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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에서 온 세련된 그대

일상, 분석의 기술(3)

우리의 일상 속에는 수많은 편견이 뿌리 깊게 박혀 있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몇 개만 추려볼까요. '외국인은 우리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막연한 전제나 '지방 출신은 촌스럽다'같은 지역적 이분법, '어르신들은 디지털 기기를 다룰 능력이 부족하다'는 기술 편견에 '여성은 타고난 돌봄의 본능을 지녔다'는 성역할 고정관념, '조용한 성격의 사람은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인성에 대한 평가까지 다양합니다.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는 귀여운 수준이군요.


오늘은 그 편견 중에 하나인 '지방 출신은 촌스럽다(이하 촌그대)'를 다루어볼까 합니다. 수많은 편견 중 왜 하필 '촌그대'를 골랐냐고요. 흔히 접하는 외모, 나이, 성별, 직업 같은 요소와 달리, 출신 지역에 대한 편견은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어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너무 익숙해 존재조차 잊기 쉬운 이 편견은 단순한 공간 차원을 넘어 사회적 계층화와 문화적 위계질서가 교차하는 복합적 양상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지역적 이분법에 대한 편견은 너무 자연스럽다


늘 그렇듯 질문을 던지고, 합당한지, 그래서 답은 무엇인지 가볼까요.


분석의 뼈대 : '촌그대'에 제기할 수 있는 의문

"지방 출신은 촌스럽다"라는 편견에 대해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과연 세련됨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질문이죠.'세련됨'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객관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일까요. 아니면 시대와 사회,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주관적인 가치일까요. 만약 '세련됨'이 주관적인 개념이라면, '수도권'과 '세련됨'을 연결 짓는 기준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 것일까요? 막 쏟아져 나오는 걸 보니 제가 정말 궁금한가 봅니다.


앞의 질문을 살짝 뒤틀어보면 '세련됨은 마냥 긍정적이고 촌스러움은 마냥 부정적인 것인가?'라는 질문도 도출됩니다. 촌 그대에 대한 편견을 뜯어보면 '세련됨'은 긍정적인 가치에, '촌스러움'은 부정적인 가치로 할당했거든요. 하지만 과연 그러한 가치 판단, 분류가 합당할까요. '세련됨'이 도시의 화려함, 소비문화, 치열한 일상을 의미한다면, '촌스러움'역시 자연과의 조화, 느리게 채워감, 소박함과 같은 가치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생활상 가운데 유독 도회적 생활만이 긍정적 기준인지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왜 지방 출신을 '촌스럽다'라고 단정 짓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지역적 특성은 기후, 지리, 역사, 경제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형성됩니다. 인류사를 봐도 문화(혹은 문명)의 고유성을 결정지은 건 서로 다른 환경과 그에 따른 적응의 방식이었습니다. 우열이 아닌 다름의 영역이죠.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세련됨'의 기준으로 재단하고 우열을 가리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함일 수 있습니다. 지역 공동체의 자존감도 그만큼 떨어지게 됩니다. 그럴 이유가 없는데 말이죠.


마지막으로, "지역적 이분법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물음으로 사회적 파급력을 짚어봐야 합니다. '촌스러움'에 대한 편견은 지방 출신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취업, 교육, 사회적 관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출신지에 따른 불합리한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며, 이는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분석의 설계 : 타당한가, 실증되나, 도움되나

제시한 4가지 질문은 지역적 이분법에 대한 분석적 접근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그럼 이제 이 질문들을 논리적 타당성, 실증 여부, 생산성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검토하고 나눠볼까요. 질문 각각의 분석적 가치를 명확하게 드러내 보겠습니다.


논리적 타당성에서 첫 번째 질문인 “세련됨이란 무엇인가?”는 핵심 개념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요구합니다. 분석의 출발점이 되지요. ‘세련됨’이라는 추상적 개념의 의미를 구체화하고, 이어지는 질문들을 위한 논리적 기반을 마련합니다. 이어서 “세련됨은 긍정적이고 촌스러움은 부정적인가?”은 이분법적 사고의 오류를 지적하며, 가치 판단의 합당성을 묻습니다. 편견의 이면에 교묘히 숨겨둔 가치 판단 기준을 드러내고, 그 허점을 파고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차라리 세련됨의 완성도 얼굴이라 그러지


