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분석의 기술(2)
오늘은 흔히 접할 수 있는 주장 하나를 도마 위에 올려보려 합니다. "젊은 세대의 문해력 저하가 심각하며, 이는 우리말에서 상당 비율을 차지하는 한자를 안 가르쳐서 그렇다”이라는 주장(이하 문해력 저하 주장)입니다. 주변에서, 혹은 뉴스나 칼럼에서 심심찮게 접하는 이야기죠. 한자어가 한국어 어휘의 70%를 차지한다는 통계를 근거로, 상대적으로 한자를 모르는 젊은 세대는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서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논리입니다.
살다 보면 많은 이야기들을 듣습니다. 어떤 이야기는 사실과 거리가 멀지만 교묘해서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살짝만 긴장을 풀면 진실로 간주되는 경우도 있죠. 뒷감당은 듣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집니다.
대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늘 하던 대로 제기할 수 있는 의문들을 던져보고, 그 의문들이 합당한 지 검토해서, 나름의 해답을 찾는 과정을 가져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문해력 저하 주장은 어떨까요. 한 번 들여다보죠.
분석의 50% : 의문을 가진다
문해력 저하 주장을 처음 들었을 때, 먼저 떠오른 의문은 “정말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저하되었는가?”입니다. 문해력 저하 주장의 시작 자체가 불확실할 수 있다는 의심이죠. 무엇보다 ‘문해력 저하’라는 표현 자체가 매우 추상적입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문해력 저하를 판단하는 걸까요. 이전 세대와 비교했을 때 뒤떨어졌다는 의미일 텐데 이걸 객관적인 데이터로 입증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문해력 저하라는 현상 자체가 실재하는지, 그리고 그 심각성의 정도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과정에선 문해력의 정의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활자를 덜 읽는다고 문해력이 낮아졌다고 단정 짓기엔 무리가 있거든요. 어쩌면 젊은 세대는 다른 형태의 활자, 예를 들어 음성, 유튜브 같은 영상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에 익숙해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전 세대에서 통용되던 문해력의 정의가 현세대에서도 통용되는가 라는 질문도 넌지시 던질 수 있는 것이지요.
두 번째 의문은 “한자 교육 부재가 정말 문해력 저하의 원인인가?”입니다. 문해력 저하 주장들을 보면 단정적으로 한자 교육 부재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량이나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합니다. 문해력도 예외는 아니죠. 스마트폰 과다 사용, 짧은 영상 콘텐츠 선호, 교육 시스템의 변화 같은 많은 요인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한자 교육 부재가 그중 하나의 요인일 수는 있지만, 유일한 혹은 주된 원인이라고 단정 짓는 건 위험합니다. 세상만사가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는 게 아니거든요.
인과관계는 매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우리가 감기 걸린 이에게 열이 난다고 해서, 열이 감기의 원인이라고 말하지는 않듯, 문해력 저하와 한자 교육 부재,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나타난다고 해서 하나를 다른 하나의 원인으로 삼을 순 없습니다. 설령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떨어졌다 하더라도, 앞서 열거한 여러 원인들 중 한자 교육 부재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생략된 인과관계는 개인의 취향표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냥 그게 원인이라 믿고 싶은 거죠.
세 번째 의문은 "한자가 정말 한글의 상당 비율을 차지하는가?"입니다. 주장들을 자세히 보면 마치 한자를 모르면 한글 문맥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얘기합니다. 그렇다면 현대 한국어에서 실제로 한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나 될까요. 물론 한국어 어휘에서 한자어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일상에서 한자 자체를 모르면 문맥 파악이 불가능할 정도로 절대적 지위를 차지하는지 의문입니다. 아울러 한자의 실사용 빈도와 문맥 속에서의 역할, 그리고 한자를 몰라도 문맥 이해가 가능한 정도까지 확인해 보면 되겠죠.
