내외부의 상황을 고려해야겠지만 큰 틀에서 '조직에서 요구해야 할 역량 + 해당 프로젝트에서 요구되는 기술 = 부가가치의 증대'라는 공식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산된 부가가치에 대한 정당한 평가까지 더해진다면 해당 조직은 남다른 경쟁력을 가져갈 수 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묻고 답해야 얻을 수 있다 인사이트는 특별한 재능이 아닙니다. 하나의 방법론입니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에 답하는 과정에서 얻는 부산물입니다. 그간 지나온 길과 주변을 확인하세요. 가지고 계신 지식과 경험을 연결하세요. 차분히 묻고 답하다 보면 의외로 쉽게 얻어질 거라 확신합니다.
이번 회차는 양이 많았네요.
다음 회차엔 이 기법을 써서 핵심인재 얘길 해볼까 합니다. 다음 주에 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