“왜 지방 출신을 ‘촌스럽다’고 단정 짓는가?”는 편견 발생의 원인을 가리킵니다. 이 질문엔 편견이 단순히 개인의 무지나 오해의 차원을 넘어, 복잡한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드러내고 싶은 의도가 깔려있습니다. 지역적 이분법이라는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개인적 심리, 사회 구조적 오류, 문화적 맥락 등 다면적인 분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제기한 의문이 증명할 수 있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가를 봐야겠죠? “세련됨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소비 지출패턴, 문화 시설 접근성, 미디어 콘텐츠 분석 등을 통해 실증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광역과 기초 간의 소비 패턴 비교, 문화 시설 분포 현황 분석, 드라마나 광고 속 ‘세련된’ 이미지 재현 방식 연구 같은 자료를 통해 ‘세련됨’의 사회적 구성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거죠.


“세련됨은 긍정적이고 촌스러움은 부정적인가?”라는 질문은 삶의 만족도, 공동체 의식, 환경 만족도, 주관적 웰빙 지수 같은 삶의 질 지표를 활용해서, “왜 지방 출신을 ‘촌스럽다’고 단정 짓는가?”라는 질문은 지역별 GRDP 차이, 미디어의 지역 재현 방식, 뉴스 빅데이터 분석, 사회 인식 조사 등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통계청 지역소득 자료나 연구보고서, 뉴스 빅데이터 분석, 여론조사업체의 사회인식조사를 살펴보면 쓸만한 데이터를 구할 수 있겠군요.


“지역적 이분법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은 인권 실태조사, 노동자 임금구조 통계, 문화예술 실태조사, 인구총조사 등에서 차별 경험, 임금 격차, 문화 예술 행사 추이, 지역어 사용 빈도 등을 활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편견이 개인적 차별, 사회적 불평등 심화, 문화적 다양성 훼손 같은 사회적 폐해를 야기한다는 점을 수치로 입증하는 작업은 이후 지역적 이분법 편견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도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이 질문들은 여러모로 생산적입니다. “세련됨이란 무엇인가?”는 개념 정의 능력을, “세련됨은 긍정적이고 촌스러움은 부정적인가?”는 비판적 사고 능력을 향상하는데 좋은 재료가 됩니다. “왜 지방 출신을 ‘촌스럽다’고 단정 짓는가?"으로 편견의 원인을 파악하며,“지역적 이분법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는 편견의 사회적 영향을 인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사회 문제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편견 해소에 일조하려는 동기를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개인의 성장에 더해 한층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는 과정인 셈이죠.



분석의 완성 : 신뢰할 만한 정보 분석 및 해답 산출

- 세련됨이란 무엇인가?

세련됨은 소비 패턴, 문화 환경, 그리고 미디어를 통해 정의되고 재현됩니다. 소비 패턴에서 세련됨은 고급 브랜드나 사치품 소비와 연관되죠. 럭셔리 플랫폼 BALAAN의 MAU자료를 볼까요. 명품시장에서 3050의 구매 비중은 21년 71.9%, 22년 72.3%로 과반을 훌쩍 넘겼고,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 지역에서만 전체 거래액의 약 60% 이상이 발생했습니다. 객단가와 재구매율이 제일 높은 서울 강남 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에서 3050의 구매비중은 무려 85.2%에 달했습니다. 명품을 두른 강남 3구의 3050, 우리가 떠올리는 '세련됨'과 비슷한가요.


세련됨을 체득할 수 있는 기회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문화 기반시설입니다. 수도권은 문화기반시설의 36%를 차지하지만, 인기가 높은 미술관(39.1%)과 국공립 도서관(45.3%)의 비중이 높습니다. 반면, 비수도권은 다소 미지근한 '문화의 집'(84.2%)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문화행사 관련 지표(전문예술법인·단체, 공연 건수, 매출액 등)의 수도권 쏠림현상 역시 뚜렷하죠. 도시 거주자들이 문화적으로 ‘세련된’ 경험을 할 기회가 지방보다 많음을 객관적으로 드러냅니다.