네 번째 의문은 “한자 교육은 문해력 향상에 정말 효과적인가?”입니다. 만약 한자 미교육이 문해력 저하의 원인이라면, 반대로 한자 교육을 강화하면 문해력이 향상될 것이라는 논리도 성립합니다. 그렇다면 한자 교육이 실제로 문해력 향상에 얼마나 효과적인지,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 효과적인지를 확인해 보면 되겠죠. 한자 교육의 실제 효과, 특히 문해력 향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 결과나 전문가 의견을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효과가 있다면, 어떤 종류의 한자 교육이, 어떤 연령대에,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효과적인 지도 구체적으로 알아두면 이후에 해답을 산출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마지막은 "문해력 저하 문제 해결에 한자 교육만이 유일한 대안인가?"입니다. 만약 젊은 세대의 문해력 저하가 심각하고, 그 원인 중 하나가 한자 교육 부재로 확인된다면 문제에 대한 해답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그 해답이 오직 '한자 교육 강화’ 귀결되는 건 다른 문제를 야기합니다. 문해력 향상을 위해 독서 교육 강화, 비판적 사고 능력 함양 교육, 디지털 문해력 교육 같은 다양한 접근 방식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다른 대안들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한자 교육 강화'만을 부르짖는 건 비효율적입니다. 자칫 한자 교육에 대한 부담만 늘어나고 문해력 저하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80% 도달 : 논리는 맞고 데이터가 있는데 생산적인가
이상 5개의 의문을 던져봤습니다. 이제 던진 의문이 합당한 지를 봐야겠죠. 제기하는 의문이 합당한가는 몇 가지 기준을 적용해서 판단해 볼 수 있습니다. 대략 3가지의 기준을 꼽습니다.
첫 번째 기준은 논리적 타당성입니다. 우리가 제기한 의문들이 주장의 논리적 흐름을 짚고 있는가, 이 과정에서 모순은 없는가를 따져보는 것이죠. 상대 주장의 논리적 흐름이나 오류, 핵심 근거를 되짚어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문해력 저하의 명확한 기준'과 관련된 일련의 의문들은, ‘문해력 저하’라는 추상적 표현이 주장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짚고 있습니다. 문해력 저하 주장의 출발점이 되는 ‘문해력 저하’ 현상이 확실하게 정의되지 않으면, 그 이후의 논의 혹은 논쟁도 허공에 뜨게 됩니다. 말 그대로 헛심 쓰는 거죠.
'한자가 정말 한글의 상당 비율을 차지하는가'라는 의문도 그렇습니다. 문해력 저하 주장의 핵심 근거 중 하나가 ‘한자어가 한국어 어휘의 약 70%를 차지한다’잖아요. 만약 이 전제가 틀렸다면, 주장의 설득력은 떨어집니다. 문맥 속에서의 한자어의 역할이 크지 않다는 결론이 나와도 설득력이 떨어지죠. 굳이 논의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다음은 실증여부입니다. 제기한 의문이 증명할 수 있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가를 검토하는 것이죠.'정말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저하되었나'라는 의문은, 통계 자료나 논문, 학술지 등을 통해 실증적으로 확인해 볼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만약 젊은 세대의 문해력 저하를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인 데이터가 부족하다면, 주장의 설득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자 교육은 문해력 향상에 효과적인가'라는 의문도 한자 교육이 문해력 향상에 미미한 효과만 있거나, 되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결과로 귀결된다면, 주장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겠죠.
마지막으로 생산성입니다. 나의 의문들이 단순한 비판이 아닌, 건설적인 질문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전 세대의 문해력 개념이 지금도 통용되는가'라는 의문은,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문해력 개념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문해력 저하 문제 해결에 한자 교육만이 유일한 대안인가'라는 의문은, 단순히 한자 교육 강화라는 하나의 대안에 매몰되지 않고, 비용과 효율, 수용성 등을 고려한 다양한 접근법을 고민하게 만듭니다. 문제의 본질을 더욱 깊이 있게 탐구하고,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논리는 들어맞고 데이터가 있으며 생산적이다?
분석의 80%는 완료되었습니다.
