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 보면 인사이트라는 단어가 들릴 때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보고서나 결과물에 대한 직관적인 평가를 내릴 때 쓰는 표현이다 보니 귓가에 들리면 자연스럽게 온몸의 감각이 그쪽으로 쏠립니다. '인사이트가 있다'라면 대체로 결과물이 유용하거나 쓸만하다는 의미일 테고 '쓸만한 인사이트가 없다'면 그 반대니 까요. 그나마 전자라면 내심 안도하지만 후자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건 분석가의 가오가 걸린 일이니까요.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마성의 단어가 있다면 그게 인사이트지 싶습니다.
대체 인사이트가 뭘까요. 여러분은 아십니까? 대강의 뉘앙스는 알겠는데 막상 질문을 받으면 깔끔하게 답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복잡한 상황이나 문제에 대한 명확하고 깊은, 때로는 갑작스러운 이해'라고 정의하는데 잘 와닿진 않습니다. 명확하면서 깊고 갑작스러운 이해라니. 불교에서 말하는 돈오점수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여기에 인사이트를 판별할기준이 없다는 점은 한층 깊고 진한 혼란을 가져다줍니다.
말은 쉽다. 인사이트.
이번 회차부터 세 번에 걸쳐 이 망할 인사이트 얘길 좀 해보고자 합니다. 다른 시선 혹은 방법론에서 바라보고 '갑작스럽지만 새로운 이해'를 어떻게 해야 할지 얘기해 볼 예정입니다. 재료는 제 전공이죠. HR(혹은 HRD)의 미래입니다.
위에서부터 찬찬히 얘기해 볼까요. 18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인류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진입합니다. 석탄과 증기기관의 사용은 에너지 레벨을 끌어올렸고 분업화, 공장 시스템 등이 도입되면서 대량생산이란 걸 하게 되죠. 사람들은 시골에서 도시로 향하고 전문화된 기술을 갖추게 됩니다. 이전과 급이 다른 생산성은 더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고, 늘어난 노동력은 관리기술과 리더십을 동반하며, 리더십은 생산성에 기여하는 삼각형이 만들어집니다. 현대 경영학의 기초도 바로 이 구조에서 출발합니다. 이 시절의 HR은 쏟아지는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데 초점이 맞춰집니다. 관리에 능한 리더가 유능한 대접을 받게 되고 생산력은 점차 올라갑니다.
야금야금 올라가던 생산력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가속이 붙어버립니다. 경제 발전 속도를 노동력이 따라잡지 못하게 되죠. 분야 가리지 않고 비즈니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일자리는 쏟아지는데 정작 일할 사람이 부족합니다. 너나 할 거 없이 생산에 투입되니 관리 시스템에 사각지대가 발생합니다. 동시에 노동력의 질도 끌어올려야하는 과제가 주어집니다. '관리 = 리더십'이었던 만큼 관리의 공백은 곧 리더십의 공백,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많은 HR 시스템이 새롭게 개발되고 제안됩니다. 직무순환(Job rotation), 코칭(Coaching), 승계계획(Succession plan), 인력개발(Employee development), 핵심인재관리(High-potential employee track), 360도 피드백(360-degree feedback), 평가센터(Assessment centre) 같은 개념들이 이 시기에 제안됩니다. 채용, 개발, 보상 같은 개념들도 한층 진해집니다.고도성장과 맞물린 HR은 조직에서도 높은 위상을 가지게 됩니다.
에너지 레벨이 오르고 생산력이 폭발하자 관리가 필요해진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비즈니스가 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기업들은 더 이상 하나의 분야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본연의 비즈니스 분야는 고도화시키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합니다. 정보, 통신기술이 발전하고 다른 분야와의 융합이 활발해지면서 이런 흐름은 점차 가속화됩니다. 비즈니스가 빠른 속도로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복잡성이 높아지면서 핵심인재가 화두에 오릅니다. 커지고 복잡해지니 이를 이끌어갈 똑똑한 애들이 필요하다 이거죠. '이들을 고용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집니다. 기존의 HR에서 주도했던 채용, 개발, 보상 등의 기능들도 해당 라인 관리자로 넘어가거나 주도권을 상실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자동화를 기반으로 한 발달된 기술이 HR의 기능 일부를 대체하기 시작했고 어떤 기능은 아웃소싱도 가능해졌습니다. 교육이 대표적이죠. 상대적으로 HR의 위력 또한 감소하게 되는데 주도권을 상실하면서 이전만큼 새롭고 과감한 제안 역시 줄어들게 됩니다.
기존의 정의와 시스템이 맞지 않는 시대
2020년대에 접어들었습니다. 그간 산업의 중심이 단순 노동력 제공에서 제조업, 서비스업으로 이동했다면, 이젠 서비스업 이후의 진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비즈니스는 폭발적 성장세를 멈추고 충분히 성숙했지만, 그 복잡성은 더욱 증가했습니다. 경제 규모는 충분히 커졌지만, 그만큼 복잡해진 비즈니스를 제대로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는 인재는 부족합니다. 이젠 절대 인구마저 감소하고 있죠. 쓸만한 사람은 적은데, 쓸 사람마저 줄어드는 그런 상황입니다. 현상 자체는 고도 성장기와 비슷하나, 그 의미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인력과 고급 인력에 대한 수요 모두 심화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좋은 신호는 아닙니다.