2022 국민문화예술 활동조사 발췌, 문화체육관광부


종합해 보면 ‘세련됨’은 개인 취향을 넘어 소비 자본과 문화 인프라가 집중된 도시 중심 사회의 가치 기준을 반영하는 복합적인 개념임을 데이터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미디어에서도 "도시=세련" vs "지방=촌스러움"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으로 재생산되며, 소비와 문화 접근성의 격차가 세련됨의 기준으로 인식되는 구조를 만들게 됩니다.


- 세련됨은 긍정적이고 촌스러움은 부정적인가?

'촌스러움'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달리, 삶의 만족도나 공동체 의식, 쾌적한 환경 등에선 사뭇 다른 결과를 보여줍니다. 농림수산축산부에서 발표한 2021년도 정주 만족도 조사 분석 결과에서 도시와 농어촌 주민의 전반적인 만족도를 비교한 결과, ‘현재 행복감(6.2 대 6.6)’과 ‘살고 있는 곳에서의 만족감(6.4 대 6.7)’은 도시에 비해 농어촌 지역이 높았으며, 공동체 및 지역사회에 대한 주민의 인식은 모든 항목에서 농어촌 지역 주민의 평가가 높았습니다. ‘도움받을 수 있는 이웃 존재 여부(5.4 대 6.1)’에 대한 높은 평가도 유독 눈에 띄는군요.


2021 농어촌 삶의 질 실태와 주민 정주 만족도 조사 발췌, 농림축산식품부


이런 수치는 동일 조사에서 삶의 질과 직결되는 보건·복지, 교육·문화, 정주기반, 경제·일자리 등 모든 부문에 대한 만족도 점수가 도시 지역보다 낮았으며 최대 -1.2점, 평균 -0.8점 차이가 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한다는 뜻이거든요. 이는 사회 전반에서 통용되는 외부적 이미지보다 개인의 주관적 웰빙여부와 주변과의 관계 만족도가 삶에서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 왜 지방 출신을 ‘촌스럽다’고 단정 짓는가?

지방 출신에 대한 편견은 경제적 격차와 미디어 재현 방식에서 비롯됩니다. 수도권(52.5%)과 비수도권(47.5%) GRDP(지역 내 총생산)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으며, 비수도권 지역 내에서도 군 단위가 시나 구보다 훨씬 낮은 생산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매출액 기준 1,000대 기업 분포에선 86.9%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불균형은 지방 거주민들이 상대적으로 제한된 자원 속에서 생활한다고 인식하게 만듭니다.


이런 인식에 더해 미디어에선 수도권 중심의 현대적이고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이 자주 강조되는 반면, 지방은 종종 보수적이고 정체된 공간으로 표현됩니다. 이는 사회 전반에서 지방 출신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지역적 이분법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지역적 이분법은 경제적 불평등과 차별 경험을 심화시킵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노동리뷰(2023년 11월)’에 실린 ‘일자리 분포의 지역 격차,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비교를 중심으로’를 보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노동자(35~64살)의 평균 임금 격차는 2015년 6.3%(34만 원)에서 2020년 9.6%(53만 원)로 커졌습니다. 이는 ‘촌스러움’에 대한 편견이 노동 시장에서 출신 지역에 따른 임금 차별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적극적 여가활동, 문화예술 관람에서도 차이(한국의 사회동향 2023)가 나타나는데 일정 부분 그런 영향이 있으리라 판단됩니다.


그나마 옅어졌지만 비수도권 출신자들이 취업 및 교육 기회에서 차별을 경험하는 사례(차별사례모니터링 보고서_국가인권위원회, 교육기회균등을 위한 지역대학 지원정책 개선과제_국회입법조사처)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촌스러움'이라는 편견이 비단 개인적 불이익을 넘어 사회적 불평등 심화, 문화 다양성 훼손이라는 사회 문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에필로그

종합해 보면 '촌그대'는 단순한 개인적 차원의 인식오류가 아닙니다. 촌그대는 '내집단'과 '우월성'을 확보하려는 인간 심리의 보편성과 역사적 맥락,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 인지적 집단왜곡 현상입니다. 슬픈 일이지요.

슬프지만 웃음이 나온다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편견은 많습니다. 미처 인지하지 못한다면 내 의사와 관계없이 악영향을 끼치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틀을 인식하고, 개별 사례를 구체적 데이터와 대조해 보며 답을 구하는 훈련이 필요한 이유지요. 치우치지 않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서로에게 공감하는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하는 방법이라고도 믿습니다.


그럼 다음 회차에 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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