20% 채우기 : 자료를 참고해서 해답 찾기
이제 나머지 20%를 채워볼 차례군요. 글이 다소 긴 듯 하지만 그래도 결론은 얻어야겠죠? 제기했던 의문들에 대해 그럴듯한 해답을 찾아보고, 분석해 볼 차례입니다. 최대한 객관적이고 신뢰성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다양한 자료들을 참고했습니다.
- 정말 젊은 세대의 문해력은 저하되었는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2023년 제4차 성인문해능력조사' 결과를 보면, MZ세대로 불리는 젊은 세대(2030)의 문해력이 전체 연령대에서 가장 뛰어났습니다. OECD에서 실시하는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도 한국 학생의 읽기 평균 점수는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었고 평균을 크게 웃돌았습니다. 다만 동일 조사에서 한국 학생들의 하위권 비율이 2000년 5.7%에서 2018년 15.1%로 증가했다는 결과도 있어 양극화가 다소 의심되긴 합니다. 자료를 종합해 보면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전반적으로 다른 세대보다 낮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주장의 근거가 되는 문해력 저하라는 현상이 분명하지 않은 거죠.
-‘한자 교육 부재가 정말 문해력 저하의 원인인가?
흥미롭게도 한자를 사용하는 일본과 중국에서도 젊은 세대의 문해력 저하 문제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일본 문부과학성과 국립교육정책연구소가 내놓은 2024 전국학력·학습상황조사 결과를 보면, 일본의 중학교 국어 과목 평균 정답률은 58.4%로 전년 대비 11.7% 포인트 하락했습니다. 추론 영역의 하락폭이 두드러졌고요.
중국에서도 디지털 기기 사용 증가와 손글씨 쓰기 빈도 감소 사이의 상관관계를 규명한 연구들이 발표되고 청소년 서예 교육 강화 방안이 시행되는 등 문자 습득 방식을 재고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문자 체계나 교육 방식의 변화만으로 문해력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문자 체계보다는 디지털 시대의 변화와 관련된 문제에 가깝다로 보는 게 맞겠죠. 당장 한자를 쓰는 나라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으니까요.
-한자 교육은 문해력 향상에 정말 효과적인가?
한자 교육이 문해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 논문이나 통계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부분적으로 언급한 자료는 있었지만 기대했던 한국어 문맥에서 한자 교육과 문해력의 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한 종합적인 실증 연구는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현시점에선 '확실히 도움 된다'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실증 유무와 별개로 한자 교육이 어휘력 향상에 일부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엔 동감합니다. 다만 어휘력 발달이 활발히 이뤄지는 초등 저학년 시기와 그 이후 시기의 효과성이 다를 수 있으며, 또 다른 학업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갖게 됩니다. 문해력 향상이라는 목적에서 독서나 글쓰기, 비판적 사고 능력 함양, 디지털 문해력 배양 같은 수단보다 한자 교육 강화가 낫다 보지 않습니다. 그냥 하나의 방법이죠.
아.. 한자어 70% 통계는 확실히 과장되었습니다.
20여 년 전이 35% 내외(국립국어원)였거든요. 지금은 더 줄었을 겁니다.
에필로그
“젊은 세대의 문해력 저하가 심각하다. 이는 한국어의 70%를 차지하는 한자를 안 가르쳐서 그렇다.”라는 주장에 대한 분석적 접근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다섯 개의 의문을 던져봤고, 그 의문들의 합당성을 검토했으며, 다양한 자료를 찾고 분석해서 해답을 구해봤습니다. 매일매일 소화하시는 과정이지만 문장으로 한 번 풀어봤습니다.
세상에는 흑백논리로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 과정에선 말과 문장들이 서로 맞서기도 하죠. 맞선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고, 합당성을 검토하며, 정보를 가공 및 분석해서 답을 구하는 과정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좌절감을 맛보기도 하죠.
어려운 훈련입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은 단순히 지적 만족감을 넘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투자라는 점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음 회차에 뵙죠.