쓸만한 사람도, 쓸 사람도 사라지고 있다
여기에서 변수가 등장합니다. 일할 사람의 부족을 보완할 기술 노예(이하 AI)를 만들어 냈거든요. 노동력이 부족하면 HR의 위력이 강해질 차례지만 장담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AI는 등장과 동시에 산업 전반을 관통해 버립니다. 시장의 관심 역시 얼마나 인간과 유사하게,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에 맞춰집니다. 이 관심은 기술력과 유용성, 2가지로 구분됩니다. 생활을 바꿀 만큼 압도적인 기술력을 갖추든가 아니면 사용자를 철저히 관찰하고 연구해서 얼마나 유용한가로 나뉘죠. 사실 이 두 흐름은 사실 따로 또 같이 흐릅니다. 결국 사용자인 인간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는가가 미래 경쟁력의 핵심이 됩니다.
일할 사람은 적어지지만 이를 도와줄 AI가 있다는 조건은 HR에 많은 충격과 고민을 안겨줍니다. 기존에 정의된, 제안했던 HR 시스템이 맞지 않기 시작했거든요. 리더십을 예로 들어볼까요. 예전의 조직에서 작동했던 권력메커니즘은 조직에서 보낸 시간과 비례했습니다. 기술이나 스킬의 습득에 시간이 필요했었고 그렇게 습득한 지식과 경험이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거든요. 그런데 AI가 등장하면서 기술이나 스킬, 경험의 습득과 활용에 소요되는 시간이 현격히 줄어들었습니다. 기존 권력 메커니즘의 영향력 역시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쉽게 정리하면 그렇습니다. 조직 구조, 문화, 일의 방식과 흐름에 재정의가 필요한 상황이 도래했으니 리더십도 재정의가 필요한 상황을 맞게 된 거죠. 그렇다고 권력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다만 기존의 형태가 아닐 뿐이죠.
기존의 정의와 시스템들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누구나 자신을 도와줄 기술 노예를 하나씩 부릴 수 있다는 조건은 개인 능력의 정의까지 바꿉니다. 'AI를 얼마나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가'가 능력의 대전제가 됩니다. 경제활동 전반을 AI와 함께 해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중요한 부분이죠. 새롭게 구축된 대전제는 단순히'AI라는 도구를 적절히 활용하는 능력에 대한 요구가 커진다'는 것만 의미하진 않습니다. 뒤집어 읽으면 'AI로 커버되지 않는 인간 고유의 능력에 대한 요구도 그만큼 커진다'는 의미도 되거든요. 전자가 집단 전반에서 대두된다면 아마 후자는 고도의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집단, 고급 인력에서 대두되는 능력이 될 겁니다.
어떻게 진화해왔는가를 보세요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과정은 뭐랄까요. 커다란 강에 붙어 있는 지류 하천, 그 수위를 예측해 보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중랑천 수위를 예측하라는 미션이 떨어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크게 2가지가 필요하겠지만 우선 본류인 한강의 수위부터 확인해봐야 할 겁니다. 큰 강의 수위는 지류 하천의 기점수위가 되거든요. 한강의 물이 불어나게 되면 지류 하천인 중랑천도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지류 하천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말이죠.
어떤 현상이나 흐름에 대해 본질을 파악하고 그 파급효과를 예측해 보는 과정도 그렇습니다. 들여다보고 싶은 현상이나 흐름과 관련되어 있는 이론이나 분야들이 과거에서 어떻게 변해왔고 진화해 왔는지 훑어보세요. 특정 시점에 무슨 변수가 발생했으며, 해당 변수에 어떻게 대응하고 진화해 왔는지를 알면 지금을 한층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복잡성이 높아진 시대인 만큼 하나의 이론이나 분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여러 이론을 두루 겹쳐서 보세요(이론적 배경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알아둬서 쓸데없는 지식은 없는 법이니까요.
지금을 더 선명하게 보려면 진화 내역을 알 필요가 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산업의 변천사와 이를 둘러싼 HR(혹은 HRD)의 진화과정을 짧게 들여다봤습니다. 생산력 폭발과 맞물린 비즈니스의 고도화, 복잡성의 증가, 노동력의 부족, 기술노예의 등장과 같은 일련의 흐름에서 HR의 비중과 역할도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지금의 HR에게 들이닥친 큰 물줄기는 '첨단기술의 진화와 노동력의 부족이고 둘 다 이전과는 급이 다른 레벨이다. 기존의 시스템과 정의가 맞지 않는다' 정도로 정리되겠군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도래했습니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선 뭔가 더 필요합니다. 지류 하천의 수위에 영향을 미치는 건 본류 수위만이 아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