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만드는 이야기(2/3)
지난 회차에서 그런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과정은 마치 중랑천의 수위를 예측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지류하천인 중랑천의 수위는 본류인 한강의 수위에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본류의 수위가 지류하천의 수위를 결정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기억하십니까.
이번 회차에선 지류하천, 중랑천의 수위를 예측하는데 필요한 두 번째 요소 이야기입니다.
역시 주제는 이어서 가져갑니다. 주변의 흐름으로 보는 HR입니다.
앞서 과거로부터의 진화(이하 알파)는 '레벨이 다른 첨단기술의 진화와 노동력의 부족을 겪고 있다. 기존의 HR시스템과 정의가 맞지 않는다'로 정리되었습니다. 알파는 시대와 산업의 커다란 흐름입니다. 본류죠. 모든 조직에게 해당되는 변화고 따라가지 못하는 조직은 도태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들여다보고자 하는 현상이 알파만으로 설명되진 않습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해당 현상이 벌어진 환경도 영향을 미칩니다. 꼼꼼하게 잘 살펴봐야 합니다.
살펴보기 전에 강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궁서체에 컬러 볼드 입혀 밑줄이라도 그어서 말이죠. 들여다보고 싶은 현상이 벌어진 환경을 분석할 때 연령, 성별, 지역, 소득, 결혼유무 같은 인구통계학적 요소는 가급적 배제해 주세요. 지금까진 많은 상당한 통찰을 제공한 접근법일진 모르겠으나 더 이상 이 접근법이 유효하다 보긴 어려운 환경이 도래했거든요. 아래 서술된 문장을 한 번 볼까요.
게임을 즐기는 집단은 주로 10대, 성별은 남성이 많을 것이다
20대 초중반, 여성이 SNS를 가장 활발하게 이용할 것이다
앞에서 서술된 문장들은 100% 사실도, 100% 거짓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린 은연중에 상식적이며 일반적인 사실로 간주합니다. 인구통계학적 접근법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신속하고 효율적인 판단이 필요할 때 무의식적으로 어떤 단서나 법칙을 사용합니다. 우린 이걸 휴리스틱이라 부릅니다. 휴리스틱은 의사결정에 걸리는 시간을 줄여주고 신속하게 다음 행동으로 이어주는 바로가기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정확하진 않죠. 대부분은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기에 상당 부분 편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통 이런 휴리스틱은 몇 가지 대표성을 가지고 특정대상을 판단해 버리는 경향 때문에 생기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인구통계적 이해도 그런 케이스에 속합니다.
탈 인구통계학적 사고(Post-Demographic Consumerism). 분석의 대상이 되는 현상을 둘러싼 환경을 살펴볼 땐 개인의 가치관, 라이프 스타일, 관심사 같은 정체성 혹은 행동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게 좋습니다.
이제 주변의 움직임(이하 베타)을 살펴볼까요.
베타 중에서도 가장 도드라지고 선명한 움직임은 결과 지상주의입니다. 결과 지상주의, 최근에 발생한 현상이나 흐름은 아니죠.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배경을 바탕으로 형성된 집단 정체성입니다. 과정보다는 결과 그 자체를 중시하는 경향을 의미하는데 여기에 유교를 비롯한 역사적 경험, 강도 높은 경쟁의 영향이 더해지면서 조직에 대한 충성과 헌신까지 확장됩니다. 개선되고 있다곤 하지만 일각에선 여전히 조직의 목표 달성을 개인의 삶보다 상위개념으로 두기도 합니다.
결과 지상주의가 지배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익숙합니다. 천천히 볼까요. 인재를 선발할 땐 출신 대학이나 등수, 실적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조직에 필요한 역량'이 아닌 '달성한 결과'가 선발기준이라는 거죠. 때로는 1등이나 그에 준하는 상위권의 실적 혹은 경력에 특별한 혜택을 주기도 합니다. 관리 방식이나 도구도 결과입니다. 당장 결과를 내지 않으면 기한 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내부 구성원 간의 경쟁을 통해 성과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믿음이 더해집니다. 시장에서 벌어지는 기업 간의 경쟁에 집중해도 부족할 에너지를 내부경쟁에도 할당해야 합니다.
개인 차원에서도'결과' 위주의 단기 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보상이 결정되니 구성원 간, 부서 간 정보공유나 협력엔 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일로 만난 사이지만 일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를 할 만한 구조나 환경이 아닙니다. 각자의 우선순위엔 그게 1순위가 아니거든요. 미디어에서 가끔 보이는 '우리 조직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요'같은 설문조사에서 소통이 1위로 꼽히는 덴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조사의 행간을 파악 못하고 '소통'이라는 단어에 매몰되어 경영진과의 대화 - 비어홀 파티 같은 괴이한 해법을 내놓는 건 또 다른 얘기지만요.
성과관리의 초점이 결과에 맞춰지다 보니 미래성장에 기울이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성과가 쉽게 나는 현안과제나 비용절감에만 관심을 두지 지속성장을 위한 투자나 인재육성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평가도 박하죠. 대부분 국내 기업들을 보면 당해 연도의 영업이익, 매출과 순이익 등 재무지표를 핵심 성과지표로 삼는 반면, 신사업 발굴이나 교육투자, 핵심인재 육성 등 성장을 위한 비재무적 노력은 지표에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측정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습니다만 애초에 측정하려 들지 않으니 못할 뿐입니다. 적어도 제 의견은 그렇습니다.
결과 지상주의의 부작용 가운데에서도 특히 걱정되는 부분은 조직 혹은 개인 차원에서 창의성과 혁신을 저해한다는 점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를 요구하는 환경에서 실패는 곧 도태를 의미합니다. 한 번 도태된 이에겐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아니 실패 자체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시도나 생각보다는 안전하고 무난한 선택지를 고릅니다. 평온한 시절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만 성장의 한계에 봉착했거나 위기를 마주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늘 하던 대로 했으니 한계나 위기를 맞은 거거든요. 한계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힘은 창의적 아이템이나 혁신 경험입니다. 창의성과 혁신을 장려하자 말은 하지만 절대 실패할 수 없는, 해서도 안 되는 조직에선 그저 불편한 얘기일 뿐입니다.
후진적인 조직문화나 철학이 부재한 자본주의 기조 등의 움직임들도 함께 다루고 싶었지만 큰 틀에서 결과지상주의의 파생효과, 연장선상으로 봐도 무방할 듯싶어 하나의 베타로 묶었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결과지상주의는 또렷하고 확실하게, 넓고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창의성 부재, 혁신의지 상실, 개인 혹은 부서 간 협력 저하, 정보공유 기피, 조직분위기 경직, 성과 피로도 증가, 소속감 상실, 우수인재 유출 같은 부작용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일할 사람은 줄어들고 생성형 AI 활용에 대한 조바심도 더해집니다. 씨줄과 날줄처럼 첨단기술의 진화와 노동력 부족이라는 알파에 결과지상주의, 여전히 후진적인 조직문화, 철학이 부재한 자본주의 기조라는 베타가 겹쳐지면서 극심한 생산성 정체현상을 빚고 있는 중이죠. 지금 당신과 나, 우리의 일터가 그렇습니다.
HR의 고민은 깊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가치를 창출하고 변화를 주도하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거든요.
이제 질문을 던질 차례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할까요.
다음 회차에 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